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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삭기?, 일본말을 그대로 들여온 것

[김효곤의 우리말 이야기 5]

[우리문화신문=김효곤 기자]

“동대문에서 종로 방면, 도로 ‘굴삭’ 공사로 밀립니다.”

요즘 라디오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 말입니다. 그런데 ‘굴삭’은 사전에 나오지 않는 말입니다. ‘굴삭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굴착(掘鑿)’, ‘굴착기(掘鑿機)’라고 써야 합니다.

‘掘鑿’을 ‘掘削’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ㄷ’사와 ‘ㅅ’사 등 재벌계열 회사들이 일본에서 굴착기를 수입하면서부터인 것 같습니다. 이들은 기계 몸체에 ‘掘削機’라고 쓴 것을 지우지도 않고 그대로 수입해 팔아먹었거든요. 그때야 우리 것은 어디 명함도 못 내밀고 미제, 일제가 품질을 보증하던 시절이었으니, 돈벌이에 바쁜 그들로서야 굳이 지워야 할 이유가 없었겠지요.

‘삭’이 ‘착’이 된 까닭은 일본에서는 ‘뚫을 착(鑿)’ 자와 ‘깎을 삭(削)’ 자의 발음이 같기 때문입니다. 일본 문자인 가나는 음절문자라서 동음이의어가 많아질 수밖에 없기에 한자를 섞어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무한정 섞어 쓸 수도 없기에 상용한자라는 것을 3000자 가까이 정해 놓고 가능하면 그 범위 안에서 쓰도록 하고 있지요. 그런데 ‘착(鑿)’ 자는 획수가 많고 어려워 상용한자에서 빠져 있기에 그 대신 뜻이 비슷하고 획이 간단하며 상용한자에 포함되어 있는 ‘削’ 자를 쓴 겁니다.

 

   
▲ 굴착기의 "鑿" 자는 일본 상용한자 3,00자에 없는 글자, 일본인들은 못 알아본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한자를 섞어 써야만 문자 생활이 가능한 일본말에는 이렇게 자기네 식대로 획을 줄여 쓰는 약자(略字)가 많습니다. 하긴 한자의 고향이라는 중국에서도 획을 팍팍 줄인 간체자(簡體字)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 웬만큼 한자를 안다는 사람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이지요. 반대로 우리들이 한자를 쓰면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못 알아보는 일도 많고요. 한자를 원래의 정자체(正字體) 그대로 쓰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거든요.

이런 면에서 볼 때 한자를 알아야 한중일 세 나라가 서로 소통이 되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주장은 억지스럽습니다. 무엇보다도 다른 나라에서 자기 편한 대로 고친 것을 우리가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냥 우리 식으로 쓰면 됩니다, 나아가 우리는 굳이 한자로 표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굴착기’면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