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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 인사하는 사이 바람에 날아간 날김

윤향기, 불이(不二)
[우리문화신문과 함께 하는 시마을 89]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불이(不二)

 

                                     - 윤향기

 

갓 지은 따끈한 밥을 푸고

날김 몇 장과 조기 한 마리 들고

마당 탁자에 앉았다

 

햇살과 인사하느라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김은 바람에 업혀 날아가고

조기는 고양이가 낼름했다.

 

그래

바람은 바람 역할에 충실했고

고양이는 조기 냄새 마다하면

진짜 고양이가 아니지

 

나는 간장에 밥 비벼 맛있게 먹었다

 

 

 

《유마경》의 <불이법문품>에는 ‘不二禪(불이선)’이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 ‘不二’는 ‘선과 악’, ‘미(美)와 추(醜)’, ‘삶과 죽음’, ‘너와 나’ 등이 본질에서 그 근원은 같은 것, 그러므로 둘이 아니라는 뜻이란다. 절에 가면 ‘不二門(불이문)’이 있는데 이 불이문을 지나면서 이러한 ‘不二(불이)’의 진리를 깨달아 해탈에 이르라고 한다. 추사 김정희는 유마경을 탐구하다가, 이 ‘不二禪(불이선)’이라는 구절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고 ‘不二禪蘭(불이선란)’이라는 난초 그림을 그렸다.

 

여기 윤향기 시인은 그의 시 불이(不二)에서 갓 지은 따끈한 밥을 푸고 날김 몇 장과 조기 한 마리 들고 마당 탁자에 앉았다고 했다. 그런데 “햇살과 인사하느라 /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 김은 바람에 업혀 날아가고 / 조기는 고양이가 낼름했다”라고 그린다. 아 어쩌랴. ‘날김 몇 장과 조기 한 마리’만으로도 소박한 밥상인데 이마저 바람과 고양이에 빼앗겼다.

 

그러나 시인은 “바람은 바람 역할에 충실했고 / 고양이는 조기 냄새 마다하면 / 진짜 고양이가 아니지”라고 담담히 노래한다. 그러면서 시는 “간장에 밥 비벼 맛있게 먹었다.” 끝맺었다. 시인은 김과 바람, 조기와 고양이를 ‘불이(不二)’로 보았는가 보다. 어쩌면 자연과 시인이 ‘불이(不二)’일지도 모른다. 날김과 조기보다 먼저 시인은 햇살과 인사하고 있지 않은가?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