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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거리

숨 막혔던 두 시간, 이동안류 전통춤 공연 열리다

[공연] 이승희 전통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고풍(古風), 선풍(仙風) 그 고졸(古拙)한 아름다움 우리춤이란다. 말 그대로 기교 대신 예스럽고 소박한 멋의 춤을 춘다고 소책자에서 공언해 놓았다. 그동안 우리춤은 전통의 멋보다는 교태와 기교가 판친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이동안류 춤만은 교태와 기교는 쏙 빼고 정중동의 멋만 살린다는 선언인 것이다.   

     
 
   
▲ 흰 치마저고리에 검정 장삼을 흩날리며 승무를 추는 이승희 선생

어제 1227일 늦은 5시 서울 삼성동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이동안류 전통춤을 올곧게 전승하는 이승희 선생의 전통춤 공연이 열렸다. 운현궁 한덕택 예술감독의 사회로 열린 공연에는 2층까지 자리가 메워질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한덕택 감독은 그동안 봐왔던 다른 류의 춤들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무엇이 다른 지는 관객 여러분이 직접 확인 해봐도 좋을 일이다.”라고 무대를 여는 말을 했다.
 
맨 먼저 시작은 이진성, 최순희, 김문정, 권혜연, 정하나의 기본무다. 춤의 시작 기본무를 넘지 못하면 다른 춤을 출 수 없다는 것으로 아주 담백한 춤을 춘다. 이어서 최순희, 김문정의 살풀이춤이다. 살풀이춤은 여러 유파를 통해 많이 소개된 춤이라 관객은 익숙한 자세로 공연을 지켜본다. 하지만 역시 한덕택 감독의 말대로 뭔가 다르다. 그동안의 살풀이춤은 애절하고 흐느끼는 듯한 느낌을 줬다면 이번 공연은 절제미 그대로다. 내면의 흐느낌을 작은 몸짓으로 조용조용히 드러낸다는 느낌만 줄 뿐이다. 객석은 이미 숨을 죽였다.
 
 
   
▲ 이진성, 최순희, 김문정, 권혜연, 정하나의 기본무
 
     
   
▲ 살풀이춤을 추는 최순희, 김문정
 살풀이춤이 끝나자 찬조출연으로 변진심 가객의 시조 백설이 잦아진 골에가 공연장을 휩싼다. 이번 공연과 잘 어울리는 예스런 맛의 찬조출연이다. 변진심 가객은 아들의 장구, 딸의 대금과 함께 훈훈한 화음을 선보인다.
 
이어서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추었던 이진성, 최순희의 태평무가 무대에 올랐다. 사회자는 이번에도 다름을 실감하란다. 우선 옷부터가 다르다. 다른 유파의 태평무들은 남성은 곤룡포, 여성은 왕비옷을 입고 추는데 반해 격을 낮춘 정3품 당상관의 옷을 입고 춘다. 그뿐만 아니라 화려함이 없는 절제미와 함께 힘찬 역동도 보여준다.
 
 
   
▲ 변진심 가객의 “백설이 잦아진 골에” 시조창
 
   
▲ 이진성, 최순희가 추는 태평무
 
이제 이승희 선생의 승무가 펼쳐질 차례다. ‘얇은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승무>란 시에서 조지훈은 이렇게 노래한다. 위아래 흰 치마저고리에 검정 장삼 자락을 휘두르며 추지만 여기서도 역시 절제미가 드러나고 춤을 추는 듯 멈추고 멈춤듯 춤을 추는 그야말로 고졸한 아름다움은 객석이 한 치도 흐트러짐이 없게 만든다. 시공간에 뿌려지는 장삼자락은 무엇을 내뿜으려 함인가?
 
이어서 성균관 전학 권재흥 선생과 다산문화교육원의 이정득 선생이 출연하여 글 읽는 소리 곧 송서의 세계를 보여준다. 현재 서울시무형문화재로 오른 송서율창은 좀더 세련된 멋을 풍긴다면 이번 공연은 이승희 춤에 맞춰 담백한 글 읽기를 시도한다.
 
 
   
▲ 성균관 전학 권재흥 선생과 다산문화교육원의 이정득 선생의 글 읽는 소리
 
   
▲ 통영, 진주, 평양검무완 사뭇 다른 김문정, 권혜연, 이진주, 문지원의 이동안류 검무
 
다음은 이승희 선생의 제자 김문정, 권혜연, 이진주, 문지원이 검무를 출 차례다. 전승되는 검무는 통영, 진주, 평양검무인데 여기서 공연될 검무는 화성 재인청에서 내려온 것으로 통영, 진주, 평양와 달리 좀더 남성적이고, 마치 실제 전투를 하는 것처럼 박진감이 넘친다.
 
이제 이승희 선생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 흔히 보지 못하는 춤 엇중모리 신칼대신무를 추기 위함이다. 엇중모리 신칼대신무”는 엇박으로 장단 흐름을 타면서 추는 독특한 춤으로 종이로 만든 신칼을 들고 망자의 한을 달래는데, 빠른 장단과는 달리 느린동작을 통해 어루듯 춤을 춘다. 이 역시 이승희 선생은 나아가듯 멈추고 멈춘 듯 나아가는 정중동의 미학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살풀이춤과 엇중모리 신칼대신무를 출 때 가야금 병창계의 명창 정경옥 선생이 구음으로 망자의 한을 달래는 춤을 한껏 돋보이게 한다. 그저 기악 만으로의 반주보다는 구음을 통했을 때 훨씬 살풀이춤과 엇중모리 신칼대신무는 빛이 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이승희 선생의 "엇중모리 신칼대신무"
 
 
   
▲ 이승희 선생인 안무한 창착춤으로 통일을 위한 "아리랑춤", 뒤 오른쪽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전수조교 유지숙 명창이 소리로 더욱 빛을 내준다.
 
마지막 무대는 모든 출연진이 나와 이승희 선생이 안무를 한 창작품 아리랑춤을 춘다. 우리 겨레의 정서 그리고 한이 짙게 배어있는 아리랑을 통해 통일의 염원을 드러낸다. 아리랑춤은 기악 반주와 함께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전수조교 유지숙 명창의 소리로 그 깊이를 더해준다.
 
이번 공연은 피리 명인 서울시 무형문화재 삼현육각 보유자 최경만 선생과 ()민속음악원 유인상 악장,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원완철 수석, 국립창극단 이동훈 예술감독,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윤서경 수석 등 화려한 반주단이 함께 해 이승희 전통춤의 매력이 더욱 빛났다.
 
서울 천호동에서 온 구일석(62) 씨는 그동안 봐왔던 춤과는 많이 다르다. 이 춤을 보니 교태와 기교가 싹 가시고 백자가 유행했던 조선시대를 선비를 그대로 빼닮은 듯 담백과 절제가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춤이 조선시대 때부터 전승이 되었다면 이런 춤사위가 전통이 분명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이 이동안류 춤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또 서울 구산동에서 온 정임숙(47) 씨는 공연 내내 나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빨려 들어갔다. 춤 공연을 보면서 이렇게 꼼짝 못하긴 처음이다. 화려하지도 않은데 무엇이 저렇게 관객을 흡입할 수 있게 하는지 그야말로 마력이다. 우리 문화가 음악만 위대한 줄 알았는데 춤도 그에 못지않다는 느낌이 절절하게 다가왔다.”고 놀라워했다.
 
깊어가는 겨울, 관객들은 한편의 꿈을 꾸고 나온 듯 멍멍한 모습들이었다. 이승희 전통춤으로 관객은 진정한 치유의 시간을 가졌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