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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4・3평화기념관”, 참혹한 사진의 그날

“4・3평화기념관” 전시 돌아보기 1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제주4・3항쟁 68주년이 다가옵니다. 제주4・3항쟁은 최근 제주에서 4・13총선에 출마하는 집권여당 후보가 첫째 공약으로 4・3 문제 해결 및 국가배상 촉구, 특별법 개정 요구를 들고 나올 정도로 제주에선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이에 최우성 기자가 '제주 4・3평화기념관' 전시물을 상세히 찍어와 사흘에 걸쳐 연재합니다. 아마도 이 세 번의 연재를 모두 본다면 제주4・3항쟁이 무엇인지 정리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편집자말)

 

   
▲ '제주 4.3평화기념관' 전경, 역사의 비극을 간직하였지만, 무심코 보면 아름답기만 하다.

 

   
▲ 기념관 정면 입구

 

   
▲ 기념관 앞에 세워진 상징적 망주석. 모든 희생자들을 위하여

 

   
▲ 전시관 들머리. 어두운 터널은 동굴의 재현인 동시에 암울했던 시대를 의미한다.

 

   
▲ 전시관내 설치된 백비를 해설사가 설명해주고 있다. 이 백비는 비석은 비석이되 그 내용을 기록하지 않은 비석이다. 이는 아직도 제주 4.3사건을 봉기, 항쟁, 폭동, 사태, 사건 등으로 관점에 따라 서로 달리 보기 때문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사연을 적지 못하는 까닭이다

 

   
▲ 4.3과 관련된 상황에서 관계 인물들과 현장을 기록한 사진들

 

   
▲ 일제로부터 광복은 되었으나 남과 북에는 미군과 소련군이 들어오고, 또 동시에 남북의 지도자들이 민주주의와 공산주으로 갈리게 되자, 이러다 완전한 광복이 안될 것을 염려하던 김구는 남북의 독자적인 단독정부수립을 반대했고, 이승만은 남한만이라도 단독정부를 수립해야한다고 했다.

 

   
▲ 미군정은 남한지역내 좌익세력을 척결하고자 했다. 마군정은 북에서 내려온 반공주의 청년들을 미군정에 반대하는 지역에 투입했는데 이들은 지역 주민들에게는 갈취와 행패를 부렸다.

 

   
▲ 1947년 3.1절 기념식에 많은 주민들이 참석했는데 이들의 해산과정에서 경찰관이 탄 말의 뒷발에 채인 어린아이가 있었다. 이를 그냥 두고 가는 경찰에 대한 군중들 돌팔매질이 있었고, 군중들의 돌팔매를 폭동으로 인식한 경찰의 군중을 향한 발포로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그러자 주민들의 저항이 시작되었고, 경찰의 검거선풍으로 많은 주민들은 투옥되었다. 이후 1년동안 구속된 사람이 2,500명에 이른다. 이때 유치장은 좁아서 1평 방에 30명이 넘게 수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 시위주민들 폭도로 단정하고 잡아들이자 주민들은 빈약한 무기로나마 무장하고 경찰과 대치하게 되었다. 초기 무장대는 350명 정도였고, 이들이 갖고있는 무기는 일제 총 27정 권총 3정, 수류탄 25발 이었고 나머지는 죽창정도로 토벌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무기였다.

 

   
▲ 주민 무장대가 경찰이 대치하자 미군정은 강력하게 진압하는 작전을 수립하였다.

 

   
▲ 미군정장관은 진압작전을 하기 전에 항복을 유도하도록 했다. 이때 김익렬 제9연대장은 4월 22일 평화협상 전단지를 만들어 살포하였고 당시 무장대 총책 김달삼과 평화협상을 벌였다.

 

   
▲ 제주읍 오라리에 괴청년들이 난입 민가에 불을 질렀다. 김익렬 연대장은 조사 끝에 우익청년단이 저지른 소행임을 밝혀냈지만 미군 방첩대는 이를 묵살하고 '폭도의 소행'으로 몰고 갔다.

 

꽃피는 봄 4월 3일 발생했던 사건이라 하여 4・3사건이라고 알려진 제주의 비극적인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하여 자료를 수집하여 세운 "제주 4・3평화기념관"을 다녀왔다.

일제로부터 광복을 맞이했으나, 이념의 갈등 속에 국민이 의지해야 할 정부는 국민의 원수가 되었고, 주민을 보호해야할 군경은 주민들을 폭도로 몰아 무참히 학살했던 비극의 역사적 사실을 재조명하기 위하여 세운 기념관이다.

언뜻 보기에는 겉모습이 멋지고 아름다운 "제주 4・3평화기념관"이지만, 그 내부에 전시된 것들은 차마 맨눈으로 보기에는 너무도 참혹한 장면들이었다. 오랫동안 그 진실을 말하는 것조차도 금기시 하다가, 1989년부터 진실을 밝히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있었고, 그 결과 무참히 무고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실상도 많이 밝혀졌다.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비극적인 사태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한국현대사의 현장을 보고나니, 따스한 봄날에 너무도 마음이 무겁다.

우리는 언제나 이념의 벽을 넘어서 통일 한국이 될 수 있을 것인지,,,,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현재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문화유산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