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까지 <도살풀이춤>의 예능보유자였던 김숙자 명무와 수제자, 최윤희(본명, 최영순)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최윤희는 10대에 김숙자 문하에 들어가 5년여 전통춤의 기본 동작과 춤사위, 발 디딤새, 호흡, 등을 착실하게 배웠다는 이야기, <도살풀이춤>이란 <도당굿 살풀이춤>을 줄인 말로 흉살이나 재난을 없애 마음을 편안케 하고, 생명을 보존하여 행복을 맞이한다는 종교적 소원에서 비롯된 춤이라는 이야기, 최윤희는 전주대사습 <장원>, 진주 <개천예술제> 대통령상 수상, <전남도립국악단> 안무자, 대전 연구소 활동, 「홍성군립무용단」 창단을 비롯하여, <동국대 사회교육원>, <불교방송국> 등에서 『도살풀이춤』 강좌를 개설해 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개인발표회(2004, 2)에 이매방 명인이 특별출연하여 혼(魂)과 맥(脈)이 담긴 최고의 춤을 이어받았다고 극찬하였다는 이야기, <입춤>은 즉흥성의 멋과 흥을 위주로 하는 춤이라는 이야기,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는 미국 샌디에고에서 열린 세계평화기원 대법회에서 <도살풀이춤&g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도살풀이춤>의 예능보유자 김숙자 명인은 타계하기 전, 수제자인 최윤희에게 이수증을 주고 그 전승체계를 세우려 했다는 이야기, 이수증(履修證)이란 무형문화재 제도에서 전수생 과정을 마쳤다고 하는 하나의 증명서인데, 수여 제도는 문화재청에서 주관하다가 보유자에게 일임하기도 하고, 현재는 다시 문화재청이 시행하고 있다는 이야기, 최윤희는 선생을 잃고, 평소 동경해 오던 인도로 가서 주위와는 소식을 끊고 잠적하였으나 춤꾼이 춤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법, 특히 <도살풀이춤>을 좋아했는데, 이 춤은 긴 수건을 허공에 뿌리며 아름다운 곡선을 그려가는 춤사위가 일품이라는 이야기 등을 지난주에 하였다. 그래서일까, 최윤희는 가는 곳마다 <도살풀이춤>을 추었다. 미국공연을 마친 후에는“ 순백색으로 처절하게 펼쳐지는 살풀이, 그 예술성으로 청중들을 무아의 경지에 빠지게 하다”라는 논평이 신문이나 잡지를 도배하듯 했다. 그렇다. 그가 펼치는 도살풀이 춤사위는 비교적 선이 크고 굵다. 그래서 흔들림이 없는 천근(千斤), 만근의 무게가 느껴지는 춤이며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그 감동이 땅으로부터 하늘에 닿아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입춤>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입춤>이란 서서 추는 모든 춤의 포괄적 명칭으로 이해해도 된다는 이야기, 즉흥성의 멋과 흥을 위주로 하는 자연적인 곡선의 춤으로 <교방무>, <굿거리 춤>, <수건춤>, <부채춤>, <소고춤> <헛튼춤>, <즉흥무>, <흥춤>, <기본춤>이란 이름으로도 불러왔다는 이야기, 입춤의 명무였던 김숙자의 춤사위는 현재 대전시 예능보유자인 최윤희가 이어가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1990년, 국가예능보유자가 된 김숙자 명무는 그 이듬해에 병사하게 된다. 당시의 상황을 최윤희는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건강이 좋지 않으셨던 선생님께서 별안간 저에게 올라오라는 연락을 주셨어요. 저는 무슨 일인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선생님 댁으로 달려갔지요. 저에게 선생님은 불분명한 목소리로 무슨 서류를 준비해 오라고 말씀하셨는데, 무슨 내용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었더니 몹시 답답해하시면서 방에 있던 딸, 김운선에게 큰소리로 ‘언니에게 이수증 서류를 설명해 줘라!’라고 말씀하셨어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춤사위의 원형과 변형사이에서 무용계를 걱정하던 이매방 명인의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전통춤의 원형을 변질시켜 놓고, 문화재 지정에만 눈이 어두운 사람들이 있으니 주무 관청에서는 더욱더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따끔한 충고, 후보자의 선정방식이나 전수조교 지정절차에서도 해당 종목의 보유자 의견은 무시될 수 없다는 이야기, 그리고 통보절차에 관한 상의도 함께 해야 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최윤희는 2012년, 대전시 무형문화재 <입춤>의 예능보유자로 인정을 받고 활동을 하게 된다. <입춤>이란 어떤 춤인가? <입춤>이란 발 디딤, 곧 서서 추는 모든 춤의 포괄적 이름으로 이해해도 될 것이다. 4발 동물들과 달리, 양발을 땅에 디디고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 발 디딤이란 춤 동작의 기본 틀을 이루고 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이 동작은 어쩌면 춤이 시작되고 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입춤은 특별히 복장을 갖추지 않은 채, 서서 추는 춤, 입으로 구음(口音)을 하면서 추는 모든 춤의 기본이라고 볼 수 있다. 경기, 충청권에서 추는 입춤으로는 김숙자의 입춤이 최윤희에 의해 널리 알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최윤희의 국립국악원 도살풀이춤 개인발표회(2004, 2)에 이매방 명인이 특별출연을 해 주었고, 축하의 글까지 보내 주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 명인에 의하면 김숙자 명무의 도살풀이춤은 크고 무거우며 엄숙하고 강한 민속무용이며, 감동을 주는 예술의 혼(魂)과 맥(脈)이 담긴 최고의 춤이었다는 평가를 하고 있었고, 무형문화재 제도와 관련해서도 공개적으로 날카로운 비평을 서슴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2004년 2월, 당시 이매방 명인은 최윤희의 도살풀이춤 발표회를 축하하는 글에서 이렇게 적고 있었다. “근자의 무용계를 둘러보건대, 전통춤 원형의 변질을 비롯한 일부 인간문화재 지정에만 눈이 어두운 사람들의 행태로 인하여 많은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엄연히 <도살풀이춤>의 장단과 춤사위가 있음에도, <살풀이춤>을 도용하여 제멋대로 만들어 추면서 원형이라고 떠벌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런 것을 관리하고 통제해야 할 관청에서는 오히려 엉뚱하게도 그런 사람을 인간문화재로 지정하려고 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통탄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최윤희는 1985년, 진주 <개천예술제>에 <도살풀이춤>으로 출전하여 대통령상을 받았고, 1986년 <전남도립국악단> 창단과 함께 무용부장-상임안무자가 되어 활동하였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1991년 대전으로 연구소를 옮겼을 때, 100여명이 넘는 문하생들이 모여들었으며 그의 고향, 충남 홍성군에서는 그를 초청하여 군민들에게 전통춤을 지도하게 하였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2005년에는 「홍성군립무용단」을 창단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동국대 사회교육원>과 <불교방송국>에 『도살풀이춤』 강좌를 개설하여 10여년 동안 전승과 보급 활동을 해 왔다는 이야기 등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최윤희 발표무대에 이매방 명인이 찬조출연을 해 주어 무대가 더더욱 빛났다는 이야기를 한다. 최윤희로부터 직접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한다. 2003년 가을로 기억되는 남쪽 지방의 큰 국악경연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초대를 받았다. 심사위원들이 숙박하는 호텔 앞에서 승강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이매방 명인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생전의 이매방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 소개한 <도살풀이춤>이란 <도당굿 살풀이춤>을 줄인 이름이며, 이는 <살풀이춤>의 원초형으로 춤사위가 비교적 자연스럽고 소박한 것이 특징이란 점을 이야기 하였다. 무용학원의 원장겸 사범으로 더욱 춤 공부에 매진한 최윤희는 전주대사습에서 <장원>을 차지했고, 이어서 1985년도에는 진주 <개천예술제>의 하나로 인기를 끌었던 <한국무용제>에 참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진주에서 해마다 열리고 있는 <개천예술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전통예술제로 알려진 축제다. 다양한 행사 가운데서도 특히 <한국무용제>는 대통령상이 걸려 있는 수준 높은 대회여서 누구누구, 이름만 들어도 짐작할 수 있는 전국의 유명 춤꾼들이 해마다 대거 진주로 몰려들었던 권위있는 대회였다. 여러 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맹연습해 온 최윤희도 여기에 <도살풀이춤>으로 도전장을 냈으나, 워낙 내로라하는 무용계 선, 후배들이 경쟁하는 무대여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동안 스승의 지도를 받으며 최선을 다해 온 지난 시간을 믿을 수밖에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도살풀이춤>의 예능보유자였던 김숙자의 수제자, 최윤희(본명, 최영순)는 현재 대전시 무형문화재 ‘입춤’의 예능보유자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는 어려서부터 춤을 좋아했고, 흥이 많았던 소녀로 유홍란을 통해 김숙자 문하에 들어가 선생 댁에 기거하면서 5년여 전통춤의 기본 동작과 춤사위, 발 디딤새, 호흡, 등을 착실하게 배웠다. 최윤희가 스승 밑에서 열심히 배운 <도살풀이춤>이란 <도당굿 살풀이춤>을 줄인 말이다. 이 춤은 예인무의 하나로 행해지고 있는 살풀이춤의 원초형으로 원래 흉살(凶殺)과 재난(災難)을 소멸시켜서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생명을 보존하는 안심입명(安心立命)의 기원과, 나아가 행복을 맞이한다는 종교적 소원에서 비롯된 춤이다. 이 춤은 춤사위가 자연스럽고 소박한 것이 특징이다. 그러면서도 삶의 깊은 뜻이 있는 춤이며, 특히 흰색의 긴 천을 들고 추는 것이 특징인데, 그 긴 천에 의한 공간상의 유선이 훨씬 다양하고, 무게감이 느껴지는 춤이다. 스승에게 배운 춤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날로 완전히 소화한 뒤, 일반 수강생들 앞에 조교의 역할을 다 하였다고 한다. 매매일을 춤 속에서 살았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제25회 한밭국악 전국대회>가 코로나 정국에서 <한밭국악회>와 <대전시>의 국악사랑으로 열렸으며 질서있게 진행되었다는 이야기, 시상식장에 대전지역의 시민과 유지들이 참여하여 대회를 빛내 주었다는 이야기, 젊은 노래 그룹을 초대하여 젊은이들에게 전통음악과 춤을 친근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점, 특히 <한밭국악회>의 현 이사장과 함께 초대 최윤희 이사장의 노고가 밑받침되었다는 점 등을 이야기하였다. 최윤희 그는 누구인가? 이번 주에는 대전 <한밭국악회>의 초대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처음 이 대회를 개최한 도살풀이의 춤꾼, 최윤희 명무(名舞)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전통무용인들은 ‘이매방의 살풀이’ 또는 ‘도살풀이의 김숙자’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매방이나 김숙자, 두 명인은 이미 타계하였지만, 생전의 두 명무는 각각 <살풀이춤>의 대가로 활동했다는 말이다. 특히 김숙자는 경기, 충청의 <도당살풀이굿>에서 유래한 살풀이춤의 예능보유자였으며 최윤희는 이 춤으로 유명했던 김숙자 명인의 수제자이다. 우선 <살풀이춤>이란 어떤 춤인가? 그 이름에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제25회 한밭국악 전국대회>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하였다. 우리나라는 <코로나 19>란 괴질의 감염 정국이어서 집합이나 단체 활동이 자제되고 있음에도 한밭 국악경연대회가 열렸다는 이야기, 매년 전국적으로 140여 개 이상의 경연대회가 열리고 있는데, 2020년에는 모두 취소되었거나 연기되었고, 이번 한밭국악경연이 처음 열렸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제25회 한밭국악대회와 관련하여 심사평을 소개하기로 한다. 글쓴이는 동 경연대회에서 전체심사위원장에 임명되어 매우 조심스러웠다. 특히 경연대회를 진행해 나감에 있어서 참가자들의 반응이나 때로는 심사위원이나 진행요원, 등 어느 사람에게서라도 잡음이 발생한다면 이는 본 대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틀 동안의 진행 결과는 멋지게 끝났다. 그래서 그 결과를 지역의 텔레비전방송이 중계하는 시상식장에서 심사총평으로 남기게 된 것이다. 첫째, 코로나 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어렵게 한밭국악회의 전국국악대회가 열렸다. 그 배경은 신임 <오주영> 한밭국악회 이사장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