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혜경궁 홍씨. 조선에서 이 여인만큼 지극한 영화를 누린 이도 드물 것이다. 아들 정조는 수원 화성행궁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연을 열어 장수를 축원했다. 출궁하여 환궁하기까지 여드레에 걸친 원행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신분을 빼앗기고 폐서인되거나 죽지 않으면 궐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왕실 여성의 신분으로, 이런 식의 외출을 해본 여성은 혜경궁 홍씨가 유일했다. 그해 봄, 혜경궁은 조선에서 가장 존귀한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런 영화로운 날이 있기까지 그녀야 삼켜야 할 울분과 고뇌,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시아버지가 남편을 뒤주에 가둬 죽이는 것을 고스란히 지켜보아야 했던, 심지어 시어머니와 친아버지가 남편을 죽일 것을 종용하는 모습을 바라보아야 했던, 조선에서 가장 기구한 팔자의 여인이 바로 그녀였다. 《아버지의 특별한 딸》 지은이는 이런 혜경궁 홍씨의 절절한 아픔과 고뇌를, 그녀가 지난날을 돌아보며 쓴 《한중록》의 각 대목과 함께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지은이가 특히 주목한 부분은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혜경궁 홍씨와 아버지 홍봉한의 관계다.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 – 아버지 홍봉한, 시아버지 영조, 남편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이 새로 낸 책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을 읽어보았다. 책은 미국판 입시부정 이야기로 시작한다. 2019년 3월 연방 검찰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33명의 부유한 학부모들이 명문대에 자녀를 집어넣기 위하여 교묘히 설계된 입시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른바 ‘조국 사태’라 불리우는 입시부정으로 한창 시끄러웠는데, 미국에서도 그와 비슷한 입시부정으로 시끄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서도 평등을 주장해오던 진보주의자들이 이런 부정을 저질렀다고 한다. 그동안 미국이라고 하면 굳이 대학을 가지 않아도 자기만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나라,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있어 누구나 재능이 이끄는 만큼 높이 올라갈 수 있는 나라로 인식됐지 않은가? 그런 미국도 지금은 대학이라는 간판, 그것도 명문대학이라는 간판이 없으면 성공하기 힘든 나라가 되었나 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비단 입시부정까지 가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입시 스펙을 쌓고 다듬기 위해서, 또 학력을 높이기 위한 사교육비 등으로 고액의 돈이 들어간다. 또한 고급 입시정보나 기회는 모든 이에게 동등하게
[우리문화신문=정석현 기자]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는 고려 시대 석비 중 국보·보물로 지정된 39기의 학술정보자료를 수록한 『한국의 석비-고려(국보·보물)』을 발간하였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추진하고 있는 ‘금석문학술정보구축’ 사업의 하나로 2020년『한국의 석비-고대(국보·보물)』에 이은 두 번째 금석문(金石文) 학술정보자료집이다. 현존하는 고려 시대 석비(石碑) 400여 기 가운데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39기의 기본 정보와 석비의 주인공 소개, 형태와 가치, 고화질 사진과 탁본, 판독문, 해석문 등 학술정보를 종합적으로 수록했으며, 휴대용 기기로 책자 내 정보무늬(QR코드)를 인증하면 석비를 고화질 사진으로 상세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책자는 지역별로 나눠 강원·경기·경상·전라·충청의 총 5장으로 구성했으며, 각 장은 석비의 제작연대 순으로 배열하였다. 책에 수록한 석비 대부분은 고려 시대 고승(高僧)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이고, 그 밖에 사찰을 건립하거나 중수할 때 그 과정을 기록한 사적비(事蹟碑), 유교의 윤리가 국가적으로 장려되면서 효자의 효행을 포상한 기록인 정려비(旌閭碑), 일반 백성의 소망을 담는 매향의식 때 세워진 매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궁’. 이 한 글자가 전하는 따뜻한 느낌은, 설레는 발걸음으로 궁을 찾아본 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궁에 가면 언제나 좋은 느낌이 들곤 했다. 머리가 복잡할 때 덕수궁을 거닐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기도 했고, 경복궁 집옥재에서 책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기도 했고, 창덕궁 후원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다 보면 기분이 상쾌해지기도 했다. 이 책을 쓰고 그린 이들도, 궁을 참 좋아했다. 서울 상봉동에 있는 여행책방 ‘바람길’의 주인장인 지은이 박수현은 그래서 궁 연구모임을 만들었다. 모임에서 같이 《조선왕조실록》을 읽은 지 두 달여, 외국인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책을 만드는 1인 출판사도 겸하고 있던 그는 외국어로 궁을 소개하기에 앞서 한국어로 된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운 입문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 책을 펴내게 됐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큰 과제는 그림을 그려줄 작가를 찾는 것이었다. 궁을 수채화로 표현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수채화로 궁을 그려줄 작가를 수소문한 끝에 조은지 작가를 만났다. 둘이 머리를 맞대고 궁의 색감과 느낌을 조금씩 찾아 나간 소중한 결과물이 바로 이 책, 《궁》이다. 《궁》은 모두 7장으로 구성되어 있
[우리문화신문=윤지영 기자] 이 소설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유학생이자 대한제국의 독립운동가 ‘하란사’의 여정을 담고 있다. 란사의 이화학당 동문이자 친구인 ‘화영’은 의친왕과 함께 비밀스러운 임무 수행을 위해 떠난 란사가 독살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조작된 소문이길 바라며, 멋쟁이 신여성이자 독립운동가인 란사를 회상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회상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란사는 본명인 ‘김란사’를 버리고 이화학당 선교사가 지어준 이름 ‘낸시’를 한자음으로 바꾼 ‘란사’에 남편인 하상기의 성을 따와 ‘하란사’라는 이름을 갖는다. 이화학당에 입학한 란사는 영어와 신학문을 배운 뒤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대한제국의 왕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의친왕을 통해 조선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키우게 된다. 귀국하여 이화학당 기숙사 사감이 된 란사는 ‘욕쟁이 사감’, ‘호랑이 사감’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학생들에게 엄격했다. “너희들은 등불 꺼진 저녁 같은 이 나라를 구해야 하는 사명이 있어. 공부를 하는 건 어둠을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 이러한 엄격함의 이면에는 교육이 곧 독립이라는 란사의 교육관이 있었다. 그러던 중, 의친왕을 도와 파리 강화 회
[우리문화신문= 금나래 기자] 온 세상을 물들인 단풍 구경에 시민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단풍 구경을 ‘놀이’라 부르는 것은 천천히 풍경을 보며 걷는 것만으로도 계절을 만끽할 수 있다는 매력 때문인 것 같다. 서울의 단풍 명소 중에는 한양도성 내사산의 하나인 남산도 있다. 이번 가을 남산에 풍성하게 그려진 역사를 찾아보며 찬찬히 남산을 걸어보면 어떨까? 서울의 중심부를 둘러보면 어디에서나 보이는 것이 있다. 지금은 N서울타워로 불리는 이른바 남산타워이다. 커다란 전파송출탑은 밤에는 조명으로 빛이나고 드라마나 뉴스에도 자주 등장해 남산의 상징, 서울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남산타워 앞 팔각정 터가 조선시대 봄가을 초제를 지냈던 목멱신사라는 사실이나 광복 후 국회의사당의 건립후보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서울역사답사기는 역사학자와 서울시민이 서울 곳곳을 돌아보고 매년 답사기를 발간하는 서울역사편찬원(원장 이상배)의 프로젝트다. <서울역사답사기5 –남산 일대>는 인왕산ㆍ북악산ㆍ낙산 일대에 이어 마지막 내사산인 남산을 답사한 결과물이다. 이번 책에서는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남산을 살펴보고 있다. 중구 명동, 회현동, 필동, 장충동, 후암동
[우리문화신문=금나래 기자] 국립민속박물관(관장 김종대) 어린이박물관 1층 상설전시 “우리 이제 만나요”(2021. 4. 27 ~ 2023. 3. 12.) 한쪽 벽에는 방문 아이들의 짧은 기록이 빼곡히 붙어있다. 전시에 대한 체험에서 부터 친구에게 보내는 안부까지 그 내용도 다양하다. 전래 동화 속 ‘만남’ 이야기를 통해 함께 할 수 있음의 소중함을 느껴보자는 취지의 이 전시 체험공간에서, 아이들은 ‘내가 생각하는 만남은요~’라는 주제로 다양하고 재미난 기록을 남겨 주었다. 그 중 137편을 추려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선보이게 되었다. ‘만남’에 대한 아이들의 의견과 소망은 다양하다. ‘친구와의 재미있던 추억’, ‘시골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만나고 싶은 유명인’, ‘앞으로 만날 첫사랑의 이상형’, 등 아이들의 다채롭고 자유분방한 이야기들이 페이지마다 살아있다. 이를 보고 있노라면, 팍팍한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미소와 공감을 자아내는 아이들의 순수한 바람들이 우리의 삶 속으로 속히 다시 찾아오기를 절로 바라게 된다. 코로나19를 함께 겪는 아이들이 자기 ‘만남’ 이야기를 들려주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마스크 벗은 일상입니다.’(10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인생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일어난다. 그러니까 이런 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나를 친추(친구추가)했다. 그리고 갑자기 쏟아지는 친구신청 알람. 놀라서 친구목록을 확인한 나는, 쫌 놀랐다. 아니 많이 놀랐다. 어느 날 갑자기 메신저로 찾아온, 조선시대 그분들의 시시콜콜 사는 이야기 (p.13-15) 카톡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 아니 《조선왕조실톡》은 이렇게 포문을 연다. 갑자기 내 친구목록에 조선 임금들이 쭉 뜨고, 그들이 신하들과 나눈 대화를 채팅으로 볼 수 있다면? 생각만 해도 재밌는 이 아이디어를 웹툰으로 구현해낸 것이 바로 역사웹툰작가 ‘무적핑크’의 《조선왕조실톡》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웹툰은 작가가 2014년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올린 이후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고, 네이버 웹툰 연재를 거쳐 7권의 책으로도 출판됐다. 이 《조선왕조실톡》 시리즈는 국민 채팅앱 카카오톡을 활용한 친근한 전달방식, 작가 무적핑크의 재기발랄한 창작, 해설자 이한의 재치 있는 해설, 실록에 기록된 것과 기록되지 않은 것을 구분해 짚어주는 친절한 기획 덕분에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훌륭한 역사콘텐츠로 탄생했
[우리문화신문= 금나래 기자] 스페인에서 논픽션 분야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 책은, 고생물학자가 인류의 진화에 대해 쉽게 풀어 이야기를 하면 소설가는 우리가 왜 사피엔스와 고인류에 호기심을 느끼는지 노련하게 이야기를 엮어 낸다. 두 사람의 인간 탐구 여행은 그 자체로 흥미진진하다. 선사 시대 동굴 벽화에서 구석기 시대의 예술을 논하고, 놀이터에서 유인원과 인간과의 차이점을 대입해본다. 장난감 가게에서는 문화적 수렴과 적응이 이루어지는 방법을 알게 되고, 레스토랑에서는 인간의 먹거리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논한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우리의 현재와 과거는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한다. 제목에 등장하는 ‘루시(Lucy)’는 에티오피아에서 화석으로 발견된 호미니드(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의 원시인으로 약 320만 년 전에 살았던 인물로 추정된다. 현재 우리에게 어떤 생물학적 토대가 있는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인류의 조상인 ‘루시’가 지나온 길을 찬찬히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후안 호세 미야스, 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 남진희 옮김, 틈새책방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립광주박물관(관장 이수미)은 2021년 지역학 연구 거점화 사업의 일환으로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의 발굴조사 결과를 정리한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국립광주박물관은 기존에 조사를 진행하였으나 보고서를 발간하지 못한 유적에 대한 보고서 작성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신덕고분은 1991년 국립광주박물관이 발굴한 삼국시대의 무덤인데, 특히 1호 무덤의 모양이 일본 고훈시대[古墳時代]의 주요 무덤인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과 비슷하여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모양의 무덤이 조사된 적이 없어 신덕고분 조사 전까지 그 정체가 의문으로 남아있었다. 이번에 발간한 발굴조사보고서에는 1991년부터 2000년까지 총 4차례에 걸쳐 진행된 무덤 2기의 조사 내용과 함께, 그곳에서 출토된 399건의 유물을 소개하였다. 더불어 김낙중 전북대 교수 등 6명의 국내 전문가와 함께, 다카타 간타(高田 貫太)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교수 등 3명의 일본인 전문가의 논고를 수록하여 무덤의 성격을 추론하였다. 보고서를 담당한 노형신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호남지역에 산재한 14기의 장고분 중 신덕고분처럼 그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의 구성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