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불교의 선맥을 되살린 경허스님과 청계사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서울의 인접도시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청계사는 수도권 동산객들이 많이 찾는 절이다. 청계사는 처음 창건시기를 신라말기로 기록하고 있지만 당시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이후 청계사의 본격적인 기록은 고려 후기 원나라 간섭기인 충렬왕 10년(1284)부터다. 이때 조인규(1227~1308)는 막대한 사재를 들여 조씨의 원찰로 청계사의 중창에 심혈을 기울였다. 조인규는 본래 이 지역의 변변치 못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원나라 간섭기 몽골어를 잘 배워 43세 충렬왕이 세자시절 세자를 모시고 통역관으로 원나라에 다녀오면서부터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원나라 황제의 딸(제국대장공주)이 충렬왕의 왕비가 됨에 따라 조인규는 왕비인 제국대장공주를 잘 섬겨 공주세력을 바탕으로 상징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원나라 세조(쿠빌라이칸)로 부터 신임을 얻어 원나라의 관직을 제수받기도 하엿다. 그 뒤 1292년 자신의 딸이 세자비로 간택되면서 조정의 유력한 존재가 되었고, 1298년 사위인 충선왕이 즉위하자 왕실의 측근이 되어 더욱 세력이 커졌다. 그러나 충선왕은 원나라 황제의 딸인 계국대장공주를 왕비로 삼은 상태로, 계국대장공주와 조인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