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불볕더위가 이 같은데 성 쌓는 곳에서 감독하고 일하는 많은 사람이 끙끙대고 헐떡거리는 모습을 생각하니, 밤낮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잠시도 놓을 수 없다. 이러한데 어떻게 밥맛이 달고 잠자리가 편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처럼 생각한다고 해서 속이 타는 사람의 가슴을 축여 주고 더위 먹은 사람의 열을 식혀 주는 데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따로 한 처방을 연구해 내어 새로 약을 지어 내려보내니, 나누어 주어서 속이 타거나 더위를 먹은 증세에 1알 또는 반 알을 정화수에 타서 마시도록 하라” 위는 《정조실록》 18년(1794) 6월 28일의 기록으로 정조 임금이 화성을 쌓는 공사장의 일꾼들이 더위에 지쳐 몸이 상할 것을 걱정한 나머지 더위를 씻어준다는 ‘척서단(滌暑丹)’ 4천 정을 지어 내려보냈다는 내용입니다. 오늘은 삼복의 마지막 말복(末伏)입니다. 가을로 들어선다는 입추가 지난 지 이틀이 되었고, 더위를 처분한다는 처서가 보름 밖에 남지 않았지만, 아직 혹독한 불볕더위가 온 지구촌을 뒤흔들고, 밤에는 열대야로 잠 못 들게 하는 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복지경(伏地境, 더위가 한창인 때)엔 자칫하면 열사병이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경기도 화성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16년(854) 염거화상에 의해 창건되었다. 염거화상은 신라 구산선문의 최고 가람인 가지산파를 개창한 도의국사의 직계제자로 가지산파 2대조사로 신라 문성왕6년(844)에 입적하였다. 현재 용주사는 창건당시에는 갈양사(葛陽寺)였다. 염거화상은 당대 덕망이 높은 선승으로 갈양사를 선(禪) 수도도량으로 하여 많은 수행승들을 배출하였다. 갈양사는 이후 고려시대에는 혜거국사가 중창불사를 단행하였으며, 고려 태조의 요청에 따라 국가의 안녕과 백성의 평안을 기원하는 법회를 열어 국가적 축원도량으로 발전하였다. 혜거국사 당시에는 고려왕실의 요청에 따라 수륙대재(육지와 물속에 사는 모든 생명체들의 극락천도를 위한 천도재)를 거행하여 지금 용주사의 대표적 법회로 자리잡았다. 수륙대재는 지구상 지배자인 사람은 물론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있는 모든 존재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넋을 위로하고 모든 생명있는 존재들에게 불법을 널리 펴는 천도의식이다. 그 뒤 조선 중기에 이르러 용주사는 임진, 병자 전란을 거치면서 모든 건축물이 불타서 폐사되었으나 조선 22대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이곳 화산으로 옮기면서 융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