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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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차를 마시며지인이 주고 간 말차를
연거푸 대솔로 저어보지만
녹지 않고 남는 알갱이는 어쩔 수 없다
가루라고 다 물에 녹는 건 아니다명차의 고장 우지는
일본인에게 평등원의 추억이 크겠지만
내게 우지는 우토로의 슬픔이 크다더러운 골목 양철지붕 안 툇마루에
쪼그리고 앉은 주름 가득한 할매
손잡은 내게
아지매 아지매하고 따라나선다고향이 경상도였을까?
두 살 때 강제 연행된 아버지를 따라 나선 걸까?
사라진 기억 속에 맴도는 건 무엇일까?유네스코에 빛나는 역사의 고장
명차로 유명한 우지에는
버려진 내 동포가 사는 곳
우토로 마을이 있다 -
일본의 우지 (宇治)는 천년고도 교토 가까이에 있는 도시로 차(茶)로 유명하다. 또한 일본인이 자랑하는 무라사키시키부가 지은 <겐지이야기>의 무대이자 일본 최고의 아름다운 건축물인 평등원(平等院)이 있는 이름난 곳이다. 바로 그 근처에 일제강점기 강제 연행되어 힘겹게 살아가는 내 동포들의 마을 ‘우토로’가 있다.
이곳 우토로 마을에 조선인이 살기 시작한 것은 1941년 무렵부터다. 일제는 태평양 전쟁 중 교토 군비행장 건설을 기획했는데 이때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함바(노동자 합숙하던 임시 건물)를 지어 살게 되면서부터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6,000평의 땅에 많을 때는 1,500여 명의 조선인이 살았던 우토로는 말이 마을이지 처음에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역이 아니었다. 서너 평 남짓한 임시숙소(함바)에서 대여섯 명씩 숙식을 했다는 증언이 아니더라도 조선인 강제노동자들의 열악했던 환경은 지금도 남아 있는 다 쓰러져가는 마을 곳곳의 집들이 말해주고 있다.
문제는 누추한 곳이지만 그동안 평화롭게 살던 동포들이 이곳에서 쫓겨나게 될 상황을 맞이하게 된 일이다. 느닷없이 서일본식산회사의 '건물수거토지명도'란 소송이 들어오고 일본 정부가 이들에게 승소의 손을 들어 주는 바람에 영락없이 쫓겨날 운명을 맞이한 우토로 주민들을 보다 못한 한일간의 시민들이 우토로마을 돕기 운동에 팔을 걷어 부쳤다. 그런 가운데 얼마 전에는 MBC '무한도전' 방송 이후 국내에서도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현재 우토로 마을에서는 마을주민회를 중심으로 도로확장공사와 주택보수 공사등을 하고 있다고 한다. 꿋꿋하게 동포들의 터전이 지켜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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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토로마을 골목에서 본 것들 / 다 쓰러져가는 집, 이 마을엔 저렇게 빈집이 많아 살지 못할 마을임을 드러낸다. 마을 주민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우물, 일본인 마을과의 사이에 있는 작은 도랑 <2010년 8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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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토로마을 안길 담장 등에 붙은 여러 가지 구호와 외부 격려 글들, 윗줄 왼쪽에는 “우토로를 없애는 것은 일본의 양심을 없애는 것” 등의 구호가 일본어로 쓰여 있어 그동안 우토로 마을이 겪어왔을 고통의 흔적이 보인다 <2010년 8월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