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1885년 꽃들이 만발한 4월 3일, 한양의 사대문과 종각(보신각)에 이런 취지의 공고문이 붙어 있다. 정부에서 병원 하나를 설립했는데 북부 재동 외아문(외교부) 북쪽으로 두 번째 집이다. 미국 의사 알렌을 초빙하였고 아울러 의학도와 의약 및 여러 도구를 갖추고 있다. 오늘부터 매일 미시(오후 1-3시)에서 신시(오후 3-5시)까지 병원 문을 열어 약을 줄 것이다. 알렌의 의술은 정교하고 양호한데 특히 외과에 뛰어나서 한 번 진료를 받으면 신통한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본 병원에는 남녀가 머물 병실이 있으니 무릇 질병에 걸린 자는 병원에 와서 치료받을 것이며 약값은 나라에서 대줄 것이다. 이를 숙지하여 하등 의심을 품지 말고 치료를 받으러 올지어다. 한편, 당국은 한성부에 지시해 모든 계(契, 동의 상위 조직인 계는 당시 한성에 300여 개가 있었다.)에 공고문을 게시토록 했으며, 지방에도 읍마다 공고하게 했다.(황상익, 《근대의료의 풍경》)이 첫 서양식 병원은 처음엔 광혜원으로 불리다가 곧 제중원으로 개명되었다. 오늘날의 헌법재판소 경내에 있었다고 한다. 의사 알렌의 일기(1885년 4월 10일 자)다. 병원은 어제 개원했는데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과거는 살아 있는 현재요 미래의 거울이라고 한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지금으로부터 126년 전 12월에 일어났다면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말 그러한지 시공여행을 떠나보자. 먼저 전인권 등 공저, 《1898, 문명의 전환》 218쪽에는 1898년에 한양의 거리를 달군 만민공동회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만민공동회는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하나의 ‘국민’임을 경험한 축제의 현장이었다. 장작불을 피워놓고, 장국밥을 먹으며, 기생에서부터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생각을 쏟아놓았고 직접 참가하지 못한 사람들은, 물품과 돈을 제공함으로써 시위대에 동조를 표했다. 수많은 말이 넘쳐나는 현장을 각 신문들은 다투어 ‘중계’했고, 신문에 실린 뉴스는 때로는 소문으로 그리고 때로는 풍문으로 대한제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다음은 1898년 11월 26일 자 <독립신문>이다. 수하동 소학교 학도 태억석, 장용남 두 아이는 나이가 십이삼인데 만민공동회에 다니면서 충애 의리로 연설하였는 고로, 옳은 목적 가진 이들은 그 두 아이를 칭찬 아니하는 이가 없었다는지라.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