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안평대군 별장자리 무계원 사랑방에서 “풍류산방” 그 마지막 마당이 12월 26일 늦은 4시에 펼쳐졌다. 이날 먼저 열린 것은 전국국악대전 기악현악 최우수상을 받은 이민영의 가야금 무대다.
해설은 한국전통음악학회 서한범 교수의 맛깔스러운 이야기 시작되었다. 이날은 직접 가야금을 들고 맨 앞줄에 앉아 있는 초등학생에게 가야금에 대한 이야기를 묻는 것으로 시작하여 신라 진흥왕 때 우륵 이야기를 들려주어 관객과의 분위기를 편안하게 해준다. 그리고 이어서 가야금 연주의 어려움을 설명하며 가야금 연주는 들어보면 몇년 공부한 것인지 알게 된다며 이민영 연주자의 연주에 귀를 기울이게 했다.
▲ 가야금을 들고 가야금이란 악기와 가야금 음악에 대해 친근하게 설명해주는 한국전통음악학회 서한범 회장
▲ 백인영류 가야금산조를 하는 이민영
▲ 청중들 가운데 맨 앞에는 할머니와 함께 온 한 초등학생이 열심히 감상하고 있다.
바로 눈 앞에서 연주자의 숨소리 하나까지 들리는 가운데 듣는 가야금 소리는 우륵이 탄금대에서 탔던 소리처럼 들렸다. 서한범 교수는 20여년간 가야금 공부를 한 이민영 연주자의 깊이 있는 가야금 연주와 더불어 가야금 타는 자태의 고운 모습까지 설명해주었다.
이민영은 백인영류 가야금산조로 무대를 열었는데 가야금과 아쟁 연주로 일세를 풍미했던 고 백인영 명인의 수제자답게 그는 가야금 연주를 신비스러우면서 섬세하게 그리고 우아하게 연주했다. 평소 들어왔던 가야금 연주와 달리 음향기기를 쓰지 않고 가까이서 듣는 가야금 소리는 무언지 모를 매력의 세계로 관중을 끌어들인다. 전자장치로 인한 소리의 왜곡이 없다는 증거이리라. 12줄 가야금 산조 뒤에는 다시 25현가야금으로 아리랑을 현란하게 연주한다. 높고 낮은 가락을 적절히 섞은 아리랑 곡은 사람의 소리로 들을 때와는 또 다른 격정적인 느낌으로 다가선다.
이어서 두 줄의 마력 해금이 등장한다. 성남시립국악단 부수석 장은정의 지영희류 해금산조 연주는 왜 해금이 현대인들에게도 인기가 있는지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흐느끼는 듯 속삭이는 듯 하다가 폭풍우 몰아치듯 격렬한 연주로 청중을 매료시킨다.
▲ 지영희류 해금산조를 연주하는 성남시립국악단 부수석 장은정
▲ 성남시립국악단 부수석 장은정과 전국국악대전 기악현악 최우수상을 받은 이민영의 해금ㆍ가야금 합주
해금산조가 끝나자 이민영이 다시 무대에 올라 해금과 함께 성악곡으로 많이 알려진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합주한다. 전혀 다름 음색의 25현가야금과 해금은 놀랍게도 기막히게도 호흡을 맞춰나간다. 욕심내다가 양보하고 양보하다고 욕심내는 두 악기의 환상적인 화음이 아닐 수가 없다. 두 악기가 뿜어내는 마력에 청중들은 숨을 죽인다.
그렇게 기악 연주가 끝나고 이제 유지숙 명창의 성악 차례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전수조교 유지숙 명창으로서의 무게감에 청중들의 큰 기대를 모은다. 서한범 교수는 “본고장에서는 이미 맥이 끊긴지 오랜 서도소리를 눈물겹게 그리고 올곧게 지켜나가는 서도소리 으뜸 명창이다. 이 귀한 분을 모시고 가까이서 서도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러분은 참으로 복 받은 분들이다.”라고 말한다.
유지숙 명창은 소리에 앞서 “서도소리는 처음 들을 때는 어렵다고 느끼다가도 여러 번 듣게 되면 그 매력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소리라고들 한다. 이제 서도소리를 공부하는 사람도 많지 않은 상황에 여러 분을 뵙게 되니 매우 기쁘다. 앞으로도 서도소리를 사랑해주어 그 맥을 잘 이을 수 잇도록 해 달라.”고 인사를 했다.
▲ 사랑방을 꽉 메운 청중들, 오른쪽 통로까지 청중이 앉아 있다.
▲ 청중들이 서도소리 매력에 푹 빠지게 한 유지숙 선생의 좌창 공연
그리곤 첫 순서로 스승인 고 오복녀 선생이 자주 불렀다는 좌창 “초로인생(草露人生)”을 부른다. 인생의 무상(無常)함을 읊은 이 소리를 유 명창은 자신의 노래인 듯 청중의 노래인 듯 무게감 있게 소리한다. 이어 산염불을 부른 다음 마지막으로 서도소리 가운데 가장 해학적이란 평을 듣는 ‘사설난봉가’를 흥겹게 부른다.
“앞집의 처녀가 시집을 가는데 뒷집의 총각은 목매러 간다
앞집의 처녀가 시집을 가는데 뒷집의 총각은 목매러 간다
사람 죽는건 아깝지 않으나 새끼 서발이 또 난봉 나누나
에에헤 허야 허야 더허야 내 사랑아“
역시 서도소리는 애절한 소리만 있는 게 아니다. 사설난봉가는 그 사설을 음미하면서 들을 땐 참으로 기막힌 해학이다. 이 노래가 끝나자 한 청중은 긴급하게 재청을 한다. ‘영변가’를 꼭 듣고 싶다고 했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지만 유지숙 명창은 흔쾌히 받아들인다. 서한범 교수는 역시 마이크 없이 가까이서 들으니 서도소리도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공연이 끝난 뒤 멀리 신림동에서 왔다는 차경숙(62) 씨는 “가까이서 이런 공연을 볼 수 있는 종로구민이 참 부럽다. 우리 관악구도 이런 공연장이 하루빨리 생기고 이런 공연이 상설될 수 있도록 구에 건의해야겠다.”며 “‘서도소리’의 매력을 처음 알았다. 특히 마이크 없이 하는 공연은 정말 가슴에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며 기쁜 듯이 말했다.
종로구에서 처음 시도한 음향시설 없이 소수의 관람객을 대상으로 사랑방에서 한 이 공연은 정말 매력적이면서 큰 성공이었다는 평가를 청중들은 주저 없이 했다. 30여 명 남짓한 청중들, 그들은 양띠 해 을미년을 보내면서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