[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10. 23.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고맙게도 KBS 강석훈 기자가 문상을 와주었습니다. 강기자는 자기가 쓴 책이 곧 나온다더니, 10. 31. 초판이 나오자마자 나에게도 책을 보내주었습니다. 바로 《조선의 大기자 연암》이란 책입니다. 대(大)기자라니? 연암을 좋아하고 열하일기를 애독한 나로서는 순가 ‘대기자’에 혼란스러웠으나, 이내 강 기자가 연암을 ‘대기자’라고 부르는 것을 알 것도 같았습니다. 머리말에서 강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열하일기는 대기자의 면모와 식견, 실력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대장정의 르포르타주다. 르포르타주는 어떤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단편적인 보도가 아니라 특정 주제나 지역 사회를 심층 취재한 기자가 취재 내용과 식견을 바탕으로 뉴스와 여러 에피소드, 논평 등을 종합적으로 완성한 기사이다.” ‘그래! 기자의 관점에서는 《열하일기》에서 연암의 대기자의 면목을 읽어낼 수 있겠구나!’ 그런데 강 기자는 연암이 능숙한 대기자의 필치로 《열하일기》를 썼을 뿐 아니라, 연암 스스로 《열하일기》에서 자신을 ‘기자’라고 했답니다. ‘으잉? 이건 무슨 말이야? 당시에는 ‘기자’라는 개념도 없을 때 아닌가?’ 1780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1909년 10월 26일 아침 9시 30분경, 하얼빈역에서 ‘대한국 만세’를 뜻하는 ‘코레아 우라!’가 울려 퍼졌다.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의 외침이었다. 깊은 총상을 입은 일본 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는 힘없이 쓰러졌다. 하얼빈역은 아수라장이 됐다. 이토는 즉시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총상이 워낙 깊어 30분 만에 숨을 거뒀다. 안중근은 도망치지 않고 순순히 체포되어 러시아 헌병대 파출소로 끌려갔다. 이로써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은 세계 전역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이 책, 《코레아 우라-안중근, 하얼빈 11일간의 기록》은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보낸 11일 동안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거사가 있었던 10월 26일을 중심으로 10월 22일부터 11월 1일까지, 11일간 벌어진 사건들을 숨 가쁘게 담아낸다. 그리고 하얼빈 의거 이후 뤼순에서 1910년 3월 26일 처형당할 때까지, 144일 동안의 이야기도 다룬다. 보통 역사책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는 사실만 나올 뿐, 그 전후의 이야기는 생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 책은 그 의거의 자초지종을 누구나 알기 쉽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 11월 22일 ‘머니투데이’에는 “경매 올라온 '연애편지' 42통, 9억에 낙찰…누가 썼길래?”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CNN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의 유명 가수이자 작곡가, 시인인 밥 딜런이 고등학생 때 썼던 연애편지가 경매에서 66만 9,875달러(약 9억 원)에 낙찰됐다는 것이다. 우리 세대도 고등학생 시절 연애편지를 썼던 추억이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그런 연애편지가 있을 까닭이 없다. 다만, 부부 사이에 절절한 사랑을 주고받은 흔적인 편지가 지금 우리에게는 유물로 남아있다. 1998년 4월 14일 경북 안동에서는 이장하는 무덤에서 죽은 남편을 향해 애끓는 사랑과 비통함을 토하는 편지가 나왔다. 죽은 사람은 1586년 31살의 나이로 갑자기 죽은 이응태였는데 이응태의 아내 원이엄마가 쓴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하얘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라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라는 편지가 나와 조선판 '사랑과 영혼'이라며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유물이 있다. 물론 조선시대에 그런 원이엄마가 쓴 애정편지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경목이 쓰고, 한국학중앙연구원 출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명분이냐 실리냐. 선택은 늘 쉽지 않다. 오늘도 많은 이들이 두 가지 선택 사이에서 갈등한다. 명분을 따르자니 손해가 막심하고, 실리를 따르자니 면이 서질 않는다. 어떤 선택도 반드시 정답이라고 할 수 없으니,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역사는 기출문제집이라 했던가? 그럴 때 한 번쯤 펴들 만한 책이 있다. 김용희가 쓴 이 책 《명분과 의리의 김상헌이냐 현실과 변통의 최명길이냐》는 병자호란을 맞아 나라가 멸망의 갈림길에 섰을 때, 명분을 따라 멸망을 각오하고 싸울 것인지, 실리를 쫓아 항복하고 후일을 도모할 것인지 첨예한 논쟁을 벌이던 두 사람을 보여준다. 김상헌과 최명길, 두 사람은 각각 척화파와 주화파의 핵심 인물로 김상헌은 결사항전, 최명길은 항복을 주장했다. 사실 두 사람 모두 나라를 위하는 우국충정은 같았다. 다만 성리학적 명분론을 신봉하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이던 김상헌은 오랑캐에게 항복하여 예의가 무너지면 나라가 망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여겼고, 명분을 좇되 현실에 따라 변통하는 유연성을 중시하던 최명길은 일단 나라를 보존하고 나서야 명분과 의리도 찾을 수 있는 것이라 여겼다. (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박수중 선배님이 《물고기 귀로 듣다》 시집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번에도 말학(末學) 후배인 저에게까지 시집을 보내주시니 늘 죄송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번 시집은 8월 15일에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광복절에 세상의 빛을 받았으니 더욱 의미가 있네요. 그동안 선배님 시를 보면 인간의 개성은 말살되고 규격화되고 소외되는 현대사회에 대해 일침(一針)을 놓는 시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바로 전의 시집은 시집 제목 자체를 아예 《규격론》이라 하여 이러한 비판의식을 더욱 앞세웠지요. 이번 시집에도 ‘규격론2’를 실어 그런 비판의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나는 가끔 주인에 끌려 양재천을 산책합니다 걸으면서 절대 다른 개에 한눈팔 수 없어요 나는 일찌감치 중성수술을 받았어요 씨를 함부로 뿌려 족보의 희소가치를 망치면 안 되니까요 수술대 위에서 나는 하염없이 울었어요 내 귀한 후손을 볼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만 나는 웬일인지 눈물을 많이 흘려요 눈물 자국으로 눈 주위 얼굴 주변 털이 뭉쳐버리자 주인의 뜻대로 미안용(美顔用)으로 눈물샘까지 제거당했어요 나는 웃프게 웃프게도 더 이상 울 수도 없게 되어버렸어요 시 ‘규격론2’의 뒷 부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항상 경영자들이 경계하는 것이 있다. 바로 위기! 기업마다 ‘위기관리 매뉴얼’이 있고, 국가에서도 위기가 닥쳤을 때 체계적으로 대응하고자 컨트롤타워를 만드는 등 위기관리에 큰 노력을 기울인다. 평소 위기관리를 빈틈없이 해야 실제 위기가 왔을 때 실기(失期)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조선에도 이런 위기관리 비법이 있었을까. 물론이다. 군주의 역량에 따라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조선은 끊임없는 기록과 관리를 통해 위기에 대비했다. 비록 시간이 흐르며 대응체계가 형편없이 무너져 종국에는 나라를 잃었지만, 조선 역사의 면면을 살펴보면 아주 체계적으로 대응한 사례가 많다. 이 책, 《조선의 위기대응노트》는 마치 기출문제를 풀 듯, 그러한 위기대응 사례를 한 건 한 건 살펴보며 오늘날에도 참고할 만한 좋은 통찰력을 얻는 책이다. 역사와 경영의 만남, 꼭 필요하면서도 어려운 이 과제를 지은이는 이해하기 쉬운 설명으로 훌륭히 해내고 있다. 책은 모두 20개 사례로 구성했다. 위기라고 해서 꼭 전쟁이나 재난 같은 급박한 상황만 다루지 않고, 사전의 정의처럼 ‘안정을 흔드는 급격한 변화, 또는 결정적으로 중대한 순간’까지 모두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제가 어제 제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오랫동안 묵혀두고 있다가, 잠실나루역 앞 ‘서울책보고’에서 드디어 살 수 있었던 책 《잠수복과 나비》에 대해서 말씀드렸었지요? 그때 같이 산 책에 《반쪽의 고향》도 있습니다. 이 책 역시 오랫동안 목록 속에 잠자고 있다가 ‘서울책보고’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 책은 1996년 7월 30일 나왔으니, 26년 만에 돌고 돌아 저에게까지 왔네요. 이 책의 저자 이상금은 일본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내다가 15살에 해방을 맞으면서 고국으로 오신 분입니다. 저자는 이대 유아교육과 교수로 오랜 세월 재직하다가 1993년에 일본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반쪽의 고향》이란 제목으로 내셨습니다. 제목이 왜 《반쪽의 고향》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 책은 일본어로 일본에서 먼저 나왔습니다. 서문을 보니 저자는 일본 청소년의 21%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다면서, 저자 가족의 생활사를 통해서 일본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구체적인 역사를 그들에게 읽히고 싶었답니다. 이야기 자체가 일본에서의 성장사(成長史)이고, 저자 또한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일본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태극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우리나라의 국기, 태극기도 한때는 용기의 상징이었다. 태극기를 높이 들어 올리는 것은 그 자체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태극기는 곧 독립운동이요, 독립운동은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험난한 가시밭길이었다. 그러나 그때도 과감히 태극기를 들었던 여성들이 있다. 자칫 인생이 끝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서,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하면서, 민족과 조국을 위해 용기를 냈던 이들이 있다. 이 책 《태극기를 든 소녀 1》은 그 여섯 명의 지극한 용기에 바치는 헌사다. 의병가를 지어 의병의 사기를 드높인 의병대장 윤희순. 이화학당 교사이자 목숨을 걸고 고종의 비밀문서를 파리로 가져간 김란사. 기모노 속에 2.8 독립선언서를 숨겨 들여온 김마리아, 3.1운동의 불씨를 고향에서 이어간 유관순. 독립을 향한 의지를 보여주려 손가락을 자른 남자현. 전투기를 몰고 조선총독부를 폭격하려 했던 권기옥. 이 책은 이 여섯 명의 의로운 여성들을 차례차례 되살려낸다. 이야기를 읽어주는 듯 친근한 어투로 그들이 겪었을 고뇌와 삶의 고통을 풀어내, 어른도 그 아픔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폭력과 탄압이 난무하던 시대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장 도미니크 보비(1952~1997)가 쓴 《잠수복과 나비》를 읽었습니다. 참, 이 책에 대해 말하기 전에 제가 어떻게 이 책을 읽게 된 지부터 말씀드려야겠군요. 저는 책을 읽다가 나오는 참고문헌이나 언론에 나오는 서평을 보고 마음에 드는 책은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적어둡니다. 사람들이 추천하는 책들도 이렇게 목록에 적어두고요. 《잠수복과 나비》도 이 가운데 어떤 경로로 제 살 책 목록 속에 들어간 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오랫동안 제 목록 속에서 잠자고 있었습니다. 오래전에 절판된 책이라 당최 살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러다가 얼마 전에 잠실나루역 앞 ‘서울책보고’에서 드디어 이 책을 살 수 있었습니다. ‘서울책보고’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헌책방으로, 여기에는 많은 헌책방이 서가 하나씩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때도 아산병원에 문상가다가 들러 검색대에서 큰 기대를 걸지 않고 검색하는데, 어? 검색 결과 창에서 《잠수복과 나비》가 반짝반짝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검색 결과가 알려주는 서가로 달려가, 드디어 2008년도에 나온 《잠수복과 나비》를 제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잠수복과 나비》를 쓴 장 도미니크 보비는 세계적인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낙타? 웬 낙타?’ 우리 역사에 낙타라니? 낙타가 등장할 만한 일이 무에 있을까 조금 의아할 수 있지만, 맞다. 있었다. 낙타는 생각보다 우리 역사에 꽤 여러 번 등장한다. 대부분 신기하게, 그리고 조금은 슬프게 빼꼼히 얼굴을 내밀곤 했다. 이 책, 《신기하고 조금은 슬픈 역사 속 낙타 이야기》는 ‘낙타’라는 생경한 동물을 소재로 우리 역사를 바라본 책이다. 어린이책이지만 소재가 워낙 재미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볼 만한 ‘낙타 특집’이다. 우리 역사에 처음 낙타가 ‘문제적 동물’로 떠오른 건 고려 태조 왕건 때였다. 발해를 멸망시킨 요나라가 고려에 친선의 뜻으로 사신 삼십 명과 낙타 쉰 마리를 보냈는데, 거란(요나라)이 옛 고구려를 이은 발해를 멸망시킨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왕건은 낙타를 모두 굶겨 죽였다. (p.24-25) 10월에 거란에서 사신을 통해 낙타 쉰 마리를 보냈다. 왕이 말했다. “거란이 예전부터 발해와 화목하게 지내다가 문득 다른 생각을 내어 옛날의 약속을 버리고 하루아침에 멸망시켰다. 잘못이 심하니 이웃으로 삼을 수가 없다.” 그래서 사신 삼십 명을 섬으로 귀양 보내고, 낙타는 만부교 밑에 매어 놓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