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이제까지 일제 침략기, 한국 전통가곡의 맥을 잇기 위해 아악부와 권번에서 제자들을 지도해 온 하규일 명인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였다. 하규일의 가곡을 이은 대표적인 제자들은 이병성, 이주환, 김기수, 홍원기 등인데, 이들은 체계적으로 악보집을 제작, 후진과 애호가들을 지도해 오는 한편, 발표회를 통해 가곡의 맥을 이어왔다는 점을 얘기했다. 또 하규일의 가르침을 받은 권번의 기녀들 가운데 김진향(金珍香)은 《선가 하규일 선생 약전》을 펴냈다는 점, 특히 젊어 한때, 진향은 시인 백석(白石)과 인연을 맺었고, 홀로 되어서는 그녀가 평생 모은 1,000억이 넘는 재산을 불교에 헌납하였다는 점, 그 많은 재산 아깝지 않은가라는 물음에, 백석의 시(詩) 한 줄값도 안 된다고 했다는 대답이 인상에 남는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벽파(碧波) 이창배의 제자들이 해마다 정례적으로 펼쳐오고 있는 경기지방의 산타령과 서도지방의 산타령 공연 이야기가 되겠다. 원래 이 공연은 지난 6월에 소월아트홀에서 열리게 되어 있었으나,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인해 연기되었고, 그럼에도 관객은 입장이 허락되지 않는 조건, 곧 무관중 공연으로 막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초 한 자루 윤동주 내 방에 풍긴 향내를 맡는다. 광명의 제단(祭壇)이 무너지기 전 나는 깨끗한 제물(祭物)을 보았다. 염소의 갈비뼈 같은 그의 몸, 그의 생명인 심지(心志)까지 백옥 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불살려 버린다. 그러고도 책상머리에 아롱거리며 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이 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 나의 방에 풍긴 제물(祭物)의 위대한 향내를 맛보노라. 1934년 12월 24일 한 자루의 촛불이 자신을 사르며 주변을 밝히는 모습을 시인 윤동주는 그렇게 노래했다. 윤동주의 대표적인 시 ‘서시’는 잘 알려졌지만 ‘초 한 자루’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윤동주의 시를 사랑하는 일본인들은 ‘시인 윤동주와 시를 읽는 모임(詩人尹東柱と詩を読む会)을 통해 이번 9월 26일(토) 도쿄에서 ’시낭송회‘를 연다. 물론 ’코로나19‘로 비대면 낭송회다. 이번 낭송회의 주제인 ‘초 한 자루’ 시는 마츠오카 미도리(松岡みどり)씨를 포함한 일본인 5명이 일본어로 1연(1連)씩 낭송할 예정이며, 한국인은 한창희 씨를 비롯한 5명이 한국어로 1연씩 낭송한다. 그리고 ‘초 한 자루’를 읽은 소감과 윤동주 시인에 대한 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고 서서히 음의 기운이 커진다는 24절기 열여섯째 추분(秋分)입니다. 《철종실록》 10년(1859) 9월 6일 기록에 보면 “추분 뒤 자정(子正) 3각(三刻)에 파루(罷漏, 통행금지를 해제하기 위하여 종각의 종을 서른세 번 치던 일)하게 되면, 이르지도 늦지도 않아서 딱 중간에 해당하여 중도(中道)에 맞게 될 것 같다.”라는 내용이 보입니다. 여기서 중도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바른길’을 말하고 있음입니다. 이처럼 우리 겨레는 추분날 종 치는 일조차 그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중용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또 추분 무렵이 되면 들판의 익어가는 수수와 조, 벼들은 뜨거운 햇볕, 천둥과 큰비의 나날을 견뎌 저마다 겸손의 고개를 숙입니다. 내공을 쌓은 사람이 머리가 무거워져 고개를 숙이는 것과 벼가 수많은 비바람의 세월을 견뎌 머리가 수그러드는 것은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벼에서는 향[香]이 우러나고 사람에게서도 내공의 향기가 피어오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추분을 맞은 국립백두대간 수목원에는 벌써 알록달록 가을빛이 내려앉았다는 소식입니다. 이에 수목원은 오는 11월 1일까지 가을꽃 비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가곡도 스승에 따라, 또는 부르는 이의 개성에 따라, 그 음악적 분위가 다르다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1993년, 《선가 하규일 선생 약전》이라는 악보 책을 펴낸 김진향은 어린 시절 권번에 들어가 하규일로부터 여창가곡을 배웠기에 저술이 가능했다는 이야기, 전통가곡은 창법이나 표현법 등이 비교적 점잖고 느리게 부른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60여 년 전, 스승에게 배운 노래를 기억하며 악보책을 펴낸 진향은 국악계에 거의 알려져 있지않은 인물이었다. 그를 잠시 소개해 보기로 한다. 진향의 본명은 김영한(金英韓)이다. 1916년, 서울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타계하면서 집안이 망했고, 그러한 상황에서 권번으로 들어가 기녀의 수업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살아있다면 올해 105세의 할머니가 된다. 오래전, 모 방송국 FM 라디오에 희귀음원을 들려주는 시간이 있었는데, 때마침 기생 신분이었던 김진향의 녹음본을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진향과 만난 진행자는 “선생님과 대담을 하고, 여창가곡 한 곡조 녹음하러 나왔다”라고 인사를 하였더니, 진향의 반응은 다소 걱정스러운 태도로“다 늙은 목소리를 녹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시인 윤동주의 맑고 아름다운 시와 삶을 사랑하여 일본 도쿄에서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 모임(詩人尹東柱を記念する立教の会)’을 이끌고 있는 야나기하라 야스코 (楊原泰子) 대표로부터 라인(한국이 카톡 같은 것)이 날라왔다. 읽어보니 9월 13일치 마이니치신문에 실린 윤동주 관련 기사였다. 여록(餘祿)이라는 제목의 이 글은 ”봄, 여름, 겨울은 대삼각형인데 가을은 왠지 사각형이다. 계절을 대표하는 별이 줄지어 있다. 지상의 늦더위를 피해 동쪽 밤하늘에서 가을 사각형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라고 시작한다. 그러면서 가을 하늘의 길잡이가 될 수 있는 별인 하늘을 나는 천마 페가수스의 몸통에 해당하는 사각형의 페가수스 이야기를 꺼낸다. 동쪽 하늘에서 떠올라 한밤중이 되면 머리 위에 높이 걸리는 이 사각형을 중심으로 가을철의 대표적인 별자리인 안드로메다자리 등이 보이는 이야기를 꺼낸 것은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꺼내기 위한 전주곡처럼 읽힌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 이야기는 이어진다. “서정 넘치는 별 헤는 밤을 노래한 한국의 국민 시인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일제강점기에서 전통가곡의 명맥을 이어 온 금하(琴下) 하규일(河圭一, 1867~1937) 명인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최수보와 박효관에게 배웠고, 한일합방이 되자 관직을 버리고 <조선정악전습소>의 학감, 대정권번과 조선권번의 사범, 특히 1926년부터<이왕직아악부>에서 가곡, 가사, 시조를 가르쳤는데, 대표적인 제자들이 이병성, 이주환, 김기수 등이며 이들은 가곡, 가사, 시조의 악보를 제작해서 학생과 일반인 전수에 앞장서 왔다는 이야기, 특히 조선권번에서 여창가곡을 배운 기녀 제자, 김진향(眞香)은 1993년도에 《선가 하규일 선생 약전》을 펴내서 악계에 주목을 받았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1910년대 이후, 하규일은 권번에서 기녀들에게 가곡을 지도해 왔다. 국권을 잃은 후부터는 관기제도가 폐지되었고, 일반 시중에서는 기생들을 모아 조합을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그 가운데서도 평양의 기성권번이나, 서울의 광교조합(廣橋組合) 등은 소리 잘하고, 춤 잘 추는 유명한 기생들을 많이 배출해 낸 대표적인 곳으로 알려져 있다. 광교조합은 뒤에 한성권번(漢城券番)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이곳 출신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제(8일) 야후제팬 뉴스 가운데 ”남자의 혈액형별로 본 ‘이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은?’“이란 제목의 ’메루모(https://news.merumo.ne.jp)‘ 기사가 눈에 확 띈다. 일본도 요사이 태풍에, 코로나에, 아베 총리 후임의 입후보자 관련 기사들로 넘치는 가운데 ’혈액형 관련 연애 이야기‘가 양념처럼 들어 있어 흥미롭게 읽어보았다. 기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A형 남자는 여자가 경제 감각이 뛰어나다면 다른 것은 보지 않고 상대와 혼인하고 싶어 한다. / B형 남자는 여자가 다정하게 대해주는 포용력을 가졌다면 됐다고 한다. / O형 남자는 여자가 작은 일에도 즐거워하거나 정열을 느꼈을 때 혼인 상대로 삼고 싶어 한다. / AB형 남자는 여자의 유연한 대응력이나 지성에 접했을 때다. 뒤집으면 위에서 말한 혈액형의 남자를 만났을 때 그 점에 유의하여 접근하면 혼인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한국인들에게 한다면 엑? 하고 반문할지 모른다. 혈액형 따위를 가지고 사람의 성격을 파악한다는 것이 잘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지금도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과 행동 양식, 직업의 적성과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오늘날, 전통 가곡(歌曲)이 한국의 대표적 음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공헌해 온 인물은 하나둘이 아니다. 멀리 조선 전기, 세조 때의 음악을 싣고 있는 《대악후보》에도 가곡의 전신인 만대엽이 보이고, 그 뒤 《금합자보》를 지은 선조 때의 안상을 비롯하여 광해군 때에는 《양금신보》의 양덕수, 《현금동문류기》의 이득윤, 숙종 때에는 《현금신증가령》을 엮은 신성(申晟), 《청구영언》을 엮은 영조 때의 김천택, 《해동가요》의 김수장, 《가곡원류》를 엮은 고종 때의 박효관과 안민영 등등이 모두 가곡의 전승과 관련이 깊은 인물들이라 하겠다. 특히, 일제치하에서 가곡의 명맥을 오늘에 이어 준 하규일(河圭一 1867~1937) 명인과 그의 제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하규일의 아호는 금하(琴下), 그는 전문 음악인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20세 무렵부터 삼촌인 하중권(河仲權)의 제자, 최수보와 가곡원류의 편자 박효관에게 가곡을 배웠다고 전한다. 그의 6촌 형 역시 당대 가곡의 명인으로 알려져 있던 하순일이었다. 금하는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관직에서 물러나 정가(正歌)에 전념하기 시작하였는데, <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금년 더위는 넘치고 가혹했는데 미친듯한 장마가 더 때려서 고생했네 세월이 어찌 바뀌지 않는가 했더니 속이지 않고 백로가 찾아 왔구나. 이우현 시인의 소박한 시 “백로날에 한편”이라는 시입니다. 정말 세월이 어찌 바뀌지 않는가 했더니 정말 속이지 않고 백로가 찾아 왔습니다. 오늘은 24절기 열다섯째로 흰 이슬이 내린다고 하는 백로(白露)입니다. 옛사람들은 이때만 되면 편지 앞머리에 “포도순절(葡萄旬節)에 기체후 일향만강(氣體候一向萬康) 하옵시고”라는 인사를 꼭 넣었습니다. 그것은 백로부터 추분까지의 절기는 포도가 제철일 때여서 그런 것이지요. 포도는 예부터 다산(多産)의 상징으로 생각해서 맨 처음 따는 포도는 사당에 고사를 지낸 다음 그집 맏며느리가 통째로 먹었습니다. 그러나 처녀가 포도를 먹으면 망측하다고 호통을 들었지요. 또 이때쯤 되면 포도지정(葡萄之精)을 잊지 말라고 합니다. 그것은 어머니가 아이에게 포도를 먹일 때 한알 한알 입에 넣고 씨와 껍질을 발라낸 뒤 아이의 입에 넣어주던 정을 일컫습니다. 특히 백로 때는 밤 기온이 내려가고, 풀잎에 이슬이 맺혀 가을 기운이 완연해집니다. 원래 이때는 맑은 날이 계속되고, 기온도 적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8년 전 처음으로 《흑산》을 읽었을 때의 떨림은 번역(일본어)을 하는 내내 계속되었다. 절해고도에 유배된 유학자, 섬에서 자란 맑은 눈동자의 청년, 옹기장이 남자, 도망치는 노예, 거친파도를 헤쳐나가는 선장 등등 이들은 당시 책을 읽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뇌리에 떠나지 않는 인물들이다. 밀려드는 파도처럼 김훈 작가 나름의 문체에 빨려들어 깊은 심연의 세계를 헤매다가 빠져나왔다고 생각했을 때 마침내 길고 긴 번역의 터널을 빠져나왔다.” 이는 도다 이쿠코(戸田郁子, 60)씨가 김훈 작가의 《흑산(黒山)》 번역을 마치고 ‘역자 후기’에 쓴 소감이다. 번역 작업이란 필자도 해봐서 알지만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두 나라 언어를 완벽하게 안다고 해도 책 한 권 속에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단어라든가 역사적 사실, 풍습과 같은 언어 외의 요소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도다 이쿠코 씨의 번역은 언제나 명쾌하다. 도다 이쿠코 씨가 “한국에서 흔히 쓰는 일본어투 한자를 쓰지 않고 (종래) 한자어를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김훈 작가에게 물었다. 김훈 작가가 답했다. “흔히 사용하지 않는 죽은 말을 살려 활용하면 문장에 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