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명주는 흔히 비단이라 하는 것으로 누에고치에서 풀어낸 명주실로 짠 무늬가 없는 옷감입니다. 그런데 명주는 뽕나무를 재배하고 누에를 치는 일부터 시작되지요. 누에를 키워 고치를 만드는 일 곧 양잠은 그 기록이 고조선 때부터 나타날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라시대에는 정교한 직물을 당나라에 보내기도 하였을 정도로 명주 제작기술은 대단했고,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는 그 종류가 매우 다양했으며 그 빛깔과 품질이 뛰어났습니다.
1915년 요시나가(吉永彦太郎)에 의하여 발표된 우리나라의 옷감이름에 따르면 20세기 초만해도명주・백명주・색명주・생명주가 있었고, 또 분주ㆍ내주(內紬)ㆍ토주ㆍ영변주ㆍ길군주ㆍ희천주ㆍ태천주ㆍ성천주ㆍ포천주ㆍ이천주ㆍ철원주ㆍ춘천주ㆍ상주주처럼 옷감을 짠 지역 이름으로 된 다양한 명주들이 있었지요.
그렇게 많은 종류가 있을 정도로 다양했지만 조선 후기이후 개량식 직기를 써서 대량으로 짜는 바람에 재래식 명주짜기는 그뒤 급격히 쇠퇴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요즘에는 화려한 견직물에 밀려 명주의 수요가 줄어들어 간신히 그 명맥만을 이어오고 있지요. 그 명주의 옷감 짜기 기술에 대한 전통을 잇기 위하여 1988년 성주 두리실의 명주짜기를 중요무형문화재 제87호로 지정하였으며, 기능보유자는 조옥이(曺玉伊) 할머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