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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잔재가 남은 우리 풀꽃 이름, 부끄럽지 않나?

[서평]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 이윤옥, 인물과사상사

   
▲ 《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 이윤옥, 인물과사상사 책 표지
[우리문화신문=성제훈 기자]  3~4년 전,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김영조 소장님이 마련한 저녁자리에서 이윤옥 선생님을 뵌 적이 있습니다. 일본 속의 한국 문화를 찾아 왜곡된 역사를 밝히는 작업을 꾸준히 해 오신 분이라고 소개를 받았습니다. 그 뒤로 이윤옥 선생님이 쓰신, 우리말 속에 숨어 있는 일본말 찌꺼기를 다룬 《사쿠라 훈민정음》, 친일 문학인을 풍자한 시집 《사쿠라 불나방》,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다룬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 등을 읽으면서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다룬 책을 읽고 제가 깊게 빠진 것 같습니다.

그분이 이번에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을 펴냈습니다. 올해가 광복 70주년인데, 아직도 우리 풀꽃에는 일제의 흔적이 남아있다면서 그런 것을 파헤친 책입니다.

일제의 식민 침략은 단순한 영토 침략을 넘어 이 땅에 사는 수많은 사람의 영혼을 짓밟았고 우리 고유의 이름마저도 창씨개명으로 없애버렸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수많은 풀·꽃·나무에도 일본식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제라도 전문용어랍시고 일본 사람들이 붙인 풀과 꽃의 이름을 고집하지 말고 우리 정서에 맞는 이름으로 바꿔나가야 합니다. 풀꽃 이름뿐 아니라 풀꽃을 설명하는 국어사전이나 식물도감의 설명도 바뀌어야 합니다.

글쓴이는 국립국어원, 산림청, 국립생물자원관 같은 기관이 유기적으로 대처해 일제 잔재가 남아 있는 풀꽃 이름을 대대적으로 정리할 것을 촉구합니다. 식물 이름을 모두 바꿀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일제의 흔적이 강하게 남은 것들에 대해서는 유래라도 밝혀주는 것이 광복 70주년을 맞는 바른 자세라는 것이죠. 적극 동감합니다.  

 

   
▲ 오이누노후구리(大犬の陰囊)라는 일본 이름을 번역한 "큰개불알꽃", 작가 이윤옥이 이 책을 쓰게된 계기가 되었다.

책에서 몇 구절 따오겠습니다.

“‘개’가 붙은 이름은 일본 말 이누(犬)에서 유래한 것이며 섬거북꼬리는 제주도산이고, 섬초롱꽃은 울릉도산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일제의 식물 침략은 단순한 영토 침략을 넘어 이 땅에 사는 수많은 사람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우리 고유의 이름마저도 창씨개명으로 없애버렸다. 그런 와중에 우리 땅에 나고 자라던 수많은 풀·꽃·나무도 제 이름을 잃고 일본 이름으로 굳어졌던 것이다.”(6~7)

“일본에서는 식물이름을 한자로 표기하지 않고 가타카나로만 표기하고 있다. 이는 일본 식물학의 아버지 마키노 도미타로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마키노는 식물 이름을 중국 문자인 한자로 표기하는 것에 대해 민족적 자존심을 해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우리는 민족적 자존심도 없이 한자는 물론이고 일본 말로 된 것을 겨우 번역하여 식물 이름을 지었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51)

“‘조센니와후지’는 ‘땅비싸리’보다 ‘조선댑싸리’가 더욱 어울리는 이름일 것이다. 더 좋은 것은 일본인이 붙인 이름을 고집하지 말고 우리 정서에 맞는 이름으로 하나씩 바꿔나가는 것이다. 단순히 풀꽃 이름뿐 아니라 풀꽃을 설명하는 국어사전이나 식물도감의 설명 역시 총상화서니, 육수화서처럼 일본 말 찌꺼기로 설명하기보다 알기 쉬운 우리말로 풀어야 할 것이다.”(51)

 

   
▲ 초대 일본 공사 하나부사의 이름을 따서 "화방초(花房草)"라 불렀던 <금강초롱>-왼쪽, 악명 높은 조선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에게 바쳐진 이름의 <사내초(寺內草)>

“좀개갓냉이에 대해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자화과의 한해살이풀, 줄기는 높이가 10~40센티미터 정도이며 근생엽은 뭉쳐나고 우상복엽이고 경엽은 어긋난다. 4~6월에 노란 꽃이 피고 열매는 장각과이다. 논밭 근처에서 자라는데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라고 설명해 놓았다. 냉이에 관해서라면 세계 최고의 정서를 지닌 겨레의 사전치고는 삭막한 풀이다.

봄나물의 대명사인 냉이의 향긋함을 전하지 못한 것도 그렇지만 자화과, 근생엽, 우상복엽, 경엽, 장각과 같은 용어는 일본 말 찌꺼기를 그대로 답습한 표현이다. 좀개갓냉이란 이름도 그런 풍토에서 붙은 이름이다. 순수한 우리 작명이 아니라 일본 말을 옮긴 것이라 더 볼품없다. (중략)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해온 ‘국민 나물’ 냉이에 대한 풀이가 경직되어 있는 것은 청산되지 못한 일본 말 찌꺼기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광복 7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아름다운 우리 풀꽃 이름에 붙은 일본 말 찌꺼기는 지금껏 대대적인 수술 한 번 없이 여기까지 왔다. 내로라하는 식물학자 가운데는 예전에 부르던 이름을 손톱만큼도 바꾸면 안 된다는 사람이 있으니 개탄스럽다. 표기만 해도 그렇다. 태백오랑캐꽃은 지금 태백제비꽃으로 부르지만 이런 것조차 펄쩍 뒤는 사람이 많다. 식물 관련용어는 아직도 일제강점기를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라 씁쓸하다.“(63~64)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우리 풀꽃 이름을 손볼 때 식물학자만 모여서 이름을 짓지 말고 국어학자와 시인, 어린이들도 함께 참여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꼭 실제 풀꽃을 보고 생김새를 가장 잘 나타내는 이름으로 정했으면 좋겠다. 그동안은 풀꽃의 생김새나 특징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일본 이름을 번역하는 수준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제부터라도 잘못된 이름은 과감히 고치고 꽃 이름뿐만 아리라 풀이도 알기 쉽게 우리말로 고쳤으면 좋겠다. 풀이만 보고도 그 꽃의 생김새나 특징을 알 수 있도록 말이다.”(112~113) 

 

   
▲ 등잔을 가리킨 "등대"란 일본말을 그대로 옮긴 <등대풀>

이런 책을 읽으면 내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짐을 느낍니다. 머리끝에서부터 부글부글 끓고, 열이 나지만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국립생물자원관에서 만든 ‘한반도 고유종 총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한반도 고유 식물은 모두 33목 78과 527종이고, 이 가운데 일본 학자 이름으로 학명이 등록된 식물은 모두 327종으로 무려 62퍼센트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제 와서 학명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우리 풀꽃의 호적이 일본인 이름으로 도배되어 있다는 사실만이라도 알아두어야 한다.”라고 강조하는 글쓴이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