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20세기의 한 시기에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했다. 이에 앞선 태평양전쟁 중에는 노무동원 계획에 따라 수많은 조선인이 전국의 광산이나 군수 공장 등에 동원되었으며 여기 군마(群馬) 땅에서도 사고와 과로 등으로 소중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적지 않다. 21세기를 앞둔 우리들은 일찍이 일본이 조선인에 대하여 지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긴 역사적 사실을 깊이 기억하며 마음으로부터 반성하고 두 번 다시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결의를 표명한다. 과거를 잊지 않고 미래를 응시하는 새로운 상호 이해와 우호를 추진해나가고자 여기에 노무동원에 의한 조선인 희생자를 마음으로부터 추도하기 위해 이 비를 세운다. 이 비를 세운 우리들의 마음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길 바라며 아울러 아시아 평화와 우호 발전을 원한다.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 추도비를 세우는 모임 2004년 4월 24일 ▲ '추도비를 세우는 모임과 군마현의회가 합의 하에 채택된 추도비문 이것은 일본 군마현에 있는 군마현립공원(群馬県立公園) 내의 군마의 숲(群馬の森)에 있는 조선인강제연행희생자 추도비에 새겨진 추도비 건립에 즈음하여의 글귀다. 내용상으로 보면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일본은 또다시 태평양전쟁과 같은 참혹하고 끔찍한 전쟁을 일으켜 인류를 공포와 고통 속으로 빠트릴 것인가? 미친 광대가 칼을 들고 날뛰다가 특공대의 기습에 한방에 나가떨어진 꼴이 바로 68년 전인 1945년 8월 9일 일이다. 일본은 기억하는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얻어맞은 원자폭탄 세례를 말이다. 이러한 끔찍한 전쟁의 기억은 천 년 전 일도 아니요, 백 년 전 일도 아니다. 바로 68년 전 일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그 참혹한 전쟁의 역사를 잊고 아니 이에 눈을 감고 또 다시 전쟁의 역사를 다시 쓰려하고 있다. 누가 이 광분한 미치광이를 말릴 것인가? ▲ 5일 신주쿠에서 아베정권에 항의 시위하는 시민들 (마이니치 신문 제공) 아베 내각의 집단적자위권을 사용 가능 결정 사실을 놓고 일본의 헌법학자들도 우려의 성명을 발표했다. 입헌데모크라시회 (立憲デモクラシーの会)의 야마구치(山口二郎) 법정대학 교수 등은 아베정권의 이번 집단적자위권 행사는 입헌주의를 근본부터 부정하고 국민주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다. 따라서 집단적자위권 행사는 문제해결의 수단이 아니라 애초부터 전쟁을 하기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왕인박사는 4세기 백제로부터 공자의 논어와 천자문을 전하고 왜국의 아스카문화(飛鳥文化)를 꽃피웠다. 이로서 일본에서 처음으로 한중일 3개국이 조우하게 된 것이다. 왕인박사를 심볼로 동아시아의 선린우호, 민간교류을 계속해나가야 할 것이다. ▲ 왕인무덤을 보살펴 주는 요시토메가즈오 씨(사진 민단신문 제공) 이것은 오사카에 있는 왕인박사 무덤을 관리하는 왕인무덤의 환경을 지키는 모임(王仁塚の環境を守る会)의 대표인 요시토메가즈오 씨(吉留一夫)의 말이다. 그는 왕인박사 무덤이 있는 오사카 히라가타시(枚方市藤阪東町)에 살면서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왕인박사 무덤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면서 왕인박사의 높은 뜻을 지난 30여 년간 지켜오고 있다. 이들은 1985년 3월에 모임을 결성한 이래 한국에서 직접 가져온 무궁화를 왕인박사 무덤 둘레에 심고 이곳을 찾는 이들을 위해 왕인박사 무덤 휴게소인 선린우호관을 지었다. 또한 백제를 상징하는 백제문도 만들었다. 요시토메 대표의 왕인무덤의 환경을 지키는 모임은 지난 5월 11일로 창립 제30회를 맞았다. ▲ 왕인박사 무덤, 앞에는 참배자들이 놓고 간 꽃 ▲ 왕인박사 무덤은무
[그린경제/얼레빗=중국 북경 김영조 기자] 춘추시대(BC 770~ BC 443)부터 북쪽 변방에 부분적으로 성벽이 건축되었다가 통일 왕국인 진나라가 들어서면서 북쪽의 흉노를 견제하기 위해 이들 성벽을 연결하고 증축했다는 만리장성. 지구촌에 건설된 수많은 인공 구조물 가운데 가장 크다는 만리장성. 만리장성은 팔달령, 거용관, 사마대, 금산령 등 4곳이 있는데 그 가운데 우리 단원들은 가장 인기 있는 그리고 유일하게 케이블카가 설치돼 있어 오르기가 편한 팔달령 만리장성(八達嶺 萬里長城)에 올랐다. 만리장성에 오른 우리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할 만큼 그 규모는 거대했다. 그리고 이를 보려고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룬 사람들로 오르내리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만리장성은 만리무덤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고 아직도 아랫부분을 파보면 해골이 나온다는 비극이 서린 구조물이다. 그를 생각하면 결코 규모에 입만 벌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 우스개 소리로 달나라에서 중국의 만리장성이 보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거대한 팔달령 만리장성 ▲ 끝없는 만리장성의 모습 ▲ 중국의 상징 만리장성은 사시사철 방문객들로 늘 북새통이 된다.
[그린경제/얼레빗=북경 김영조 기자]어제는 연길에서 비행기를 타고 북경에 입성했다. 그리고 첫 답사지로 자금성을 돌아보았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자금성. 정식 명칭은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이지만 자금성(紫禁城)이라는 옛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황제가 사는 궁으로 아무도 들어올 수 없다.는 뜻으로 지어진 자금성. 엄청난 크기, 엄격한 대칭, 깎아지른 직선으로 지어진 자금성은 이름처럼 삼엄하다. 하지만 답답하다. ▲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입구 중 하나이며, 중요한 정치적 사건의 현장이었던 천안문 앞에서 ▲ 자금성 가운데 황제가 집무하던 태화전(太和殿) ▲ 태화전 오르는 곳에 세워진 대석조(大石雕), 길이 16.76m, 폭 3.07m, 깊이 1.7m, 무게 약 220톤의 어마어마한 돌에 9마리 용이 새겨져 황제를 상징한다. 자금성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경복궁을 생각한다. 경복궁은 전통적인 조선인의 미관과 세계관을 조화롭게 표현한 건축물로 검소하면서도 부족하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하지 않은 궁궐이다. 또 경복궁은 열린 구조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자연을 궁궐로 이끌어오고, 어디에서나 문을 열면 그 문을 통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걸어놓은 듯한 느낌을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토교에서 정씨(정현숙 애국지사를 말하며 오광선 장군의 부인)는 홀로 삼남매를 키우느라 늘 궁색한 처지로 형편 필 날이 없었고 백범은 오광선의 가족들이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안쓰럽게 생각하여 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중략) 영걸어머니(정현숙 애국지사)는 고생이 심했다. 내가 다른 이들보다 특히 열걸 어머니에 정을 쏟고 희영이나(큰따님) 희옥에게(작은 따님) 좀 더 잘해주려 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영걸어머니는 만주에서 농사 경험도 있고 몸도 건강해서 내 밭일을 많이 도와주었으며 나는 그 대신 그 집 삼남매의 옷가지 손질이며 이부자리 등 주로 바느질일을 도왔다. 이 말은 정정화 애국지사의 《장강일기》에 나오는 정현숙 애국지사에 대한 이야기다. 생존해 계시는 오희옥(88살) 애국지사는 아버지와 중국에서 오랜 세월 떨어져 지냈다고 했는데 아버지 오광선 장군은 만주쪽에 남아 활동하였고 가족들은 임시정부를 따라 상해에서부터 중경에 이르는 노정으로 이동하는 고난의 생활을 했던 것이다. ▲ 북만주 흑룡강성에서 바라본 소련땅으로 이 도시 북쪽의 얄롁셰프스크(자유시)에서 참변이 일어났다. (사진 한국근현대사사전 제공
[그린경제/얼레빗=중국 연길 김영조 기자] ▲ 백두산 들머리에서 일단 셔틀버스를 탔다가 다시 곡예운전을 하는 봉고차를 타고 백두산에 올라야 한다. ▲ 안개가 짙게 낀 백두산 오르는 길. 산 곳곳엔 들꽃이 피어있다. ▲ 천지는 10m 앞도 분간하지 못할만큼 안개가 짙게 서려있다. 그저 안개천지, 사람천지일뿐이다. ▲ 아쉬운 마음에 건너가지 말라는 팻말을 기념으로 비옷을 입은 채 사진을 찍었다 ▲ 장백폭포 올라가는 길엔 사람들이 그득하다. ▲ 천지에선 못 찍고 장백폭포 올라가는 길에서 모두가 함께 ▲ 웅장한 장백폭포 모습 1 ▲ 웅장한 장백폭포 모습 2 우리 겨레의 신령스러운 영산(靈山) 백두산(白頭山)! 북한 양강도(량강도) 삼지연군과 중국 지린성(吉林省)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배달겨레라면 꼭 올라야 할 산이다. 그 산마루에는 천지(천지)가 있는데 용왕담(龍王潭)이라고도 한다. 면적 9.17㎢, 둘레 14.4km, 최대너비 3.6km, 평균 깊이 213.3m, 최대 깊이 384m, 수면 고도는 2,257m이다. 북한의 천연기념물 제351호(지리 부문)로 지정되어 있다. 연길시에서 4시간 걸려 백두산 아래 마을 이도백하(二道白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나라현 아스카지방의 한 구릉지에 있는 용개사(지금은 강사岡寺로 부름)는 백제출신 의연(義淵, 643~728)스님이 지은 절이다. 의연스님은 일본 법상종(法相宗)의 시조이며 수제자로는 나라 동대사(東大寺) 초대 주지 양변(良弁) 스님과 살아있는 보살로 추앙 받는 행기(行基) 스님을 비롯하여 현방(玄昉), 도자(道慈), 도경(道鏡), 도장(道場) 스님 등 쟁쟁한 분들이 많다. ▲ 용개사를 창건한 백제 의연승정 (국보) 특히 행기스님은 몸소 제자들과 함께 일본 곳곳에 다리와 제방을 쌓아 백성들의 삶 속에서 실천불교를 전파한 분으로 유명하며 그가 지은 절만도 오사카와 교토 등에 49개사가 현존하고 있을 정도로 고대불교계에 추앙받는 스님으로 일본에서 행기스님을 모르면 일간첩이라 할 정도로 이름난 스님이다. 의연스님은 이렇게 일본불교계에 쟁쟁한 제자들을 둔 분이다. 그래서인지 출생부터 남다르다. 《곤자쿠이야기》설화집에 전해지는 의연스님의 탄생설화 곧 강보에 싸인 갓난아기를 천황이 손수 궁중으로 불러들여 자신의 왕자와 함께 키웠다는 부분은 의연스님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인물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당시 천지왕(626-672)은 왕
[그린경제/얼레빗=중국 연길 김영조 기자] 연변에서 사흘째다. 오늘은 느긋했던 어제와 달리 조금 서둘러 조선족예술단원 들을 만나러 나섰다. 조선족예술단은 전통예술을 직업으로 삼는 프로들이라고 한다. 이 조선족예술단은 예전 전통음악학회 일행이 처음 들른 때에 견주면 많이 발전했다고 서한범 회장은 회고한다. 조선족예술단에 들어서니 비교적 젊은 단장과 부단장이 반갑게 맞는다. 역시 한국전통음악학회는 조선족예술단에 거문고와 장구 그리고 단원들이 정성어린 성금을 모아 기탁했다. ▲ 조선족예술단 강대화 외 17명의 화려한 군무 무운(舞韻) ▲ 여성독창 도라지 연가를 부르는 조선족예술단 김소연 ▲ 조선족예술단 개량해금(채련화), 25현가야금(장위령), 고음젓대(안예화)의 민악3중주 그렇게 간단한 사전 행사가 끝난 뒤 조선족예술단과 한국전통음악학회의 전통예술교류가 시작되었다. 먼저 조선족예술단 단원들의 순서다. 강대화 외 17명이 화려한 군무를 펼친다. 무운(舞韻)의 이름으로 펼치는 무용 공연에 한국서 온 청중들은 눈을 떼지 못한다. 이어서 고운 한복 차림의 김소연 씨가 나와 여성독창 도라지 연가를 불렀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에 한동안 넋을 잃는데 이번엔
[그린경제/얼레빗=중국 연길 김영조 기자]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를 회장으로 한 한국전통음악학회는 중국 연변의 민족음악인들과 함께 끈끈한 교류를 무려 23해나 이어왔다. 1990년 한ㆍ중 수교가 이뤄지지 않았던 아주 어려운 여건에서 민족의 전통소리를 배우고자 한국 《국립국악원》으로 유학을 온 연변예술대학 전화자 교수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시작된 한중전통음악교류는 이제 2014년 제16회를 맞는다.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에 있는 연변대학교 예술대학 공연장에서는 어제 6월 25일 오후 3시 30분 드디어 제16회 행사가 시작되었다. 먼저 연변예술대학 김성삼 교수의 사회로 열린 여는 행사는 연변대학교 예술학원(한국의 단과대학) 신호 원장의 따뜻한 환영사가 있었고, 이어서 한국전통음악학회 서한범 회장의 축사 그리고 연변에술대학 전화자 교수의 축사가 있었다. ▲ 환영사를 하는 연변예술대 신호 원장, 인사말씀을 하는 한국전통음악학회 서한범 회장, 축사를 하는 연변예술대 전화자 교수(왼쪽부터) ▲ 한국에서 간 교류단은 가야금,거문고, 장구, 피리 등을 연변예술대에 기증했다. 인사말 순서가 끝난 뒤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 한국에서 정성껏 마련한 선물을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