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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팝페라 가수 임형주의 목소리로 다시 듣는 장희빈

《임형주, 장희빈을 부르다》, 임형주 지음, 공감의기쁨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아파도 아파도 그대만을 사랑하리라

나 아파도 나 아파도 영원히 그대만을 사랑하리라

 

끝없이 펼쳐진 아득한 인생이란 그 길 위에서

나 그대의 손을 잡았어 영원히 함께일 줄 알았어

 

계절은 바람 따라 가고 태양은 노을 따라 가는데

나는 얼만큼 얼마나 기다려야 그대와 함께 갈 수 있나

혹시나 오는 길 잊어버렸나

정녕 되돌아오는 길 잊어 버렸나

 

                                         - 임형주 작사/ 이상훈 작곡 <영원(永遠)> -

 

임형주가 장희빈을 목놓아 불렀다. 그리고 책까지 펴냈다. 왜 이 사실을 여태 알지 못했을까? 장희빈을 주제로 장편 에세이를 펴낸 그의 열정을 이제야 알게 됐다. 우연히 책방을 둘러보다 발견한 수확이다.

 

이 책, 《임형주, 장희빈을 부르다》는 세계적인 팝페라 가수인 임형주의 목소리로 다시 듣는 장희빈 이야기다. 사람들이 흔히 ‘악녀’, ‘희대의 요부’라 알고 있는 장희빈에 대한 재해석은 그동안 누누이 시도되었지만, 이 책은 그 가운데 특별히 돋보이는 ‘장희빈 변론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장희빈이 과연 그토록 악녀였는지, 다만 남편과 아들을 지극히 사랑했던 여인이 권력투쟁에 비참하게 희생된 것은 아닌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장희빈은 타고난 신분의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비상한 노력을 했고, 한때 여자로서는 조선 여성의 으뜸 지위인 중전으로 비상하기도 했지만 끝내 추락하고 말았다.

 

책 첫머리에 실린 ‘내가 장희빈을 부르는 이유’에서 그는 이상하게도 어릴 때부터 많은 역사 인물 가운데 장옥정에게 끌렸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2010년 MBC 대하사극 <동이>의 주제가 ‘애별리’를 부르면서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던 장희빈에 대한 아련한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됐다.

 

마침 그 당시 <동아일보>의 객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던 그는 ‘순정녀 장희빈이 아름다웠다’라는 칼럼을 기고했고, 그것이 또 계기가 되어 악녀라는 소문만 무성한 장희빈을 《숙종실록》을 기본으로 본격 재조명한 책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2년 동안 바쁜 공연 일정을 소화하며 대기실에서, 비행기 안에서 시간을 쪼개 틈틈이 원고를 썼다. 그는 자신이 장옥정에 끌렸던 까닭 가운데 하나가 현실적인 차별과 편견의 굴레를 뿌리치고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했던 점이라고 말한다.

 

(p.17-20)

‘희대의 악녀’, ‘복수의 화신’이 아니라 첩의 딸로 태어나 신분의 벽을 넘어 기득권과 맞서며 운명을 개척한 장희빈의 편을 조금이나마 들어주고 싶었다. 그의 삶에, 열두 살에 데뷔해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경계에서 편견과 맞서야 했던 내 모습도 겹쳐 보였다. 나와 장희빈의 공통 키워드는 ‘꿈’이다. 그리고 평탄한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운데 줄임) 숙명적으로 대물림된 천민이라는 꼬리표와 낙인을 극복하고, 스스로 삶을 개척해나간 ‘신여성’ 장옥정. 자식에 대한 지극한 모성애를 가졌던 ‘어머니’, 장옥정. 지금까지 우리가 몰랐던, 아니 그 진실을 밝히려 하지 않았던, 시대를 앞서간 여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이제 시작된다. 이것이 지금 이 순간 내가 장옥정을 목놓아 부르는 이유다.

 

실제로 그랬다. 장옥정은 중인 신분이었던 역관의 딸이었고, 그나마 첩의 딸이었기에 어미의 신분을 따르는 조선의 법에 따라 천민 신분이었다. 물론 당시 청과 조선 사이의 중개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던 역관 집안의 특성상 남부럽지 않은 재력을 갖추었지만, 그녀 앞에 놓인 미래는 아버지 같은 양인과 혼인하거나 잘해봐야 양반가의 첩이 되는 길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선택했다. 차라리 임금의 후궁이 되기로. 장옥정은 흔히 궁녀로 입궁하는 나이보다 훨씬 늦은 15살 전후에 입궁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당시 왕실의 가장 웃어른이었던 대왕대비 조씨 곁에 배치되어 남인의 재기를 돕는 역할을 맡는다.

 

이 계획은 인현왕후를 중심으로 한 서인의 세력을 견제하려던 숙종의 계산과 맞아떨어져 장희빈은 중전이 되었고, 인생의 정점을 찍는다. 다만 그녀는 중전 자리를 계속 지키기에는 가문의 배경, 문화적 소양, 정치력 등이 여러모로 부족했던 것 같다. 서인의 재기와 함께 그녀는 다시 희빈 장씨로 돌아가게 되었고, 인현왕후 사후 신당을 차려 국모를 저주했다는 까닭으로 끝내 사사당했다.

 

그러나 주어진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을 밀어내는 현실 속에서도 끝없이 나아가고자 했던 그녀의 열망은 몇백 년 뒤 한 사람을 매료시켰다. 그녀가 가진 삶에 대한 강한 애착, 운명에 맞서려는 의지, 그리고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는 모습이 지은이를 사로잡았다.

 

(p.202)

만약에 장옥정이 현실에 안주하고 살았다면 경종은 모계의 신분에 따라 천민이 되었을 것이다. 장옥정은 이 숙명의 고리를 끊어냈다.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신분제에서 자신의 아들에게 천민이라는 신분을 물려주지 않았다. 그것이 어머니 장옥정의 마음이었다.

 

비록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용과 근거가 다소 빈약한 아쉬움은 있지만, 장희빈에 대한 새로운 서사를 써 내려간 집념이 돋보이는 책이다. 지난 2008년 지은이가 숙종과 장희빈의 애달픈 사랑을 주제로 작사한 ‘영원’ 또한 여인 장옥정의 인생을 잘 대변해준다. 유명 팝페라 가수가 다시 부르는 장희빈의 노래를 듣고 싶은 이라면, 한번 귀를 기울여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