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입춤>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입춤>이란 서서 추는 모든 춤의 포괄적 명칭으로 이해해도 된다는 이야기, 즉흥성의 멋과 흥을 위주로 하는 자연적인 곡선의 춤으로 <교방무>, <굿거리 춤>, <수건춤>, <부채춤>, <소고춤> <헛튼춤>, <즉흥무>, <흥춤>, <기본춤>이란 이름으로도 불러왔다는 이야기, 입춤의 명무였던 김숙자의 춤사위는 현재 대전시 예능보유자인 최윤희가 이어가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1990년, 국가예능보유자가 된 김숙자 명무는 그 이듬해에 병사하게 된다. 당시의 상황을 최윤희는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건강이 좋지 않으셨던 선생님께서 별안간 저에게 올라오라는 연락을 주셨어요. 저는 무슨 일인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선생님 댁으로 달려갔지요. 저에게 선생님은 불분명한 목소리로 무슨 서류를 준비해 오라고 말씀하셨는데, 무슨 내용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었더니 몹시 답답해하시면서 방에 있던 딸, 김운선에게 큰소리로 ‘언니에게 이수증 서류를 설명해 줘라!’라고 말씀하셨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눅눅한 장마철이라 그런지 집안이 몹시 습하다. 가죽가방이나 허리띠에 곰팡이가 피어오르는가 하면 부엌에서 쓰는 대나무 채반에도 곰팡이가 한가득 피었다. 연일 내리던 비가 잠시 멈춘 날, 간만에 마을 앞산을 산책했다. 앞산이라고는 했지만 거의 공원 수준인 앞산은 그동안 비 때문에 산책 못 한 사람들이 제법 나왔다. 산길을 걷노라니 예전에 눈에 띄지 않았던 이끼가 나무 밑둥 쪽으로 쫙 깔렸다. 푸르른 모습이 제법 볼만하다. 이끼를 바라다보고 있자니 교토의 서방사(西芳寺, 사이호지)가 떠오른다. 서방사는 이끼가 많다고 해서 아예 이끼절(苔寺, 코케데라)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적절한 표현일지 몰라도 “이끼 하나로 먹고 사는 절”이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만큼 서방사의 이끼는 유명하다. 이끼 종류만 무려 120종이라니 그저 놀랄 따름이다. 지금은 이 절을 찾아가기 위해 절차가 필요하다. 이끼 낀 정원을 보기 위해 밀려드는 관광객을 제한하려는 방법으로 왕복엽서에 방문 일자를 써서 절에 신청한 뒤 답장을 받아야 비로소 입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명치 초기(1868년)만 해도 서방사는 폐허 상태였다. 명치왕(明治天皇)이 이른바 신불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춤사위의 원형과 변형사이에서 무용계를 걱정하던 이매방 명인의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전통춤의 원형을 변질시켜 놓고, 문화재 지정에만 눈이 어두운 사람들이 있으니 주무 관청에서는 더욱더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따끔한 충고, 후보자의 선정방식이나 전수조교 지정절차에서도 해당 종목의 보유자 의견은 무시될 수 없다는 이야기, 그리고 통보절차에 관한 상의도 함께 해야 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최윤희는 2012년, 대전시 무형문화재 <입춤>의 예능보유자로 인정을 받고 활동을 하게 된다. <입춤>이란 어떤 춤인가? <입춤>이란 발 디딤, 곧 서서 추는 모든 춤의 포괄적 이름으로 이해해도 될 것이다. 4발 동물들과 달리, 양발을 땅에 디디고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 발 디딤이란 춤 동작의 기본 틀을 이루고 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이 동작은 어쩌면 춤이 시작되고 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입춤은 특별히 복장을 갖추지 않은 채, 서서 추는 춤, 입으로 구음(口音)을 하면서 추는 모든 춤의 기본이라고 볼 수 있다. 경기, 충청권에서 추는 입춤으로는 김숙자의 입춤이 최윤희에 의해 널리 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오늘이 8월 5일, 슬슬 눈앞에 9일이 다가왔다. 8월 9일 하면 한국인들은 별 감흥이 없을지 모르나 일본인들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을 떠올린다.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나가사키시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한순간에 도시를 폐허로 만들고 수많은 시민과 소중한 목숨을 앗아갔다. 다행히 목숨만은 건진 피폭자들에게도 평생 치유될 수 없는 마음과 몸의 상처, 방사선으로 말미암은 건강장해를 남겼다. 우리는 이러한 희생과 고통을 잊지 않을 것이며 이에 심심한 애도의 뜻을 바친다. 우리는 원자폭탄에 의한 피해의 실상을 나라 안팎에 널리 알리고 후세에 전할 것이며 이러한 역사를 교훈 삼아 핵무기 없는 영원히 평화로운 세계를 구축할 것이다.” 1996.4. -국립 나가사키 평화자료관 홍보물- 나가사키에는 두 개의 자료관이 있다. 하나는 일본정부 돈으로 만든 ‘국립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이고 다른 하나는 양심 있는 시민들이 만든 ‘오카마사하루 기념관(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이 그것이다. 국립 나가사키 자료관은 위 설명처럼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에 대해 ‘연합국이 일본 시민의 죄 없는 목숨을 앗아간 흉악한 짓’ 쯤으로 포장해놓고 있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최윤희의 국립국악원 도살풀이춤 개인발표회(2004, 2)에 이매방 명인이 특별출연을 해 주었고, 축하의 글까지 보내 주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 명인에 의하면 김숙자 명무의 도살풀이춤은 크고 무거우며 엄숙하고 강한 민속무용이며, 감동을 주는 예술의 혼(魂)과 맥(脈)이 담긴 최고의 춤이었다는 평가를 하고 있었고, 무형문화재 제도와 관련해서도 공개적으로 날카로운 비평을 서슴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2004년 2월, 당시 이매방 명인은 최윤희의 도살풀이춤 발표회를 축하하는 글에서 이렇게 적고 있었다. “근자의 무용계를 둘러보건대, 전통춤 원형의 변질을 비롯한 일부 인간문화재 지정에만 눈이 어두운 사람들의 행태로 인하여 많은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엄연히 <도살풀이춤>의 장단과 춤사위가 있음에도, <살풀이춤>을 도용하여 제멋대로 만들어 추면서 원형이라고 떠벌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런 것을 관리하고 통제해야 할 관청에서는 오히려 엉뚱하게도 그런 사람을 인간문화재로 지정하려고 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통탄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서대문형무소수형자카드)를 살펴보면 ‘국가총동원법위반(國家總動員法違反)’을 위반했다는 죄로 잡혀들어간 사람들이 많다. 강간난(姜干蘭) 지사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황해도 평군 고북면 서오리가 고향인 강간난 지사는 1908년 10월 27일생으로 그가 언제부터 경성부 창신동으로 이주해 와서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강간난 지사는 32살 되던 해인 1942년 7월 9일 경성지방법원으로부터 국가총동원법위반으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갇히는 몸이 된다. 김귀현 지사도 마찬가지다. 37살 때인 1943년 11월 1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역시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강간난, 김귀현 지사를 잡아넣은 ‘국가총동원법’이란 1938년 4월 1일, 일본에서 공포한 법으로 5월 10일 조선에도 적용되었다. 국가총동원법이란 말 그대로 전시(戰時)에 모든 물자ㆍ산업ㆍ인원ㆍ단체ㆍ근로조건ㆍ생산ㆍ유통구조ㆍ출판ㆍ문화ㆍ교육을 통제ㆍ징발ㆍ징용할 수 있게 한 법이다. 국가총동원법을 두 가지 측면으로 요약하면 첫째가 조선인의 황국신민화를 통한 내선일체화이며, 둘째가 전시(戰時) 체제의 확립이다. 예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최윤희는 1985년, 진주 <개천예술제>에 <도살풀이춤>으로 출전하여 대통령상을 받았고, 1986년 <전남도립국악단> 창단과 함께 무용부장-상임안무자가 되어 활동하였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1991년 대전으로 연구소를 옮겼을 때, 100여명이 넘는 문하생들이 모여들었으며 그의 고향, 충남 홍성군에서는 그를 초청하여 군민들에게 전통춤을 지도하게 하였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2005년에는 「홍성군립무용단」을 창단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동국대 사회교육원>과 <불교방송국>에 『도살풀이춤』 강좌를 개설하여 10여년 동안 전승과 보급 활동을 해 왔다는 이야기 등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최윤희 발표무대에 이매방 명인이 찬조출연을 해 주어 무대가 더더욱 빛났다는 이야기를 한다. 최윤희로부터 직접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한다. 2003년 가을로 기억되는 남쪽 지방의 큰 국악경연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초대를 받았다. 심사위원들이 숙박하는 호텔 앞에서 승강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이매방 명인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생전의 이매방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모레 일요일은 중복(中伏)입니다. 다행히 요즘에는 장맛비가 자주와 뉴스에 불볕더위 얘기는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불볕더위가 오는 중복 때 우리 겨레는 ‘더위사냥’을 했는데 그 ‘더위사냥’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지금이야 선풍기는 물론 에어컨까지 동원해서 비교적 시원한 환경 속에서 살지만, 예전 사람들은 더위가 심해지면 ‘이열치열’로 ‘더위사냥’을 했습니다. 이열치열에는 음식으로 하는 이열치열과 일을 함으로써 다스리는 이열치열이 있지요. 먼저 음식으로 하는 이열치열은 뜨거운 삼계탕, 보신탕, 추어탕, 용봉탕(용 대신 잉어나 자라를 쓰고 봉황 대신 묶은 닭을 써서 만든 탕) 따위로 몸을 데워주어 여름 타는 증세를 예방해 줍니다. 그리고 일로 하는 이열치열은 양반도 팔을 걷어붙이고 김매기를 도왔다고 하지요. 그 밖에 옷을 훌훌 벗어버릴 수 없었던 선비들은 냇가에 앉아 발을 담그는 탁족(濯足)을 위안으로 삼았고, 백사장에서 모래찜질도 했지요. 그러나 여기 철학적인 더위사냥도 있습니다. 9세기 동산양개 선사는 제자가 더위를 피할 방법을 묻자 “너 자신이 더위가 되어라.”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어려움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서대문형무소에 잡혀들어간 독립운동가들의 ‘수형자카드’를 작성했던 일본인 순사(경찰관)들의 수준은 어느 정도였을까? 나는 서대문형무소 ‘수형자카드’를 정리하면서 오랫동안 이 점을 숙제처럼 머릿속에 담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순사들의 수준을 의심하게 된 계기는 바로 한 장의 수형자카드 때문이었다. 핼쑥한 모습의 ‘유고두’ 지사는 충남 공주군 정안면 운궁리 출신으로 1898년 9월 4일생이다. 기미년 3월 만세 운동 때 유고두 지사는 21살이었고 직업은 농사꾼이었다. 3월 1일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공주군에서도 4월 1일 대대적인 만세시위가 있었다. 이때 유고두 지사는 공주 만세시위에 참여하다 일경에 잡혀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당시 서대문형무소에 잡혀들어온 조선인은 누구나 예외 없이 수형자카드에 신상을 기록하게 되어있는데 카드 앞면은 사진과 함께 씨명(이름), 연령, 키, 특징을 적는 칸이 있고 뒷면에는 본적, 출생지, 주소, 신분, 직업, 죄명, 형기(刑期), 언도년월일, 언도재판소, 집행감옥, 출옥년월일 등을 적게 되어있다. 문제는 유고두 지사의 한자 이름이다. 순사들은 수감자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 소개한 <도살풀이춤>이란 <도당굿 살풀이춤>을 줄인 이름이며, 이는 <살풀이춤>의 원초형으로 춤사위가 비교적 자연스럽고 소박한 것이 특징이란 점을 이야기 하였다. 무용학원의 원장겸 사범으로 더욱 춤 공부에 매진한 최윤희는 전주대사습에서 <장원>을 차지했고, 이어서 1985년도에는 진주 <개천예술제>의 하나로 인기를 끌었던 <한국무용제>에 참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진주에서 해마다 열리고 있는 <개천예술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전통예술제로 알려진 축제다. 다양한 행사 가운데서도 특히 <한국무용제>는 대통령상이 걸려 있는 수준 높은 대회여서 누구누구, 이름만 들어도 짐작할 수 있는 전국의 유명 춤꾼들이 해마다 대거 진주로 몰려들었던 권위있는 대회였다. 여러 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맹연습해 온 최윤희도 여기에 <도살풀이춤>으로 도전장을 냈으나, 워낙 내로라하는 무용계 선, 후배들이 경쟁하는 무대여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동안 스승의 지도를 받으며 최선을 다해 온 지난 시간을 믿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