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255) 승정원은 ‘목구멍과 혀(喉舌)’에 해당하는 부서로, 왕명 출납을 맡아 옳은 것은 아뢰고, 부당하다고 여기는 것은 거부하였으니, 그 임무가 막중하다. 개국 이래로 승지에 임명된 경우 사람들이 신선처럼 우러러 보았으며, 세속에서는 은대학사(銀臺學士)라고 일컬었다. 시중드는 하인들도 모두 은패(銀牌)를 차고 자색 옷을 차려 입고 스스로 영광스럽게 여겼다. 순암집》- 승정원. 오늘날로 말하면 비서실과 같은 관청이다. 임금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할 수 있어 소속 관원들의 자부심과 권한도 대단했다. 승정원은 관원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면서도, 세속에 휩쓸리지 않고 올곧게 왕명을 전달하는 청렴함과 과중한 업무를 이겨낼 수 있는 체력이 요구되는 곳이기도 했다. 한국고전번역원의 승정원일기번역팀이 펴낸 이 책, 《후설》은 승정원일기와 승정원에서 일하던 관원들을 자세히 보여준다. 조선왕조실록보다 덜 알려져 있으면서도 분량이나 내용에서 뒤지지 않는 승정원일기를 조명하는 책이다. 《승정원일기》는 조선시대 왕명의 출납을 관장하던 승정원에서 작성한 일종의 ‘국정일기’였다. 오늘날로 말하면 부처별 보고와 이에 대한 임금의 업무지시를 고스란히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운명이 때로 가혹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좋은 벗이 해주는 위로는 천군만마보다 더 힘이 날 때가 있다. 이덕무와 박제가도 그랬다. 서얼로 태어나 가진 재주를 마음껏 펼치지 못하는 울분을 삼켜야 했던 그들은, 서로가 가진 슬픔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상대의 귀한 재능을 알아봐 주고 독려해 주며, 어려운 세상을 함께 헤쳐 나갔다. 강민경이 쓴 이 책, 《운명아, 덤벼라!》는 신분이 주는 한계에 힘없이 굴복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한 이덕무와 박제가의 우정을 담았다.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덤벼라!’는 자세로 맞서 분투할 때, 견고할 것 같던 운명도 슬쩍 길을 비켜주었다. 두 사람은 외적으로는 매우 달랐다. 우선 이덕무는 박제가보다 아홉 살이 많았다. 이덕무는 큰 키에 마른 편이고, 박제가는 키가 작고 다부졌다. 이덕무는 유순한 성격이었고, 박제가는 거침없는 성격이었다. (p.28) 내 삶에 대해 감히 누가 이러쿵저러쿵할 수 있단 말입니까? 태어나기 전부터 삶이 정해져 있다고요? 내 힘으로 삶을 어찌할 수 없다고요? 운명이 나를 들었다 놨다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나라고 그깟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