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사람에게 인품이 있는 것처럼, 말에는 언품이 있다. 인품이 좋은 사람은 말도 크게 품격이 떨어지지 않는다. 달변은 아닐지언정, 품격 없는 언어로 물의를 일으키는 일은 드물다. 지도자는 자신의 말이 파급력이 더 크기에 더욱 말을 조심해야 한다. 자신의 말 한마디로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고, 그 말이 일파만파 퍼져 공동체 전체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까닭이다.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자로도 일한 이력이 있는 지은이 이기주가 쓴 《언품》은, 자기 말이 얼마나 품격이 있는지 한 번쯤 돌아보고 싶은 이들에게 유용한 지침서다. 역사에서 풍부한 사례를 인용하고 사례마다 생각해 볼 지점을 짚으며 독자를 말의 세계로 이끈다. 많은 사례 가운데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운주당’이다. 당시에는 관료 상당수가 개인 서재를 가지고 있었고, 문관이나 무관이나 서재에서 독서하며 웅대한 기상을 품고 원대한 꿈을 설계했다. 충무공도 개인 서재가 있었으니, 바로 한산도에 머무는 동안 이용했던 ‘운주당(運籌堂)’이다. 운주당은 독서 공간 겸 개인 집무실로 복합문화공간 역할을 하면서, 중간급 간부들과 계급이 낮은 병사들의 의견을 자유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그제(6일) 오전, 완도 고금도 다녀왔다. 충무공 이순신 사당 건너편, 솔바람이 향긋한 솔숲 월송대(月松臺, 고금면 충무사길 86-31)에 올랐다. 보름밤이었으면 휘영청 밝은 달이 노송 사이로 두둥실 떠올랐을 그 월송대에서 소나무 사이의 먼바다를 바라다본다. 이곳 월송대는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충무공의 유해가 열흘 동안 안치되어 있던 곳이다. “이곳 월송대는 충무사 맞은편에 있으며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의 유해가 임시로 안치되었던 곳이다. 이순신 장군은 1598년 2월 11일, 고금도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하고 수군을 재정비하여 왜적을 물리쳤다. 장군이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자 본영이었던 이곳에 11월 22일 무렵 도착하여 10여 일간 안치되었다. 이후 1599년 2월 11일, 아산 금성산(錦城山)에 안장되었다가 1614년 4월 어라산(於羅山)으로 이장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완도군 - 완도군 고금도는 임진왜란 7년 전쟁의 마지막 통제영이 있던 곳이다. 이순신 장군은 고금도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하고 노량해전을 준비했다. 이곳은 고니시 유키나가의 순천 왜성과 100리 거리를 두고 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