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삼국시대 신라에서 당나라 산동반도로 가기에 가장 가까운 곳 가운데 하나였던 항구가 당진이다. 당진이란 지명은 당나라로 가는 나룻터라는 뜻으로 당시로는 매우 큰 항구도시였다. 따라서 망망대해 바다를 건너는 것은 늘 험난한 일이었기에 사람들은 늘 무사히 건너기를 기원하였다. 따라서 당진항으로 가는 길목에는 사람들이 오고가는 길목에 뱃길의 무사함을 기원하기 위한 절을 세우고, 부처님께 기도하는 일이 반드시 해야할 일이었다. 그렇게 세워진 절이 안국사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절이 없어지고 석불만이 남아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근에 절이 없어진 터에 스님들이 다시 찾아와 석불 주변을 꽃밭으로 만드는 작업을 정성껏 하였고, 이제는 석불 주변이 온통 꽃밭으로 바뀌었다. 스님들은 석불 앞마당과 주변 언덕을 온통 각종 야생화들로 가득 채워서 봄부터 가을까지 안국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석불의 앞을 꽃의 화엄세계로 바꾸어 놓았다. 석불만 우뚝 서있을 때에는 황량한 언덕이 너무도 쓸쓸하였었는데, 꽃으로 변한 안국사는 그 어느 절보다도 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당진은 오래된 고찰을 찾아보기 어려운데, 옛 당진의 영화를 그려볼 수 있는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한국인의 믿음으로 받아들여진 불교문화는 음악, 무용, 그림, 조각, 건축, 문학 등 종합문화예술로 승화되어 이어져 왔다. 불교는 한국의 옛날 종교로만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삶에 있어서 모든 방면에 깊이 남아 어려운 국난의 시절에는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감싸주는 의지처가 되어왔다. 불교의 상징은 부처님으로 형상화 한 불상이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형상화한 부처님을 건물에 모시고 예불을 드리기도 하고, 건물 밖 상징적인 곳에 세워서 예불을 드리기도 하였는데, 불상을 새기는데는 당대 가장 솜씨좋은 불상조각가들이 최고의 정성으로 조성하였다. 그런 불상이지만 여러 차례 국난과 조선시대의 배불정책에 많이 훼손되기도 하였다. 이번 전시는 불교사진 동우회 인연(印緣)의 제8회 전시회로, 전국의 절과 폐사지를 찾아다니면서 담아온 사진들이다. 전시회에 담겨진 한국의 석불은 한국인의 마음을 담은 종교적 조각상으로, 수많은 전란을 거치면서도 오늘날 남아있는 불상들이다. 우리는 이 불상들을 통하여 우리 옛 조상들의 마음이 그대로 스며있는 모습을 느낄 수 있으며, 한민족의 순수한 마음이 평화적으로 표현된 부처님의 모습을 새롭게 느껴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하늘재를 아세요? 이렇게 물어보면 대부분 그게 뭐냐고 되묻는다. "아, 충청북도와 경상북도를 연결하는 고개인데, 거 왜 수안보에서 미륵불 있는 데로 해서 넘어가는 곳이요" 이렇게 말해 주면 "아, 거기요, 그게 이름이 하늘재입니까?"라며 비로소 어디인 줄 대충 파악하는 눈치다. 다시 묻는다. "하늘재를 올라가 보셨나요?" 이 질문을 들은 사람 열이면 열은 올라가 보지 못했다고 할 것이다. 사실 고향이 문경인 나도 갔다고 말할 수 없었다. 전에 도자기를 하는 도예가 차를 타고 문경 쪽에서 차로 올라가 충북 쪽에서 올라오는 길을 본 적이 있지만, 차로 간 만큼 올라갔다는 느낌이 별로 없었다. 예전 주소로는 문경군 문경읍 관음리이고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을 다니던 용흥 초등학교에서부터 서쪽 태백산맥을 넘는 고개로 올라가는 것인데 길옆에 띄엄띄엄 집도 있고 깨어진 돌탑도 있고 해서 옛길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걷는 고생이 없어서 고개를 오른다는 느낌이 약했기 때문인 듯, 가본 것 같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고개(峙)건 재(嶺)건 올라가는 길은 반드시 두 개 이상이 있을 터인즉 경북과 충북 사이에 놓인 이 하늘재도 올라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