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1910년 오늘(9월 10일)은 시인이자 역사학자이며, 독립운동가인 매천 황현(黃玹) 선생이 한일병탄으로 나라를 일제에 빼앗기자 스스로 목숨을 끊어 순국한 날입니다. 선생은 28살 때 보거과(保擧科, 뛰어난 인재를 추천받아 시험을 치르는 별시)에 응시해 초시에서 1등으로 뽑혔지만, 시험관은 그가 시골 출신이라는 이유로 2등으로 낮췄습니다. 이에 조정의 부패를 절감한 선생은 관직을 포기하고 고향 구례로 내려왔지요. 이후 구안실(苟安室)이라는 작은 초가집을 짓고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했습니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편안하다”라는 뜻이 담긴 구안실은 선생의 문학과 학문의 산실이었지요. 그곳에 16해 정도를 살면서 무려 1천 수가 넘는 시를 지었는데 음풍농월(吟風弄月: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대상으로 시를 짓고 흥취를 즐김)이 아닌 절의를 지킨 역사적 인물이나 사실을 주로 읊었습니다. 그런 선생은 한일병탄이 되자 “훗날 이런 치욕의 날 누구 하나 책임감 있는 행동을 안 한다면 그것 역시 치욕이다.”라는 말을 토했습니다. 그 뒤 9월 10일 선생은 “새도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마저 찡그리니 / 무궁화 세상 이미 빼앗겨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114년 전 오늘(1910년 9월 30일)은 이완용을 처단한 이재명 의사가 사형집행으로 순국한 날입니다. 일제의 침략 괴수들보다 같은 겨레로서 왜적에게 나라를 파는데 앞장섰던 매국노들을 먼저 처단하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지름길이라 생각한 이재명 의사는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신을 죽이기로 작정했습니다. 이 의사는 이 오적신들이 명동성당에서 벨기에 황제 추도식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1909년 12월 22일 낮 11시 30분 무렵 성당 문밖에서 군밤장수로 변장하고 기다리다가 매국노 이완용이 인력거를 타고 앞으로 지나갈 때 칼을 들고 이완용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이재명 의사는 이완용의 허리를 찌르고 이완용을 타고 앉아 어깨 등을 사정없이 찔렀지요. 그의 거사로 인력거 주변은 유혈이 낭자하였고 목적을 달성하였다고 판단한 그는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일경들에게 붙잡혔습니다. 그런데 칼에 맞아 중상을 입었던 매국노 이완용은 불행히도 목숨을 건져 매국조약에 도장을 찍었지요. 이재명 의사는 1910년 봄 공판장에서 태연하고도 엄숙한 어조로 역적 이완용의 죄목을 통렬히 꾸짖고 나라를 위하여 그를 처단하였음을 역설하였으며, 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월간 《순국》 5월호로 창간 400호를 맞는 감회가 남다릅니다. 2019년 3.1만세운동 100돌을 맞이하던 해에 출간 비용이 없어 폐간 위기 직전까지 가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기에 제게는 유독 월간 《순국》 400호 기념이 죽었던 자식이 살아 돌아온 느낌이 듭니다. 월간 《순국》은 1988년 1월에 창간했으니, 올해로 36살 중년의 나이로 접어든 것이지요. 그간 흑백으로 발간하다가 2020년 5월부터 국배판 B5 크기에 전면 컬러로 매월 130쪽 안팎 분량을 펴내고 있습니다.” 이는 (사)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아래, 순국선열유족회) 이동일 회장의 말이다. 어제(24일) 아침 10시, 기자는 독립운동계의 으뜸 정기간행물인 월간 《순국》 창간 400호와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자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 내 ‘독립관’ 지하 1층 순국선열유족회를 찾아가 이동일 회장을 만났다.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지령 400호를 맞이한 월간 《순국》은 세 가지 관점에서 주목받아야 할 것입니다. 첫째, 공공기관도 아닌 민간단체가 1988년 창간 이래 36년 동안 중단 없이 발간해 오고 있는 점 둘째,국가보훈부가 이 잡지의 질적 우수성을 높게 평가하여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