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오는 25일 낮 2시 덕수궁(서울 중구)에서 국민 편의를 위해 재정비한 선원전 권역(조선저축은행 중역사택 외부 포함)과 가림막(아트펜스)를 공개하는 기림행사를 연다. * 선원전(璿源殿) 권역: ‘아름다운 옥의 근원’이라는 뜻으로, 선대 임금의 어진 등을 모시는 궁궐 안 가장 신성한 공간임. 일제에 의해 1920년대 모두 철거(훼철)된 뒤, 경성제일공립고등여학교, 조선저축은행 중역사택, 미국공사관 부속건물 등이 건립되었음. * 아트펜스 : 디자인과 예술성이 가미된 공사 가림막 이번에 공개될 선원전 권역은 2011년 미국과의 토지 교환을 통해 확보한 ‘덕수궁 선원전 영역’의 일부(약 8,000㎡)로, ‘덕수궁 복원정비 기본계획’에 따라 2030년 초부터 복원이 추진될 예정인데 복원 공사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국민을 위한 열린 공간이자 도심 속 휴식처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정비하여 이번에 개방하게 된 것이다. 개방 공간은 크게 조선저축은행 중역사택과 선원전 발굴터로 나뉘는데, 중역사택 구역은 노거수를 활용한 휴게와 전망 등이 가능하도록 조성하였고, 선원전 발굴터는 발굴된 원형 화계 석축과 가림막, 잔디 공터 및 휴게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윤성용)은 새봄을 맞아 상설전시실 중・근세관(고려실, 조선실, 대한제국실) 전시품 일부를 바꿨다. 국보 3점과 보물 3점을 포함한 전시품 44건 64점으로 고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이후 처음으로 소개되는 전시품도 선보인다. 고려실에서는 고려사경(高麗寫經) 4점을 집중적으로 전시하여 불교문화 꼭지를 강화하였다. 이 가운데 3점이 고 이건희 회장의 기증품으로 <감지은니불공견색신변진언경(紺紙銀泥不空羂索神變眞言經)>과 <감지은니묘법연화경(紺紙銀泥妙法蓮華經)>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감지은니불공견색신변진언경>은 고려 충렬왕(忠烈王, 재위 1274~1308) 때 대장경을 손으로 직접 베껴 쓰는 사경(寫經) 사업을 왕명으로 추진하였음을 보여준다. 그 근거가 되는 충렬왕의 발원 글귀가 마지막 부분에 쓰여 있다. <감지은니묘법연화경>은 금니(金泥)와 은니(銀泥)로 화려하게 꾸미는 고려사경의 표지 형식을 잘 보여준다. 가운데에 ‘묘법연화경 권제7’이라고 쓴 제목을 배치하고 배경에 보상화문(寶相華紋)과 당초문(唐草紋)을 가득 그려 넣어 꾸미는 방식이다.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g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지속할 수 있는 국가유산 보호와 미래 인재 육성을 위한 2024년 청소년국가유산지킴이 학교(동아리) 지원 대상 학교(동아리) 26개를 뽑았다. 2012년부터 시작된 ‘청소년국가유산지킴이’(이하 ‘지킴이’)는 청소년이 주도적으로 우리의 국가유산을 알고, 찾고, 가꾸는 과정 속에서 국가유산을 보호하고 값어치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청소년 참여형 특화활동으로, 복권기금의 지원을 받아 전국의 초ㆍ중ㆍ고등학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해마다 공모를 통해 뽑힌 학교(동아리)에는 지킴이 활동을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문화재청에서 예산을 지원하고 있으며, 올해에는 ▲ 초등학교 7개(부산 태종대초 등), ▲ 중학교 4개(고덕중 등), ▲ 고등학교 11개(광주중앙고 등), ▲ 국제학교 1개(채드윅 송도국제학교), ▲ 대안학교 1개(쉐마학교) 등 모두 26개의 학교(중복 포함)가 뽑혔다. 이와 별도로 지킴이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기를 원하는 청소년 개인 또는 단체도 기간 내에 지킴이 누리집(www.청소년국가유산지킴이.kr)에서 신청한 뒤, 문화재청장으로부터 위촉을 받아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 2024년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원장 김연수)은 고문헌과 현장조사, 비파괴 분석 기술 등을 통해 조선의 궁궐(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과 종묘 등에 사용된 석재의 산지를 확인하였다. 조선의 궁궐은 태조 4년(1395년) 경복궁과 종묘가 창건된 뒤 창덕궁, 창경궁, 경운궁(덕수궁), 경덕궁(경희궁)이 건립되었다. 이후 이들 궁궐은 임진왜란과 화재 등으로 여러 차례 불탐과 중건을 반복하였고, 일제강점기에는 궁궐 대부분이 훼손되고 변형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에 문화재청에서는 1980년대부터 궁궐의 원형을 되찾기 위한 복원을 시작하였는데, 국립문화재연구원은 이때 쓸 대체 석재를 고르기 위해 석재산지 조사와 연구를 수행해 왔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종묘에 쓰인 석재 모두 9,961점에 대해 비파괴 암석 조사를 한 결과, 담홍색화강암이 95% 이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었고, 이 밖에 진홍색화강암, 흑운모화강암 등이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궁궐 조성 때 쓴 석재산지 관련 고문헌 기록을 조사한 결과로는 한양도성 내, 서교(西郊), 동교(東郊)까지 크게 세 지역으로 석재산지를 특정할 수 있었다. 한양도성 내에서는 부석(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무형유산 ‘누비장’ 김해자(1953년생) 보유자가 병환으로 4월 13일(토) 새벽 5시 무렵 세상을 떴다. 빈소는 동국대학교 경주병원 장례식장 특2실(054-770-8333)이며, 발인은 4월 16일(화) 아침 9시, 장지는 경주하늘마루다. 유족으로는 배진여(자녀)가 있다. 김해자 선생의 주요경력으로는 1992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국무총리상을 받았으며, 2002년 일본 NHK 초대전, 2005년 파리 프레타포르테 100회 기념 한복전시회, 2007. 중국 북경 한국문화원 초대전, 2010. 일본 동경퀼트페스티벌 초대전에 참여했다. ※ 국가무형유산 누비장(1996. 12. 10. 지정) 누비는 옷감의 보강과 보온을 위해 옷감의 겉감과 안감 사이에 솜, 털, 닥종이 등을 넣거나 또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안팎을 줄지어 규칙적으로 홈질하여 맞붙이는 바느질 방법이다. 우리나라의 누비는 면화 재배 이후 적극적으로 활성화되었으며, 조선시대의 다양한 실물자료들이 전해지고 있다. 승려들이 일상복으로 입는 납의(衲衣)는 헤진 옷을 수십 년 동안 기워 입은 것에서 유래하였으며, 이는 점차 누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지난 4일에 청송 방호정(方壺亭)에 소장되어 있던 《방호문집(方壺文集)》, 《장릉사보(莊陵史補)》, 《파산세록(巴山世錄)》 등 책판 600장을 인수하였다. 이번에 기탁받은 책판 600장은 함안조씨 방호문중과 지역사회의 공론으로 제작되어 방호정에서 보관되어 왔다. 어머니를 기리며 지은 방호정, 학문의 중심이 되다 방호정은 조선 후기의 학자 조준도(趙遵道, 1576∼1665)가 세운 정자로, 경북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에 있다. 조준도는 44살 때인 1619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묘소가 잘 보이는 낙동강 절벽 위에 누정을 세웠고, 이후 지역사회 내에서 학문과 모임의 공간이자 출판의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이날 기탁된 책판은 모두 7종 600장으로, 1845년에 간행된 조준도의 문집인 《방호문집》 책판 82장, 조기영(趙基永, 1764~1841)이 함안조씨 선조의 사적을 정리하여 1906년에 간행한 《파산세록》 책판 158장, 1863년에 간행된 조기영의 문집 《현은문집(玄隱文集)》 책판 3장, 함안조씨 삼대 다섯 인물의 글을 모아 1907년 간행한 《현애세고(玄厓世稿)》 책판 102장이다. 또한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민영환 유서(명함)」, 「여수 거문도 근대역사문화공간」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하였다. * 근대역사문화공간: 근대 시기에 형성된 거리, 마을, 경관 등 역사문화자원이 집적된 지역 이번에 등록 예고하는 「민영환 유서(명함)」는 대한제국의 외교관이며 독립운동가인 충정공 민영환(1861∼1905)이 을사늑약에 반대하며 순절할 당시 2천만 동포들에게 각성을 촉구하는 유서가 적힌 명함이다. ‘결고(訣告) 아 대한제국 이천만 동포’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유서가 명함의 앞면과 뒷면에 연필로 빼곡하게 적혀 있으며, 명함은 봉투에 넣은 채로 유족이 소장하고 있다가 1958년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자결 순국한 민충정공의 정신을 후세에게 알릴 수 있는 뛰어난 사료적ㆍ문화유산적 값어치를 지녔기에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해 보존ㆍ관리할 필요가 있다. 또 함께 등록 예고하는 「여수 거문도 근대역사문화공간」은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에 있는 우리나라 근현대 때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등록 예고된 구역(26,610㎡) 내에는 광복 이후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었던 모습을 볼 수 있는 ‘여수 거문도 구 삼산면 의사당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수도성곽인 한양도성, 대피성인 북한산성과 함께 조선후기 도성 방어체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문화유산인 「탕춘대성」을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고 있는 「탕춘대성」은 3개의 성이 유기적인 하나의 도성 방어체계를 구축하여 운용될 수 있도록 쌓은 독창적인 방어성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뒤 도성 방어체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하여 숙종 41년(1715년) 축조를 시작하여 영조 30년(1754년)에 완성하였다. 이번에 사적으로 지정된 범위는 한양도성 서북쪽의 인왕산 기차바위에서 홍지문(弘知門)을 지나 북한산의 향로봉 아래까지 이어지는 전체 길이 5,051m 구간이다. * 홍지문(弘知門) : 1715년 축조된 탕춘대성의 성문(1921년 홍수로 무너진 후 1977년 복원) * 전체 길이 5,051m : 석성 구간 3,549m, 토성 구간 758m, 자연암반 구간 744m 「탕춘대성」은 평시에는 성안에 설치된 군량 보관창고인 평창(平倉)을 지키고, 전시에는 평창(平倉)에 비축했던 군량을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에 보급하는 기지 역할을 하였다. 한양도성을 지키기 어려워지면 조정과 도성민이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국가무형유산 ‘옥장(玉匠)’ 보유자로 김영희(金泳熙, 경기 파주시, 1959년생) 씨를 인정하였다. 국가무형유산 ‘옥장’은 옥으로 여러 가지 기물이나 장신구를 제작하는 기능 또는 그러한 기능을 보유한 장인을 말한다. 옥은 동양문화권에서 금ㆍ은과 함께 대표적인 보석으로 여겨지며, 사회신분을 나타내는 꾸미개(장신구)로도 쓰였다. 희고 부드러운 옥의 성질이 끈기와 온유, 은은함, 인내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옥의 제작과정을 살펴보면 채석-디자인-절단-성형-세부조각(구멍뚫기, 홈파기)-광택의 과정을 거친다. 각 공정에 따라 절단 공구인 쇠톱, 구멍을 뚫는 송곳인 활비비, 연마기인 갈이틀 등의 여러 가지 도구가 사용된다. * 갈이틀: 목재 등을 둥근 모양으로 가공하기 위한 기계 이번 국가무형유산 ‘옥장’ 보유자 인정조사는, 지난해 공모 뒤 서면심사와 현장조사를 해 옥장의 핵심 기능인 투각과 조각하기, 홈내기 등의 기량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 투각하기: 조각에서 묘사할 대상의 윤곽만을 남겨놓고 나머지 부분을 파서 구멍이 나도록 만들거나, 윤곽만을 파서 구멍이 나도록 만듦. 김영희 씨는 현재 시도무형유산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고창 문수사 대웅전(高敞 文殊寺 大雄殿)」과 「의성 고운사 가운루(義城 孤雲寺 駕雲樓)」를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고창 문수사 대웅전」은 전라도 지역 대표 문수도량인 문수사(文殊寺)의 주불전(主佛殿)으로, 보물로 지정된 「고창 문수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을 봉안항는 건물이다. 「의성 고운사 가운루」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의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진입부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계곡 위를 가로질러 건립된 절 누각 기운데 가장 큰 규모다. 고창 문수사는 644년(백제 의자왕 4)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기록으로 확인할 수는 없다. 「문수사 창건기(文殊寺 創建記, 1758년)」에 따르면 임진왜란 뒤 1607년(선조 40)에 중창(重創)되었고, 1653년(효종 4) 회적(晦跡) 성오화상(性悟和尙)이 또다시 고쳐 지었는데, 그다음 해인 1654년 제자인 상유(尙裕)가 삼불좌상과 시왕상 등을 조성한 기록으로 볼 때 「문수사 대웅전」 또한 이 시기에 중창(重創)된 것으로 추정1)된다. * 중창(重創) : 낡은 건물을 헐거나 고쳐서 다시 새롭게 지음 * 회적(晦跡) 성오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