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아오모리라고하면 일본 내에서도 손꼽히는 사과 산지다. 그런데 수확을 앞둔 이곳에 커다란 고민이 생겼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과절도’이다. 사과 절도꾼들은 아예 사과밭에 트럭을 대놓고 사과를 싹쓸이로 털어가고 있다고 과수원 주인들은 울상이다. 특히 올해의 경우 지난해의 13배에 이르는 1만 3천개를 도둑맞았다고 한다. 아오모리 히젠( (青森・弘前)의 한 과수원에서는 ‘후지(富士)’ 품종의 사과를 바로 수확 직전에 털리고 말았는데 “이제 참는 것도 한계다. 너무 화가 난다.”,"수확이 끝날 때 까지 쉬지도 못한다.”와 같은 주인들의 탄식이 줄을 잇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올 들어 처음으로 과일 도난이 드러난 것은 지난 10월 13일로, 아오모리시의 과수원 약 800개(6만 엔 상당) 정도가 손해를 입었다고 한다. 지난 22일에는 히라가와시에서 1,700개(18만 엔 상당), 26일에는 히젠시 사과 과수원 약 4,300개소가 사과털이를 당했다. 30일에는 구로이시에서 1,200개, 10월 1일에는 츠가루시에서 사과 5,000개를 도둑맞는 등 사과털이범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그렇잖아도 태풍 영향으로 사과 작황이 좋지 않다보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세탁하는 30분 동안 앞에 앉아있었는데 심심해서 죽을 것 같았어요. 어디가기도 그렇고... 다음 이용 때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가야겠어요.” 이는 오사카에서 코인란도리(셀프빨래방)을 이용하면서 겪은 한 누리꾼이 올린 글이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셀프빨래방이 많다. 가정집이야 웬만하면 세탁기가 있지만 집이 좁거나 방 하나를 세 얻어서 살거나 하는 사람들은 천상 코인란도리를 이용해야한다. 초기의 코인란도리는 좁은 공간에 세탁기와 건조기를 여러 대 들여놓아 정작 빨래를 하러 온 사람들은 앉아서 책을 보거나 할 공간도 없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느 사이엔가 일본의 코인란도리도 조금씩 변화를 꾀하고 있다. 예전에는 주택가 골목 한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던 코인란도리가 어느 사이 대로변으로 나와 커피숍을 겸하는 곳이 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예 이제는 코인란도리 안에서 세탁강좌를 열거나 영화를 상영하는 곳도 생겼다. 11월 5일치 민나노케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도쿄 메구로 쥬오거리에 독일계 체인인 ‘프레디렉 워시살롱 도쿄(FREDDY LECK sein WASHSALON TOKYO)’가 문을 열었으며 이른바 빨래방영화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 마누라가 없는 이 날은 아침부터 프리미엄 『妻いない この日は朝から プレミアム』 →잔소리 하는 마누라가 집을 비우면 더없이 좋다는 뜻 * 늦어도 확실히 늦잠 잤다고 말하는 신세대 『遅れても はっきり寝坊と 言う新人』 →예전 같으면 늦는 경우 버스가 늦게 왔다던가 하는 변명을 하지만 신세대 젊은이들은 ‘늦잠 잤다.’라는 말을 직격으로 한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내지는 놀라움을 표현 * 체중계 올라가는 용기와 보는 용기 『体重計 上る勇気と 見る勇気』 → 일본 사람들도 다이어트에 신경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시 * 요리가 나오면 사진 찍기까지 기다려야한다 『料理出て 写真撮るまで 待てをする』 →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 바로 먹는 게 아니라 일단 사진을 찍느라 바쁜 세태를 말하는 시 * 아버지의 노고를 알고 있는 구두 밑창 『父さんの 苦労知ってる 靴の底』 →아버지의 노고에 민감하지 않은 세태를 구두 밑창을 통해 간접적으로 말하는 시 이는 2018년 2월 15일, 일본 제일생명보험에서 샐러리맨들의 회사생활의 애환을 담은 제31회 “샐러리맨 센류(川柳) 콩쿨대회 100선” 가운데 일부이다. 일본 문학의 한 장르인 센류(川柳)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빨간호박, 노란호박 작품으로 유명한 나오시마(直島)는 인구 3,000명 정도의 작은 섬이지만 ‘현대 미술의 성지’ 또는 ‘예술의 섬’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일본의 쟁쟁한 도시들을 제치고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이곳에 몰려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평범한 작은 섬이 일약 유명한 관광명소로 자리 잡은 데는 쿠사마 야요이, 미야지마 타츠오, 안도 타다오와 같은 쟁쟁한 예술가의 작품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예술의 섬 나오시마는 1991년부터 15년 동안 베네세 코퍼레이션에서 나오시마 프로젝트를 만들어 ‘집 프로젝트’, ‘땅속미술관’ 등의 획기적인 작품과 미술관을 기획했던 한 사람이 2006년 섬을 떠난 뒤 이곳에 대한 글을 발표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라고 볼 수 있다. 섬 전체에 예술작품이 즐비한 나오시마는 섬 들머리에 설치되어 있는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인 쿠사마 야요이(草間 彌生)의 작품인 물방울무늬 호박부터 시작해서 여러 설치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일본의 유명 건축가 안도 타다오(安藤忠雄)가 설계한 미술관이 3개나 있는 그야말로 예술의 섬이다. 안도 타다오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교토는 지금 10월 22일(월)에 열리는 지다이마츠리(時代祭) 준비로 바쁘다. 푸른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지는 형형색색의 옛 시대의 옷을 입은 사람들의 행렬은 가히 일품이다. 교토의 3대 마츠리라고 하면 5월 15일의 아오이마츠리(葵祭), 7월 17일의 기온마츠리(祇園祭), 10월 22일의 지다이마츠리(時代祭)를 꼽는다. 오래된 순서를 꼽으라면 아오이마츠리 (567년), 기온마츠리(863년), 지다이마츠리(1895년) 순이다. 성격으로 따지자면 아오이마츠리는 궁정에서 시작한 마츠리(국가의 제사 형식)로 볼 수 있고 기온마츠리는 서민(전염병 퇴치의 제사)층에서 향수하던 마츠리다. 10월 22일에 열리는 지다이마츠리는 명치정부가 교토 천도(헤이안 천도, 794년) 1,100년째를 기념하여 명치28(1895)년에 새로 시작한 마츠리다. 명치정부는 교토 천도 당시의 환무왕(桓武天皇)을 모시기 위한 사당으로 헤이안신궁(平安神宮)을 만들고 그해 10월 22일부터 10월 24일에 걸쳐서 성대한 마츠리를 거행했다. 지다이마츠리에 등장하는 사람이나 도구, 행렬 시간 등을 따지자면 7월의 기온마츠리(祇園祭)가 가장 성대하지만 5월의 아오이마츠리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제는 한국 글자인 한글 반포 572년째 되는 날이다. 여러 곳에서 세종대왕의 ‘백성사랑’ 정신을 기리는 행사가 있었다. 그렇다면 이웃나라 일본의 문자인 ‘가나(がな)’는 언제 생긴 것일까? 30여년 이상 일본어교육 현장에서 수업을 해오면서 첫 수업시간에 ‘가나(がな)’의 기원을 물어보면 의외로 ‘메이지시대(明治時代, 1868-1912)’라고 답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러나 정답은 아니다. 일본글자인 ‘가나(がな)’는 한글과 달리 만든 시기와 만든 사람을 알 수 없다. 물론 만든 목적도 알 수 없다. 그에 견주면 한글은 ‘세종임금이 1443년,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사랑해서 누구나 알기 쉽게 쓰게 하려고 만든 글자’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일본 글자의 출발이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85) 초기라고 하는 설도 있으나 서기 1,000년 정도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 그렇다면 한글 만든 지가 올해 572년째이니 ‘가나(がな)’ 문자가 428년 정도 앞섰다고 봐야한다. 그럼 왜 한글은 일본의 가나글자보다 늦게 나온 것일까? 그 답은 아주 간단하다. 한국에서는 세종임금이 나오기 전까지는 양반이라면 ‘한글이란 글자가 없어도 불편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스웨덴 캐롤린스 연구소는 1일, 2018년 노벨의학생리학상을 교토대학 고등연구원의 혼조타스쿠(本庶佑, 76살) 교수와 미국 텍사스대학 제임스 앨리슨 교수 2명에게 수여한다고 발표했다. 노벨의학생리학상 부문은 일본에 벌써 5번째로 2년 전에도 교토대학 교수가 IPS세포 관련으로 수상한 바 있다. 이번에 노벨의학생리학상을 받게 된 교토대학 혼조 특별 교수는 인간이 원래 갖고 있는 면역력을 이용하여 암세포를 공격하는 방법을 개발함으로써 암치료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혼조 교수가 발견한 분자 「PD-1」 는 T세포(면역세포)의 표면에 있으며 공격대상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일종의 검문소 역항을 하는 ‘면역 첵크포인트’라고 불리는 것으로 이것은 신약화 되어 2014년부터 시판에 들어갔다. 이 약은 암 치료약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입증되어 많은 암환자들이 호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암 치료는 지금까지 와과수술, 방선선 치료와 함께 항암제 투여 등의 화학요법 등 세 가지 방법이 주류를 이뤘다. 이 가운데 방사선 치료와 약물투여는 암세포를 공격하는 데 견주어 면역요법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힘을 이용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난해 11월 《전업주부는 2억엔을 손해보고 있다(専業主婦は2億円損をする)》라는 책을 내어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다치바나 아키라(橘玲, 60살)씨는 여자가 아니라 남성이며, 본명이 아닌 필명을 쓰고 있다.이 책에 대한 댓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목이 강한 인상을 줘 사서 읽었다. 이 책은 전업주부 비판이 아니라 일본에 있는 문제점을 잘 드러낸 책이다. 일본 여성의 입장에서 결혼과 출산으로 인생이 바뀌어 버려(직장 등을 지속하지 못해) 슬프다. 결혼과 출산, 자녀양육, 미혼 등 젊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서서이라도 여성들이 지고 있는 짐을 제도적으로 개선해갔으면 한다.” “계속 신경이 쓰이던 책이다. 원래 결혼하더라도 일은 지속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인데 이 책을 읽고 더욱 그런 생각이 강해졌다. 물론 나는 직장에서 승진을 하고 억척스럽게 돈을 모으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찬성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여성의 활약, 남녀평등에 관한 것을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여 수치로 제시하는 것을 보면서 일본이 뒤처지고 있음에 놀랐다.” “부정적인 제목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 법륭사 금당벽화는 동아시아 불교미술사상 최고의 보물로 알려져 왔다. 그런 까닭에 명치 30년(1897) ‘고사사(古社寺, 오래된 신사와 절)보존법’ 시행직후에 금당이 특별보호건조물로 지정되자 벽화 보존은 대정(1912~1924) 연간에 법륭사벽화보존방법조사위원회의 조사를 시작으로 각종 대책을 검토하기에 이른다. 소화 9년(1934) 법륭사국보보존사업이 개시되자 정확한 현장기록 작성을 목적으로 한 금당벽화의 원치수분할촬영(原寸大分割写真撮影)이 기획되었으며 교토의 편리당이 이를 맡아 관리하였다. 그렇다면 금당벽화는 얼마나 아름다운 것일까? “금당은 동쪽 입구로부터 들어가게 되어 있다. 우리는 그곳(벽화)으로 가기 위해 먼저 본존 앞에서 왼쪽으로 꺾었다. 약사삼존불 앞에 왔을 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서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일렬로 나란히 줄지어져 있는 오래된 불상과 검은 기둥 사이의 서쪽 벽에 아미타불이 밝은 모습으로 합장한 손의 모습까지 확실히 보이는 것이었다. 동쪽 입구에서 조금 먼 거리에 있는 아미타불이 이렇게 확실히 보일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이 정도의 거리를 두고 바라다본 벽화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뒷줄임)”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을 읽노라면 언제나 윤 시인의 고향집으로 가는 길목의 선바위가 떠오른다. 그 산모퉁이 언저리를 돌아 윤 시인이 태어난 북간도 명동촌과 윤 시인이 죽어 묻힌 무덤으로 여행을 떠난 사람들이 있다. 어제(10일) 도다 이쿠코(戶田郁子, 인천관동갤러리 관장) 씨는 나에게 윤동주 시인의 무덤에서 시낭송을 한 일본인들과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이번 윤동주 고향을 찾아온 사람들은 평범한 일본 시민들입니다. 이들은 우에노 미야코 시인이 번역한 윤동주 시인의 시집을 들고 와서 각자 좋아하는 시를 낭송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시낭송을 새겨들으며 아주 감동적인 시간을 보냈습니다.” 도다 이쿠코 작가는 연변에서 10여년 가까이 지낸 경험이 있어 종종 윤동주를 그리는 일본인들을 안내하곤 한다. 누구보다도 윤동주 시인에 대해 잘 알뿐 아니라 중국어에도 능통한지라 일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