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57-58) 가시리 가시렵니까 버리고 가시렵니까 나는 어떻게 살라고 버리고 가시렵니까 붙잡아 둘 것이지만 싫어지면 아니올까 서러운 님 보내오니 가시는 듯이 돌아오소서 높고 고운 나라, 고려(高麗)에는 노래가 참 많았다. 이 노래들을 우리는 ‘고려가요(高麗歌謠)’라 부른다. 지은이는 고백한다. 학창시절, 높고 고운 노래(高麗歌謠)를 접하자마자, 간절함 아래 흐르는 짙은 슬픔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그때는 삶도 문장도 서툴기만 하여 공책에 노랫말을 옮겨 적고 서랍 깊숙이 넣어뒀지만, 지금도 그 영혼들의 상처를 어루만질 만큼 충분히 성숙했다 자신하긴 어렵지만, 더 미루면 영영 그 노래들을 이야기하지 못할 듯싶어 용기를 냈다고. 선유가 쓴 이 책 《가시리》는 입에서 입으로, 750년 후인 오늘까지 전해진 고려가요를 실타래 삼아 한 가인(歌人)과 그녀를 둘러싼 두 무사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고려시대 악사들이 소속되어 있던 기관 팔방상(坊廂)의 으뜸 가인 아청(鴉靑)과 좌별초와 우별초를 대표하는 무사로 이름 날린 좌(左), 우(右)가 그 주인공이다. 셋은 원나라가 고려를 침공하여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절, 고려가 원을 피해 도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박노해 시인의 사진에세이 4집 《내 작은 방》이 나왔습니다. 이번에도 라 카페 갤러리(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10길 28)에서 사진전도 겸합니다. 그동안 박시인이 평화나눔 활동으로 중동, 남아시아, 남미를 순례하면서 찍은 사진 중에 37점을 엄선하여 내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사진에세이집 제목이 왜 ‘내 작은 방’일까요? 박 시인의 말을 직접 들어보지요. “우리 모두는 어머니 자궁의 방, 세상에서 가장 작지만 가장 위대한 방에서 태어났다. 그리하여 기쁨과 슬픔으로, 사랑하고 이별하고, 성취하고 저물어가면서 마침내 우리는 대지의 어머니, 땅속 한 평의 방으로 돌아간다. 살아있는 동안 한 인간인 나를 감싸주는 것은 내 작은 방이다. 지친 나를 쉬게 하고 치유하고 성찰하고 사유하면서 하루하루 나를 생성하고 빚어내는 내 작은 방. 우리는 내 작은 방에서 하루의 생을 시작해 내 작은 방으로 돌아와 하루를 정리하고 앞을 내다본다. 그곳에서 나는 끊임없이 새롭게 재구성되고 있다. 광대한 우주의 별들 사이를 전속력으로 돌아나가는 지구의 한 모퉁이에서, 이 격변하는 세계의 숨 가쁨 속에서 깊은 숨을 쉴 나만의 안식처인 내 작은 방. 여기가 나의 시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제주에는 생각보다 책방이 꽤 많다. 물론 번화한 육지와 견줄 바는 아니지만, 책방만 찾아다니는 ‘책방올레’가 있을 만큼 섬 곳곳에 책방이 많은 편이다. 책방마다 개성도 뚜렷해 어디를 가든 그 책방만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다. 《작은 책방은 힘이 세다》의 지은이 장지은은 이런 제주 책방의 매력을 해녀의 물질 못지않은 ‘글질’로 건져 올린다. 스스로 소개하는 문장 역시 담백한 울림이 있다. ‘제주살이 3년 차. 걷는 것, 듣는 것, 읽는 일, 쓰는 일. 네 가지 정도면 나쁘지 않다며 오늘 사는 사람’. 간결하면서도 삶의 운치를 잘 표현해냈다. 이 책은 그녀가 혼인을 계기로 제주에 내려간 뒤, 책방 수십 곳을 직접 살피고 그 가운데 서른 곳을 엄선한 기록이다. 그녀는 새로운 책방을 들른 소식을 대학 선배인 편집자 박주연에게 보냈고, 편집자는 그녀가 보내온 기록을 책방 여행에 목마른 여행자의 마음으로 아껴 읽고 다시 읽다 마침내 책으로 펴냈다. (p.6-7) 현재 제주의 책방은 마흔 곳쯤 된다. 내가 좋아하던 몇 곳이 문을 닫았지만, 또 새로운 몇 곳이 생겨났다. 어떤 책방은 하루에 몇 사람이 찾아오고 어떤 책방은 하루종일 발 디딜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한국예술종합대학 직전 총장이었던 김봉렬 교수가 《건축의 시간, 영원한 현재》라는 책을 냈습니다. 이 책은 김 교수가 서울신문에 ‘김봉렬과 함께 하는 건축 시간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입니다. 연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김 교수가 시간을 거슬러 석기 시대까지 우리를 데리고 가, 고인돌부터 시작하여 최근의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까지 시간을 따라가며 각 시대의 주요한 건축물을 소개하고 설명해주는 것입니다. 김 교수는 글이나 강단에서만 건축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답사팀을 이끌고 건축물이 있는 현장도 찾아가, 현장에서 생생한 건축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단순히 건축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 건축의 시대적 배경, 그 건축이 나오기까지의 역사, 다른 건축과의 비교 등등을 구수한 이야기로 풀어나가지요. 게다가 유머도 곁들이니, 열심히 듣고 있던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기도 합니다. 저는 김 교수의 답사를 여러 번 따라다녔습니다. 처음 김 교수의 답사를 따라갔던 때가 생각납니다. 고교동기인 김 교수의 답사여행 소문을 듣고 2006년 9월에 나도 따라가기로 하였었지요. 당시 여기저기서 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수덕여관! 예산 덕숭산 자락에 있는 이 여관의 이름은 어딘가 친근한 데가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이름난 수덕사 대웅전, 그 대웅전을 품은 수덕사에서 운영하는 공간인 까닭이다. 우리나라 근대 예술가 세 명이 지치고 힘들 때 말없이 품을 내어준,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공간이기도 하다. 《예술가의 여관》 지은이 임수진은 우리나라 근대 예술가들에게 각별한 공간이었던 이 수덕여관을 미래의 예술가들에게 소개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내게 재능이 있기는 한 건지, 꿈을 이룰 수나 있을지 시시각각 불안한 마음이 들 때, 100년 전의 선배 예술가처럼 수덕여관에 머물며 용기를 얻어보라고 말이다. 작가의 목소리에 힘을 얻은 수덕여관이 그들을 한 명 한 명, 차례로 부른다. 나는 초가집이었습니다. 색색이 고운 덕숭산 자락이 내 터전입니다. 본래 비구니 스님들이 쓰시던 절간이었는데 수덕사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손님들의 쉼터가 되었습니다. …(중략) 그래서일까요,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면 그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잊지 않고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오늘 잊을 수 없는 3명의 손님에 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머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빈섬 이상국 아주경제 논설실장이 《저녁의 참사람》이라는 제목의 다석 유영모(1890~1981) 선생 평전을 냈습니다. 제가 10여 년 전에 월간중앙에 <양승국 변호사가 산에서 만난 사람>을 연재할 때, 중앙일보 기자였던 빈섬은 월간중앙에 <미인별곡>을 연재하였지요. 그 당시 김광수 월간중앙 대표를 통해 빈섬을 알게 되어 가끔 식사도 하면서 소식을 이어왔기에, 얼마 전에 빈섬이 낸 다석 평전을 사 보았습니다. 2008년에 제22회 세계철학자대회가 한국에서 열렸습니다. 빈섬의 말에 따르면 당시 우리 철학계에서는 조선 시대의 이황, 이이, 송시열, 정약용과 현대의 류영모, 함석헌을 한국의 철학자로 내세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세계에 내놓을 만한 독창적인 사상적 심화를 이뤄낸 사람으로 꼽힐 사람은 다석 류영모뿐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다석이 그렇게 뛰어난 철학자였단 말인가?’ 하며 놀라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아니! 다석 자체에 대해서도 ‘그런 철학자가 있었나?’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다석은 그의 심오한 사상체계에 견줘 우리에게 덜 알려진 인물이지요. 사실 다석이 1981년 2월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제주 사계리는, 계절마다 매력이 가없다. 봄이면 봄마다 유채꽃이 피고, 여름에는 시원한 사계 앞바다가 펼쳐지고, 산방산과 송악산, 마라도와 형제섬, 가파도가 한눈에 보인다. 그래서 관광객도 많다. 철마다 많은 관광객이 오지만, 대부분은 그저 명소에서 사진만 찍거나 맛집으로 이름난 곳을 찾는 데 그친다. 이 책 《사계人, 사계In 제주 동네 여행》은 그렇게 사계리에 바람처럼 다녀간 사람이라면 모를, 사계리 사람들의 ‘진짜 사는 이야기’를 담았다. 사계리에 있는 흔한 명소나 풍경이 아닌, ‘사람’이 주인공인 책이라 더욱 새롭다. 뭍에서 살다 사계리로 이주해 온 이주민, 그런 이주민들을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받아들인 원주민, 그들의 이야기가 마치 옆에서 듣는 듯, 생생하게 들려온다. 소개된 사람들의 면면도 다양하다. 산방산 유람선 대표, 사계리 책방 ‘어떤 바람’ 주인, 사계리 토끼마을 해녀, 감귤농사 짓는 강태공, 서핑스쿨을 운영하는 해남 서퍼, 25년 유채밭지기… 제주에 있을 법하지만 실제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을, 글쓴이의 표현에 따르면 ‘화분’으로 사는 게 아니라 뿌리를 내리고 살기를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 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만덕의 성은 김 씨니 탐라국 양가의 딸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의탁할 곳이 없어서 기생집으로 가게 되고…(중략) 번암 채상국(채제공)이 78세에 충간의 담헌에서 쓰노라.” -머릿말 중에서- 김만덕.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생소한 이름이다. 흔히 우리나라 역사 속 여성 인물을 이야기할 때 신사임당, 허난설헌, 유관순 등을 첫손에 꼽는 사람은 많아도, 김만덕을 떠올리는 이들은 여전히 드물다. 그러나 김만덕은 우리나라 역사 속 어떤 인물보다 더 대단한 일을 해낸, 추사 김정희의 표현 그대로 ‘은혜의 빛으로 온 세상을 물들인’ 여인이다. 그녀는 4년 동안 이어진 혹독한 기근 가운데 자신의 전 재산을 풀어 곡식 오백 석을 마련했고, 죽어가는 수많은 백성을 살려냈다. 이 책 《제주의 빛 김만덕》은 그런 김만덕의 삶을 쉽게, 그러나 깊이 있게 풀어낸 책이다. 마을을 휩쓸고 간 역병으로 갑자기 고아가 된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모두가 칭송하는 ‘만덕 할머니’가 되기까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그녀의 삶을 오롯이 담아냈다. 그녀는 본디 기생과는 관련이 없는, 양인의 딸이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자상한 부모, 오라버니 만적, 동생 만재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바람처럼 그는 오늘도 섬의 이곳저곳을 누빈다. 무심히 긴 수평선, 바다를 찌르는 곶들, 방풍을 위해 수고로이 쌓은 끝없는 돌담, 앙상한 해송들, 마지막 남은 작은 초가집, 꽃이 다 날아가버린 황량한 억새 들판, 묵묵한 오름들, 그리고 무엇보다 구름들, 아니 바람결, 바람이 헤집어 놓은 구름장 사이로 쏟아지는 하늘빛을 그는 만난다. - 머릿말중에서 - 그렇다. 이 책은 화가 강부언이 섬 이곳저곳을 누비며 그린 그림에, 작가 현길언이 글을 덧댄 한 폭의 시화다. 강부언은 ‘삼무일기(三無日記)’라는 표제를 내걸고 그림을 그려왔다. 도둑, 거지, 대문이 없다는 뜻의 ‘삼무(三無)’는 제주도 사람들의 강한 자생력과 포용력을 보여주는 제주 특유의 삶의 방식이다. 강부언은 이런 삶 속에서 느낀 그날그날의 감상을 화폭 위에 거침없이 담아냈고, 현길언은 거문고 가락에 맞춰 시를 읊듯 그에 어울리는 글을 풀어냈다. 그 가운데 특히 마음을 울리는 풍경 몇 폭을 소개해본다. # 올레길 제주 걷기 열풍을 불러왔던 ‘올레길’. 올레길은 누구에게나 친숙한 말이지만, 그 뜻을 정확하게 아는 이는 뜻밖에 드물다. 예로부터 제주 집은 길가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자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청자상감국화모란문과형병, 연가7년명금동여래입상. 우리나라 문화재 이름은 참 어렵다. 모두 한자로 되어있어 어지간한 어른도 그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밑줄 좍좍 그으며 외우기만 했지, 문화재 이름이 왜 그렇게 불리는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탓이다. 그래서 길라잡이가 필요하다. 한자어로 된 문화재 이름을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해 주는 선생님이 있었다면, ‘역사는 재미없는 암기과목’으로 억울한 낙인이 찍히는 일도 뚜렷이 줄었으리라. 사실 그 뜻을 이해하고 나면, 문화재가 걸어온 길과 지금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더는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요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선보이고 있는 반가사유상 두 점, 국보 78호와 국보 83호만 해도 그렇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들었을 때 어른이라면 뜻을 대강이야 짐작은 하겠지만 아이들은 무슨 뜻인지 당최 알기 어렵다. 이 책에 나온 것처럼,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p.143-144) 반가사유상은 무슨 뜻일까요? 반가(半跏)는 반만(半-반 반) 책상다리(跏-책상다리할 가)를 했다는 뜻입니다. 사유(思惟)는 깊은 생각(思-생각 사, 惟-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