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이규봉 기자] 2013년 3월 26일. 장준하 선생 사인 진상조사공동위원회는 장준하 선생의 유골을 감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정빈 서울대 명예교수의 정밀감식팀은 장준하 선생이 머리를 가격당해 목이 손상돼서 즉사 했고, 이후 누군가 벼랑 밑으로 내던졌거나 추락해 엉덩이뼈가 손상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비록 민간 발표이나 이로써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에 있는 약사봉에서 실족해 죽었다는 정부의 공식보도를 38년 만에 부정하는 것으로, 누가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진상을 규명해야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장준하 선생의 죽음이 정치적 타살로 인정된다면, 이 사건은 일제강점기 시절 조국의 광복을 찾기 위해 한 몸을 다 바친 광복군 대위가 해방 후에 자신의 나라를 빼앗은 일본의 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조선인 출신 일본군 중위에게 오히려 죽임을 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어찌 비분강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독립투사 중에 독립투사이며 나라와 민족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정통 보수주의자가 해방 정국에 기회주의자인 친일파에 의해 죽임을 당하다니.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빼앗은 당시 대통령에게는 군부정권 시절임에도 거침없이 독설을 퍼붓는 장준하
[그린경제=정석현 기자] 혹독한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인의 강제징용의 역사는 그다지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다. 큐슈의 탄광, 야하타 등의 제철소, 교토의 비행장 건설 현장 등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죽어간 조선인들의 정확한 숫자 조차도 파악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가운데 여운택(90)씨 등 4명이 신일본제철 주식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파기환송심에서 원고에게 각 1억원을 지급하라는 10일자 서울고법 민사19부(부장 윤성근)의 판결은 의미가 깊다. ▲ 신일본제철 주식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파기환송심 직전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신일본제철의 손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 원고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회원들(사진제공 민족문제연구소 김진영 연구원) 재판부는 일본의 핵심 군수업체였던 구 일본제철은 일본 정부와 함께 침략 전쟁을 위해 인력을 동원하는 등 반인도적인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며 침략전쟁은 국제질서와 대한민국 헌법뿐 아니라 현재 일본 헌법에도 반하는 행위라며 이같이 판결했다. 이어 피고들이 한일청구권협정이나 소멸시효 등을 주장하는 것은 침략전쟁을 부정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질서에 반한
▲ 중국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하여 13억 중국인을 뒤흔든 정율성 [그린경제=이윤옥 기자] 팔로군이란 중국국민혁명군 제8로군의 약칭으로 중국의 항일전쟁 때 최전선을 담당한 부대이다. 팔로군은 적극적인 항일전을 펼쳤고, 민심을 보살폈으며 중일전쟁 기간 동안 중국공산당 발전을 크게 이바지한 중국공산당 부대로 훗날 인민해방군의 전신이다. 중국 서안 팔로군기념관[八路軍西安辨事處紀念館]을 찾은 것은 폭염이 내리쬐던 6월 25일 오후였다.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줄줄 흐르는 서안의 무더위 속에서 팔로군 기념관을 찾은 것은 일제국주의의 아시아 침략의 역사를 기억하고자 하는 뜻에서였다. 그러나 더욱 특별한 것은 이곳 서안의 팔로군기념관에는 조선인으로 중국의 공식 군가인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정율성의 자취가 있기 때문이다. 팔로군기념관은 원래 팔로군의 본부이자 공산당 혁명의 근거지로 이 건물은 《중국의 붉은 별》저자 에드가스노의 아내인 헬렌포스터의 소유였다. 헬렌은 건물의 외관을 병원으로 위장하여 팔로군에세 활동공간을 제공하였는데 내부는 당시의 활동상을 보여주는 회의실, 침실, 훈련실 따위를 재현해 놓았다. 기념관 첫방에는 모택동 사진이 걸려 있으며 각 방마다
[그린경제=한성훈기자] 경기도실학박물관과 가평문화원은 조선 최고의 경세가 잠곡(潛谷) 김육(金堉, 1580~1658)의 사상을 재조명하고, 관련 유적을 향후 역사 문화공간으로 개발 활용하기 위한 실학문화 심포지엄을 공동 개최한다. 7월 5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가평군청 대회의실에서 개최되는 이번 심포지엄은 조선시대 대동법을 시행해 조선을 살린 잠곡 김육의 사상을 재조명하고 경기 북부지역의 정신 문화자원을 개발하여 도민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는 취지로 마련됐다. 김육은 조선시대 최대의 개혁인 대동법을 추진한 큰 학자이자 관료. 그는 광해군의 실정(失政)을 보고 가평군 청덕동(현 청평)에 은거하여 10여 년 동안 농사를 지으며 야인 생활을 하는 와중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 세상에 나가 개혁을 추진할 실학적 경륜을 쌓았다. 인조반정 이후 관직에 나가 새로운 역법인 시헌력(時憲曆)을 시행하고 수레, 수차 및 동전의 도입과 활자의 제작에도 진력했다. 잠곡은 70세에 재상에 올라 공납의 폐해를 없애기 위한 충청도의 대동법을 주관했고, 기득권 세력의 방해를 물리치고 전라도 대동법을 시행하던 중 79세로 별세했다. 대동법과 제반 개혁은 조선후기 사회변화의 기폭제였다.
[그린경제= 한성훈기자] 겨레의 스승 백범 김구 선생 서거 64주기를 맞아 어제 곳곳에서 선생을 추모하는 행사를 가진 가운데 백범김구기념관 대회의실에서도 오전 10시 30분 강창희 국회의장을 비롯한 많은 내외빈이 모인 가운데 추모식이 열렸다. 강 의장은 추모사에서 백범 선생이 사랑하는 겨레의 품을 떠난 지 64년이 흘렀다. 이제 우리나라는 선생이 소원했던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뿐만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부강한 나라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 백범김구기념관 대회의실의 추모식 모습 (사진제공 손영주) 한편 백범 선생이 안두희의 총탄을 맞고 서거한 경교장에서도 추모식이 이어졌으며 저녁 7시에는 장충단공원에서 백범김구 판소리 공연이 이어져 선생의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겼다. 이날 판소리 공연은 통일문제연구소(소장 백기완)가 주최하고 명창 임진택이 백범 선생의 일대기를 담은 구성진 판소리로 참석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 장충단 공원에서 가졌던 백범김구 창작판소리 전에서 인사말을 하는 백기완 선생(사진제공 손영주) 너 이놈 왜놈은 말 듣거라! 만국 공법이니 국제 공법 그 어디에 국가간의 통상 화친 조약을 체결한 후 그 나라 국모를 시해하라는
[그린경제=노정용기자] 미국 UCLA 안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민족음악대학이 있다. 민족음악대학 안에는 중국, 인도네시아, 인도, 아프리카, 동유럽, 중동, 브라질, 멕시코, 미국재즈 등 각 대륙의 종족음악과 함께 한국음악과가 개설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음악과만이 재정난으로 거의 폐과 직전의 위기에 몰려 있다. 10년 넘게 UCLA 한국음악과를 살려야한다는 일념으로 동분서주해 온 서한범 박사(단국대 명예교수)는 지금 현재로서는 너무나 절망적이다. 한번 학과가 폐과 되고 나면 다시 개설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세계인들에게 한국음악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는 전진기지이자 교두보인 UCLA 한국음악과를 살리는데 정부와 기업, 국악계, 그리고 뜻있는 독지가들이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국전통음악학회를 이끌고 있는 서 박사는 UCLA 한국음악과의 폐과를 막아야 한다고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다. 단국대에서 정년퇴임한 이후에도 명예교수로서 후학을 지도하고 있는 한편, 일반인에게 국악을 알리기 위해 글쓰기와 맛깔나는 국악해설로 공연현장을 누비고 있는 서 박사를 만났다. 편집자 주 -UCLA 한국음악과를 살려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계신데, 한국음악과에 대해
[그린경제=한성훈 기자] 어제 본 신문은 중국 섬서성 역사박물관이 한중일 삼국 지도에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했다고 보도했다. 국립해양박물관(관장 박상범)은 여전히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을 향해 분명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국 땅임을 보여준다. ▲ 신찬조선국전도 1894년/ 다나카 조쇼(田中紹祥) 제작, 울릉도와 독도를 한반도와 같은 색으로 채색하여 조선 영토임을 표시. 반면, 일본과 중국은 채색하지 않음. 국립해양박물관이 처음 기획한 유물 소개전은 그 동안 박물관에서 수집하여 소장하고 있었던 동해 표기와 독도 영토주권에 대한 미공개 역사 유물들을 보여주고자 지도로 만나는 동해와 독도라는 주제로 문을 연다. 이를 보고도 일본이 여전히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후안무치일 뿐이다. 전시는 부산시 영도구 해양로301번길 45(동삼동 1125) 국립해양박물관 3층 해양문화실이며, 오는 7월 14일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문의전화는 051-309-1900이다. ▲ 중국지도 1635년 / 블라우 제작 , 조선을 고려섬(Ins. Corai) 으로 표기 ▲ 아시아 최신 지도 1721년 / 세넥스(개정) 제작, 동해를 한국해(Sea of
[그린경제=윤수애 기자]중국 장개석 총통이 중국의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했다.고 높이 평가했고 이를 계기로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기 시작한 사건. 바로 1932년 4월 29일, 윤봉길(1908. 6. 21 출생 24살로 의거 순국) 의사가 상해 홍구공원(지금은 노신공원)에서 일제의 조선침략을 만천하에 응징한 것이지요. 그 위대한 윤봉길 의사 탄신 105돌을 맞이하여 (사)매헌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가 주최한 현충시설 가족체험 탐방행사기 있어 다녀왔습니다. 이날 체험은 매헌기념관에서 시작하여 윤봉길 의사 생가(조중도), 에산 충의사, 독립기념관 등 윤봉길 의사를 비롯한 순국선열들의 발자취와 나라사랑 정신을 느낄 수 있는 현충시설을 청소년이 부모님과 함께 찾아가보는 행사입니다. 돌아보면서 먼저 일본군 수뇌를 물통 폭탄으로 죽이고 부상케 한 일 뿐을 정말 감격스러웠습니다. 장개석 총통이 말한 것처럼 중국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엄청난 일을 윤 의사는 단신으로 해냈다는 게 자랑스러웠습니다. 윤 의사의 훌륭함은 그것뿐이 아니었습니다. 16살에 시회에서 장원을 한 것을 시작으로 18살 시집을 펴
[그린경제=이윤옥 기자]최근 일본의 역사왜곡은 극에 달했다. 종군위안부를 부인하는가 하면 여전히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를 부려 한국인들의 분통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일본은 자국 내에서 하는 것에 성이 안차 세계 각국에 역사 왜곡을 부추긴다. 문제는 이들 나라들이 아무런 고증없이 일본을 따른다는 다는 것이다. 기자는 중국 섬서성 유적답사 여행을 하는 중이다. 그 여행 중에 섬서성 역사박물관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여기서 역시 왜곡의 현장을 보았다. 역사박물관 제3전시실 당나라 역사전시관에 당시의 한중일 지도가 나오는데 여기에 동해를 분명히 일본해로 표기해 놓은 것이다. ▲ 중국 섬서성 역사박물관 제3전시실 당나라 역사전시관의 당시의 한중일 지도, 동해를 분명히 일본해로 표기해 놓았다.(붉은 줄로 표시) 당나라시대에 해양술이 발달되지 않아 일본은 신라 배를 이용해야 겨우 중국에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은 각종 역사서가 증명한다 그런 상황에서 왜국이 바다 이름에 신경 쓸 틈이 없었을 것은 자명하다. 또한 분명한 사실은 과거나 현재나 일본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이날 역사박물관을 관람한 한국 관광객들은 섬서역사박물관이 이에 대한 신속한 시정해주기를
[그린경제=이한영 기자]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위는 윤봉길 의사 (1908. 6. 21. ~ 1932. 12. 19.)가 두 아들 모순(模淳)과 담(淡)에게 쓴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1932년 4월 29일 일왕(日王)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을 맞아 축하식이 벌어지던 상해 홍구공원에서의 장렬한 의거는 중국의 장개석 총통이 중국의 백만 대군도 못한 일을 일개 조선청년이 해냈다고 할 만큼 대한민국의 독립의지와 기개를 세계만방에 드높인 의거였다. 이 윤봉길 의사를 기리는 제6회 매헌청소년문화제가 열린다. ▲ 매헌 윤봉길의사 탄신 105주년 매헌청소년문화제 (사)매헌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www.yunbonggil.or.kr)와 (사)월진회(www.wjh.or.kr) 공동 주최로 오는 6월 29일(토요일) 10시부터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과 양재시민의숲에서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글짓기(운문, 산문)와 그리기 대회를 연다. 주제는 윤봉길 의사의 나라사랑 정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