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 주말을 이용해 금문교를 넘어 북쪽으로 차로 달려가 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들! 캘리포니아 포도주의 명성을 알만하다. 나파계곡(Napa Valley), 소노마계곡(Sonoma Valley)을따라 즐비한 포도농장과 갖가지 와인 시음장을 볼 수 있었다. 시음해보고 선물용으로 핑크빛 와인 한 병을 샀다. 스위스 알프스계곡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유럽식 주택이 많았다. 다시 시간을 내어 이번에는 베이브릿지(Baybridge, 동쪽 샌프란시스코만을 건너는 다리)를 넘어 차로 두 시간 정도 달려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가는 중간 지점 정도 까지 가서 일박을 하며 귀한 경험을 했다. 무엇보다 너무나 풍요롭고 여유가 있어 보이는 캘리포니아 평야가 아름다웠다. 시선이 따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펼쳐진 풀밭에서 한가히 풀을 뜯고 있는 소들, 언덕 꼭대기엔 풍력 발전기들이 즐비하고, 끝없이 펼쳐진 논밭들, 줄 맞춰 심어져있는 과일 나무들, 어린 모종들. 씨 뿌릴 준비를 하고 있는 듯 비워진 밭은 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숙소 근처 도시에서 시크(sikh)교 성전을 방문했다. 운 좋게도 일 년에 한 번 있다는 최대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머리에
[우리문화신문= 샌프란시스코 양인선 기자]딸이 살고 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달 가까이 살고 한국으로 되돌아 갈 때가 다가오고 있다. 처음 이곳에 와서 낯선 환경을 탐험하는 기분으로 영어도 배울 겸 어학원에 등록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학원 복도에 온통 한국민의 샌프란시스코 이민사를 엿볼 수 있는 사진들로 가득했다. 아울러 한글과 더불어 한국문화 관련 사진도 많았다. 바로 말로만 듣던 '세종학당'이었다. 샌프란시스코는 한국인이 100여 년 전 부터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를 거치거나 바로 미국 서부로 이주해와 힘든 노동으로 삶을 영위했던 곳이다. 힘든 가운데도 조국광복을 위해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임시정부에 송금하고 광복 후엔 조국의 발전을 위해 애쓰며 한국전쟁 복구를 위해 자금을 모아 지원했다. 낯선 땅에 이주해와 굳건히 뿌리내린 경험을 세계 각국에서 꿈을 안고 밀려드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나아가 한국문화와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며 동시에 영어 어학원도 겸하고 있는 것이다 '세종학당'에 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적지 않은 경험을 공유하고자 이 글을 쓴다. 샌프란시스코를 표현하는 단어는 '자유 ' '저항 ' '동성애' '히피'등등 많지만 '다양성의 도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하와이 호놀롤루 시내 한복판에 ‘히타치나무(日立の樹)’라는 것이 있어 지난주에 보고 왔다. 겉에서 언뜻 보기에는 거대한 왕릉 같아 보이는 이 나무를 현지인들은 몽키트리(원숭이나무)라고 부른다. 더 정확한 이름은 몽키포드(MONKEY POD)로 역시 원숭이와 관련이 있다. 거대한 나무 밑에 가서 줄기를 올려다보면 원숭이들이 뛰어 놀기 안성맞춤인 듯 보였다. 이 원숭이나무는 현재 일본 회사 히타치그룹의 이름을 따서 ‘히타치나무(日立の樹, 히타치노키)’로 부르고 있고 일본인들의 하와이 관광코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필자가 이곳을 방문했던 4월 14일에도 주차장에는 일본 단체 관광객을 실은 버스가 줄지어 들어서고 있었다. 히타치나무는 하와이 호눌롤루 시내에 모아날루아 가든(2850 A Moanalua Road, Honolulu, HI 96819)에 있는 나무다. 이곳에는 이와 같은 나무가 여럿 있는데 이 가운데 수령이 130년 된 가장 우람한 나무 하나를 골라 일본 히타치회사에서 자기네 회사 나무로 삼고 있다. 아예 모아날루아 가든은 ‘히타치나무공원’으로 현지에서 통할 정도다. 히타치그룹은 1970년대 초 이 몽키포드(MON
[우리문화신문=하와이 이윤옥 기자] 폴리네시안 센터(민속촌)에 막 도착했을 때는 흥겨운 하와이언 춤이 시작되고 있었다. 빨강, 노랑, 파랑 따위의 원색의 춤옷을 갈아입은 원주민 예술단들이 벌이는 ‘카누선상쇼’라는 이름의 공연을 보기 위해 전 세계 구경꾼들은 좁은 강폭을 사이에 두고 이쪽저쪽에서 환호성을 연발한다. 그야말로 관광객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었다. 하루 1회 공연이 2시 30분에 이뤄지는데 운좋게 공연이 진행되는 시간에 입장했다. 하와이 폴리네시안 민속촌은 와이키키에서 북쪽으로 약 1시간 넘는 거리에 자리 잡고 있는 곳으로 하와이구경의 첫 번째로 추천 받는 곳이다. 한국으로 치자면 용인 민속촌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 이곳이 용인 민속촌이랑 다른 것은 통가, 사모아, 타이티, 피지, 아우테아로아, 이오세파 등에서 온 원주민들의 독특한 문화, 관습, 전통문화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것을 증명이나 하듯이 입구에는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는 물론 영어 등 각국 언어로 소개한 전단지가 놓여있었는데 특히 일본인 단체 관광객이 압도적인 듯 곳곳마다 한 무리씩의 일본인 관광객들이 눈에 띈다. 흥미로운 것은 입장료의 차이다.
[우리문화신문=멕시코 라파스 양인선 기자] 멕시코 '라파스'여행 마지막날 아침! 오늘은 아름다운 해변가 풍광을 주로 소개하고자 한다. 그림으로만 보았던 펠리칸을 바로 눈앞에서 보고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던 건 정말 행운이었다. 게다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발치에서 돌고래가 뛰놀고 또한 돌고래와 먹이다툼을 하는지 펠리칸이 같이 옮겨다니는 모습도 관찰 할 수 있었다. 해안 산책로를 따라 세워진 멋진 청동 조각상들도 감상해 볼만하다. 물개와 거북이형상을 한 쓰레기통 까지도 귀엽고 사랑스럽다. 구름 한점없이 늘상 푸르른 하늘을 배경으로 물살을 가르는 형형색색의 요트도 볼만하다. 그리고 석양을 바라보며 낭만에 젖어보는 것도 멋진 일이다. 근처의 얕은 바다에서는 초보자도 카약 또는 페들보트등을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 멕시코 라파스를 떠나며 생후 한달 된 손자에게줄 알록달록 물고기모양 모빌을 장터에서 사가지고 와서 숙소 천장에 매달아 놓고 무심히 바라다보고 있다. 장터를 들리기 전푸르고 드넓은 탁 트인 바다를 배경으로 마지막 사진 한 장을 찍으며 추억에 오래 남을 멕시코여행을 마무리했다. Hola! Gracias! Adios Mexico! 안녕! 고마워! 굿바이 멕시코
[우리문화신문= 멕시코 라파스 양인선 기자] 일주일을 먼 이국땅에 머물며 살아보는 귀한 체험을 했다. 넓게보면 지구촌의 같은 인간의 삶이지만 세세히 보면 달라도 너무나 다른 삶이 펼쳐지고 있다. 평소 내 삶의 모토로 삼고있는 ' 문명에는 우열이 있는게 아니라 다름이 있을 뿐이다'를 다시한번 확인한 셈이다. 이번 여행길에 동행한 딸 내외는 미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다.특히좀 더 나은 삶을 찾아 어렵게 미국으로 이주한 중ᆞ남미계 어린이들(new comer)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딸이 잠시라도스페인어를 배워보려고현지인들과 대화를 시도해보고있는 모습이 대견했다. 여행내내 인상 깊었던 것 가운데 하나가 멕시코 여성들의 빵빵한 엉덩이였다. 건강과 아름다움의 상징인듯했다. 아울러 멕시코 남성들이 차려입을 때 착용하는 창이 넓으며 끝이 말려올라간 모자 끝이 뾰족한 가죽 신발과 화려한 벨트 따위를 파는 가게들과흥을 돋을때 연주하는 기타 등도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진귀한 모습이었다. 해변가에서 몇 골목을 걸어 안쪽으로 들어가면 현지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시장이 펼쳐진다. 그야말로 전통 멕시코인들의 풋풋한 삶이 묻어나는 곳이라 더욱 정감이 갔다. 뭐니뭐니해도 현지의 음
[우리문화신문= 멕시코 라파스 양인선 기자] 멕시코계 미국인과 결혼하여 샌프란시스코에서 교사로 살고 있는 딸 내외와 함께 봄방학을 맞아 멕시코에서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있다. 오늘이 나흘째인데 한국사람은 고사하고 아시아계도 만난 적이 없다. 글 한줄 사진 한장 남겨 소개하지 않으면 후회할 듯하여 펜을 들었다. '라파스'는 남부 캘리포니아 라는 뜻의 '바하캘리포니아수르'주의 코르테즈만 연안에 있는 아름다운 해양도시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 자연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크루즈가 간혹 들르기도 하지만, 영어나 미국 달러가 사용되지 않는 진짜 멕시코 도시가 ‘라파스’다. 나흘전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출발하여 캘리포니아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멕시코 공항 '로스카보스(Los Cabos)'에 내렸다. 리조트가 즐비한 근처 Cabo San Lucas 에서 봄 휴가를 즐겁게 보내러 온 대학생들과 아이를 대동한 부모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 일행은 여기서 두 시간 이상 북쪽으로 자동차로 달려 '라파스'로 향했다. 자동차로 달리는 내내 간간이 선인장 정도가 자라고 있을 뿐 척박한 황무지가 대부분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르디푸른 하늘과 청량한 공기가 상쾌했다. 미국과 마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제가 아프리카 짐바브웨로 떠난 것이 33살 때로 제 나이 올해 65살이니 벌서 31년째 입니다. 그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였어요. 밥말리(Bob Marley, 1945~1981)라는 자메이카 가수의 1979년 일본 공연을 보고 아프리카로 떠나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지요. 처음에는 밥말리의 고향인 자메이카에 가려고생각했으나 결국은 짐바브웨로 가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짐바브웨를 사랑하여 올해 31년째 그곳에서 봉사의 삶을 살고 있는 다카하시 도모코 (高橋朋子, 재너글아트센터 대표) 씨는 기자와의 대담 첫머리에 아프리카로 떠나게 된 계기를 이렇게 말했다. 다카하시 씨는 짐바브웨 어린이 공연단을 이끌고 6월의 일본 공연 준비차 도쿄로 가기 전 잠시 한국에 들러 지난 13일(월) 인천관동갤러리에서 기자와 만났다. “33살의 과년한 딸이 아프리카로 간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반대를 안했나요?” 기자의 질문에 다카하시 씨는 웃으며,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의 반대는 특별히 없었다고 했다. 그 대신 자메이카 가수 밥말리의 일본 공연 뒤 ‘아프리카로 떠나기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27살 때부터 무려 6년간을 구두쇠처럼 절약했다고 했다. 한 푼의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싱가포르는 2차세계대전 이후 독립된 작은 도시국가이다.2차 세계대전 이후 버려진 땅이었떤 이곳은 말레이지아 반도의 끝에 위치하여 말레이지아가 자신들의 땅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여 별도의 도시국가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곳에는 여러 문화속에 살던 사람들이 몰려들어 통일된 사상이 없이 혼재하여 하나의 나라로 다스리기에는 여러모로 어려운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이곳이 싱가포르를 통치한 한 정치가의 노력으로 이제는아시아의 다양한 문화가 혼합하여 공존하는 곳으로 자리잡았다. 싱가포르는 지역적으로 인도와 중국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사이에 있어, 고대의 아시아 문화가 모조리 융합되어혼재하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2600년 전에 성립된 불교와 흰두교 유교등 아시아의 문화와 이후 들어온 근세에는기독교와 이슬람교까지 다양한 종교들이 상호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기자는 이중에 티벳에서 번영하던 티벳불교사원으로 유명한 석가사를 방문해 보았다. 티벳불교는 중국의 불교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대승불교와 라마불교의 혼재된 듯한 모습이었다.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긴 하지만, 우리가 늘 보아오던 한국의 절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전각에 우선국가가
[우리문화신문= 스리랑카 골 이윤옥 기자] 인도양의 저녁놀이 아름다운 스리랑카 최남단 골(Dutch Fort At Galle)은 여느 바다와 같아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식민의 뼈아픈 역사를 경험한 나라 사람들에게는 그러하다.이곳은 지금 관광객들이 아무렇지 않게 드나들며 아름다운 해변을 산책하지만 17세기 식민지시대의 아픔이 남아 있는 곳이다. 콜롬보에서 173km 떨어진 항구 도시 골은 17세기에네덜란드가 해안가를 따라 거대한 장벽을 쌓아 요새를 만든 곳이다. 요새 안쪽에는 당시네덜란드식 집들이 거대한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15세기 포르투칼에 이은네덜란드통치에 이은 영국 식민지 까지 근 500년을 식민의 역사에 시달린 스리랑카의 역사는 산산이 부서졌지만 아이러니칼하게도 그 식민의 흔적은 관광자원화 되어 21세기 사람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불교 유적을 찾아 떠난 9일간의 스리랑카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골해변을 걸으며 오늘도 어김없이 뜨고 지는 태양만이 유일한 불변의 ‘그 무엇’ 임을 느낀다. 1948년 영국으로 독립 뒤 또 다시 30년 내전으로 만신창이가 된 스리랑카가 전쟁 종식을 맞이한 것은 2009년의 일이다. 그 아픔의 상처를 걷어내고 또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