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고행록(苦行錄). 이 책의 주인공, 한산 이씨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 한글 자서전에 붙인 제목이다. 얼마나 인생이 고단했으면 자서전에 ‘고행록’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나 당시 여성으로서는 최고의 자리인 정경부인까지 올랐지만, 인생의 그림자와 거친 비바람에 눈물 흘린 날들도 참으로 많았다. 이 책 《고행록, 사대부가 여인의 한글 자서전》 지은이 김봉좌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근무하던 시절, 진주 유씨 모산종택을 방문해 두루마리 형태의 친필본을 직접 보았다. 당시 장서각에서는 한산 이씨 부인의 《고행록》 번역 작업이 한창이었고, 지은이는 한글문헌학 전공자로서 자료집 편찬을 주관하고 있었다. 이때 펴낸 자료집이 《고행록: 17세기 서울 사대부가 여인의 고난기》였고, 여기서 못다 한 이야기를 올올히 풀어낸 것이 이 책이다. 사실 한산 이씨는 남편의 정치적 부침은 전혀 기록하지 않았기에, 유명천의 행적과 한산 이씨의 고행록을 견준 지은이의 노고로 하나의 완결된 서사가 탄생할 수 있었다. 한산 이씨 부인은 아계 이산해의 고손녀로 1659년(효종10), 기해년에 태어났다. 한산 이씨 가문은 이산해와 그 아들 이경전
[우리문화신문=김영환 한글철학연구소장] 《우리말의 탄생 2판-최초의 국어사전 만들기 50년의 역사(최경봉, 책과 함께, 2019)》는 우리말 사전 편찬사를 다루고 있다. 초판이 나온 지 14년 만이다. “근대사의 맥락에서 우리말 사전 편찬사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우리말의 존재 의미를 생각할 계기를 만들었다”(6쪽)라는 초판에 대한 평가는 2판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많은 자료를 모으고 부지런히 쓴 노력이 돋보인다. 제목으로만 보면 오랫동안 무관심과 멸시의 대상이었던 우리말과 글에 관한 관심과 사랑을 열렬히 주장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주시경 이래의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경성제대 ‘과학적’ 국어학 감싸기가 도드라지는 점이 첫번째 지적할 점이다. 그러면서 말글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서술하였다. ‘역사의 아이러니, 교조화된 민족주의, 결벽증적 도덕성의 억압(45쪽, 338쪽, 358쪽)’ 등의 표현이 보인다. 이 책은 ‘과학적’이란 말을 ‘민족주의’와 대립시키면서 과거 한글전용주의를 가리켜 민족주의 감정에서 나온 편협한 사고라고 주장하는 학맥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여기서 ‘과학적 국어학’이란 무엇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내용은 오구라와 고바야시가 경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부끄러운 봄 - 이하재 조상 탓이라고 환경 탓이라고 남의 탓이라고 한평생 탓만 하고 살았구나 돌 틈에서 꽃을 피운 민들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워 아니 본 듯 발길을 돌린다. 민들레는 양지바른 풀밭이나 들판, 길가, 공터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는 없으며 잎은 밑동에서 뭉쳐나와 가운데서 바큇살 모양으로 퍼져 지면을 따라 납작하게 붙어 자라는데 잎몸은 깊게 갈라지고 가장자리에 큰 톱니가 있다. 꽃은 봄에 노란색으로 피고 여러 개의 낱꽃이 모여 피는 겹꽃인데 씨앗은 긴 타원형으로 털이 붙어있고, 이 씨앗들이 모여 솜털처럼 보송보송한 열매가 된다. 날씨가 맑고 바람이 부는 날에는 이 씨앗들은 털에 의해 멀리까지 날아가 떨어져 싹을 트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씨앗들이 멀리 날아가 다른 곳에서 싹 트는 것을 두고 전해지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아주 먼 옛날 비가 몹시 많이 내려 온 세상이 물에 잠기고 민들레도 꼼짝없이 물에 빠져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민들레는 너무 무섭고 걱정이 되어 그만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렸다. 물이 턱밑에까지 차오르자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하느님 너무 무서워
[우리문화신문=이나미 기자] 버니온더문이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해 중국 역사를 코믹하게 설명하는 《고양이가 중국사의 주인공이라면》 시리즈의 제3권을 펴냈다. 제1권(하, 상, 서주 편), 제2권(춘추 전국 편)에 이은 세 번째 이야기는 진나라 멸망부터 광무제가 다시 세운 후한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역사의 흐름 아래 개성 있고 귀여운 고양이 캐릭터를 활용해 다양한 역사적 인물을 소개한다. △진나라 말기 중국 최초의 농민 반란을 주도했던 진승 △‘서초패왕’이라 불리며 기세등등했던 초나라 항우 △초한 전쟁의 승리로 한나라를 세운 유방 △유방의 부인으로 한나라의 권력을 장악했던 고황후 여치가 이야기의 전반부를 이끌어간다. 이 밖에도 한나라의 태평성대를 이룬 문제와 경제, 정복 전쟁으로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며 거대한 한나라를 만든 한무제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후반부에는 한나라의 신하였지만, 썩어빠진 한나라를 무너뜨리고 신나라를 세운 왕망과 그 신나라를 무너뜨리고 다시 한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광무제의 이야기가 다이내믹하게 펼쳐진다. 한편 한나라는 중국 역사상 강대했던 나라 가운데 하나로, 통일 국가로서는 가장 오래 통치했다(약 400년). 현재 중국인을 뜻하는 ‘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은근히 친숙하면서도 잘 안다고 생각했던 조선, 그러나 보면 볼수록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신기한 조선. 기록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만큼 재밌는 사실도 많고, 이 책의 부제처럼 ‘민초의 삶부터 왕실의 암투까지’ 다양한 결의 역사를 두루 맛볼 수 있는 시기가 조선이다. 《조선 산책》 지은이 신병주 교수는 조선사 전문가로, 역사의 다양한 모습과 그것이 오늘날 지니는 함의를 꾸준히 전달해왔다. 이 책은 2015년 10월부터 <세계일보>에 ‘역사의 창’이라는 이름으로 약 3년 동안 격주로 연재한 칼럼을 시의에 맞게 적절히 재구성한 것이다. 칼럼에 연재한 글이니만큼 각 꼭지가 재미있으면서도 완결성을 갖추고 있어, 책의 어느 부분을 펴서 읽어도 술술 읽힌다. 이 책의 제목이 ‘산책’인 것에서 알 수 있듯 각 꼭지가 그렇게 어렵지 않으면서도 머리를 식힐 수 있는 말랑말랑한 주제가 많다. 그 가운데 특히 흥미롭게 읽었던 꼭지를 발췌해보았다. # 선비의 육아일기, 《양아록》 그렇다. 근엄할 것만 같은 ‘조선 남자’, 선비도 육아일기를 썼다. 16세기 학자 이문건(1494~1567)이 쓴 《양아록》이 바로 그 일기다. 그럼, 누구를 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된 장 국 - 김태영 뚝배기에 쌀뜨물 받아 넣고 된장 한 숟갈 풀어 넣고 멀리서 온 멸치 한 움큼 보태고 보글보글 뜨겁게 끓인다 봄 손님 냉이도 한 움큼 파릇한 풋고추 숭숭 수웅 마늘 한 쪽을 쿡 찍어 넣으면 코끝으로 전해지는 구수한 맛 잃었던 입맛은 봄으로 가득하다 이젠 봄, 여기저기 들판에는 냉이, 달래를 캐고 쑥을 캐는 아낙들이 분주하다. 겨우내 김장김치와 장아찌로 버텼던 우리네 밥상에 드디어 푸릇푸릇 봄내음이 향긋하다. 유용우 한의사는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이미지를 가장 확실하게 표현하는 것은 새싹이며 실제로 봄에 새순이 나는 모든 식품은 모두 약동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봄나물로 입맛을 돋우고 기운을 차려 봄을 극복하려 하였다.”라면서 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봄나물로 냉이와 달래를 꼽는다. 이렇게 한겨울 엄동설한을 견뎌내고 싹이 튼 나물에 오랜 기다림의 미학이 꽃핀 된장이 더해지면 우리 겨레 고유한 천상의 맛이 된다. 우리 겨레의 먹거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왔던 된장은 메주로 들지만, 예전 서양인들은 메주에 발암물질인 아플라톡신이 있다고 비웃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메주로 만든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아림 김종택 시인의 제3시집 《겨울나무》를 받아들고 아직 이른 봄밤을 밝히고 있다. “우리말 가운데서 가장 듣기 좋은 예쁜 말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봄’을 말하겠다. 말할 때 입술을 꽃봉오리처럼 쫑긋 내밀며 다문 모습도 예쁘지만, 그 소리도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라고 한 김종택 시인! 그가 좋아하는 말이 ‘봄’이듯 좋아하는 계절도 ‘봄’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시집 제목은 왜 《겨울나무》일까? 시인은 말한다. “시집 제목을 ‘겨울나무’라 했는데 추위에 떨고 선 겨울나무는 온갖 고난을 딛고 긴 세월 굳게 살아온 한 여인의 일생이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뒤돌아본 나 자신의 삶이기도 하다.”고 말이다. 염색한 군용 사지 스봉은 단벌 몇 해 지나면 탈색되어 갈색이 드러나는데 여름이면 땀에 젖어 바짓가랑이 곳곳에 소금이 맺혔었지 - 멋진 대학생’ 가운데서 -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을 겪어서일까? 김 시인의 메밀 막국수집 풍경은 한 편의 수채화 같다. 지하철 목동역 8번 출구 안골목에 다온 메밀 막국수집 있다 막국수 맛도 좋지만 다온이라는 이름이 너무 좋아 나는 그 집에 자주 간다 정답기도 하고 예쁘기도 한 그 이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책도, 글도 많은 시대다. 읽을거리가 넘쳐나고 블로그와 같은 1인 미디어가 발달한 요즘 같을 때는 독서도 글쓰기도 참 쉬울 것만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대부분 정보를 영상과 이미지로 흡수하면서, 오히려 읽고 쓰는 활동은 뜸해져 간다. 짧은 글과 이미지, 영상에 익숙해지다 보니 긴 글을 읽어내는 문해력은 오히려 떨어졌다는 평가다. 이 책, 다이애나 홍의 《세종처럼 읽고 다산처럼 써라》는 조선 역사상 가장 유명한 다독 군주 세종과 다작 선비 다산의 사례를 통해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의욕을 활활 불타게 하는 책이다. 세종과 다산의 사례를 풍부히 인용하면서도 다른 역사적 인물이나 지은이의 개인적 경험도 함께 녹여내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편이다. 세종은 조선 임금 가운데 그 누구보다 독서를 즐겼다. 게다가 즉위하고 처음으로 한 말이 “의논하자.” 일 정도로 토론 또한 즐겼다. 특히 일종의 독서 토론인 경연(經筵)을 워낙 좋아해, 태종이 30회의 경연만 참가한 것에 견주어 세종은 1,898회나 참가했다. 경연은 임금과 신하가 함께 고전을 읽으며 현안을 풀어가는 조선의 독특한 정치 방식이었다. 이 토론에서는 거의 계급장을 떼다시피 한 격
[우리문화신문=전수희 기자] 인생의 황금기 22살 청춘에 전신주 고압선 감전사고로 양팔과 오른쪽 다리를 잃고, 장애를 삶의 동반자로 받아들이며 성장하는 36년 동안의 인생 여정, 장애와 가난을 뛰어넘어 보통 인간이 되고자 하는 이범식의 뜨거운 삶의 기록! 닉 부이치치를 뛰어넘는 대한민국 “황금 왼발” 이범식의 희망 이야기! “장애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순응하고 적응하며 살아내야 할 또 다른 삶의 형태이다.” 저자는 22살 어느 날 일어난 사건으로 인생행로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고, 누구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삶 속으로 던져졌다. 양팔이 잘려져 나가는 고통과 함께 또 다시 맞이한 고통, 오른쪽 다리 절단. 오롯이 본인만이 겪어야하고, 본인만이 느껴야하고, 본인이 헤쳐 나가야만 하는 인생. 하루를 살기 위해, 장남으로서 집안의 물질적인 궁핍함을 책임지기 위해, 세상 속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왼발을 사용하여 컴퓨터를 배워 회사에 다녔고, 회사를 나와 사업을 시작하고 그리고 파산, 신용불량, 재기를 위한 몸부림, 아내와의 만남, 그리고 공부. 장애에 순응하며 살아온 36년의 인생,가족을 위한 책임과 헌신, 파산의 고통 속에서 어머니에 대한 책임과 헌신, 지금의 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그대 앞에 봄이 있다 - 김종해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지금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다. 확진된 지인이 생겼다는 우울한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돌림병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지만, 의학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조선시대야 말로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다. 명절과 기일에 행하는 차례와 제례는 조상을 기억하기 위한 문화적 관습으로, 유가 사회가 지배하던 조선시대에는 한 집안의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일기자료들을 보면 돌림병이 유행하는 탓에 설과 추석 등 명절 차례를 생략했다는 내용이 담긴 일기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안동 풍산의 김두흠은 그가 쓴 《일록》(1851년 3월 5일자)에서 “나라에 천연두가 창궐하여 차례를 행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