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문화재단에서는 이번 전시를 위해 조선 중기화단의 대가 연담 김명국과 조선 남종화의 대가 현재 심사정의 대표작들과 함께 기이하고 독특한 품행으로 잘 알려진 조선 후기의 호생관 최북의 산수화 및 인물화 그리고 조선말의 대표적 화원화가 오원 장승업의 작품 들을 출품한다.
간송컬렉션의 작품들과 함께 백남준아트센터에서도 28점의 작품이 출품된다. 1950년대 독일 플럭서스 활동기의 자료들로부터 1960년대의 기념비적 퍼포먼스 영상인 <머리를 위한 선>, 1970년대의 대표작인 <TV 부처>와 <TV 첼로> 등이 나온다. 1980년대 이후 시기의 대표적 설치작품인 <비디오 샹들리에 1번>, <코끼리 마차>, <달에 사는 토끼>, <TV 시계>도 놓칠 수 없는 명작들이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좋은 작품의 나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들의 연관성에 깊은 의미를 두어 작품 간에 연결을 시도했다. 예를 들어 장승업의 <기명절지도>와 백남준의 <비디오 샹들리에 1번>은 기명절지도가 아시아문화권에서 통상적으로 ‘길상’의 의미를 담듯이, 서구문명에서의 샹들리에는 ‘부유함’의 의미를 담고 있다. 부유함을 의미하는 샹들리에에 대중의 일상을 보여주는 TV를 배치함으로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복(福)에 대한 시각의 변화를 보여준다.
또한 장승업의 <오동폐월>과 백남준의 <달에 사는 토끼>가 함께 전시된다. 장승업의 작품에는 봉황이 앉는다는 오동나무 밑둥치에서 노란 국화가 피며 개는 달을 향해 짖는다. 백남준의 나무로 조각한 토끼는 TV 화면 속의 달을 응시한다. 달과 동물이라는 아주 흔하지만 특별한 소재가 함께 만난 것이 재미있고 우리들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봉황과 달에 사는 토끼를 통해 달이라는 소재가 주는 상상력의 자극을 함께 생각하게 한다.
또 하나의 예시로 심사정의 대표작 <촉잔도권>과 백남준의 대표작 <코끼리 마차>의 연결을 들 수 있다. <촉잔도권>은 촉(蜀) 지역으로 가는 힘든 여정을 말년에 심사정이 그린 그림으로, 구비구비 험준한 산길과 일렁이는 물길을 건너야만 갈 수 있는 이상적 공간이다. 백남준의 <코끼리 마차>는 인간의 정보와 교류가 고되고 직접적인 물리적 이동으로부터 정보통신처럼 빠르고 간편한 이동으로 발전해온 장구한 인류사의 발달과정을 함축하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사람과 사람의 미래에 대한 작가들의 이상적이면서 낙관적인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번 전시에는 간송미술문화재단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가상현실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VR 미디어를 활용한 작업, <보화각>이 소개된다. ‘보화각(葆華閣)’은 빛나는 보물을 모아둔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1938년 간송 전형필 선생이 설립한 보화각은 간송미술관의 옛 이름이다.
구범석 작가의 <보화각>은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이 보화각이라는 실재하지만 가볼 수 없는 가상의 공간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그림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색다른 경험을 하도록 기획되었다. 이번 작업은 이상향을 향한 여행을 초현실적인 시점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우리민족 미술의 정수를 보화각VR영상을 통해 새롭게 경험하길 바란다.
간송미술문화재단과 백남준아트센터가 협력하고 공동으로 기획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백남준의 작품은 파격적인 형식과 새로움으로 세계 현대미술계에 알려졌지만, 엄연히 한국미술의 하나이며 한국성과 동양정신을 구현하려 했던 작가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간송 전형필 선생은 엄혹한 시기에 우리문화를 지켜낸 역할을 했고, 백남준은 우리문화를 세계 속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 문화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이 두 인물의 만남은 특별한 에너지를 함께 낼 것이라고 판단했다.
셋째, 네 명의 조선시대 화가들과 백남준의 공통점이 분명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 믿음과 이상향으로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해 내고자 하는 공통된 염원이었다.
이 다섯 명의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이상향을 지향했다. 연담 김명국은 불교의 선과 도교의 신선사상으로 이상향을 꿈꾸었다. 현재 심사정은 몽환적인 남종 산수로 이상향을 그렸다. 호생관 최북은 그의 호가 ‘붓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라는 뜻처럼 현실적으로 들리지만 유유자적하고 은일한 선비의 이상향을 사랑했다.
오원 장승업은 도석인물화를 통해 인간의 무병장수 · 부귀영화 · 입신양명과 같은 세속적 가치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현세를 초월한 신선의 삶에 존경의 마음을 담아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백남준은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고 예술과 기술이 조화를 이루고 동서양 문명이 서로 통하여 인류문명 자체가 어우러져 발전되길 희망한 이상주의자였다.
옛 사람들의 이상과 현대 거장의 이상이 겉으로는 달라 보이지만 내용은 같다. 인간에 대한 끝없는 애정과 인류사에 대한 낙관이다. 낙천주의야말로 우리문화가 이미 가지고 있는 핵심적인 가치이다. 정치적 혼돈과 개인적 좌절이 아무리 무겁고 힘들더라도 옛 사람들은 낙천적인 세계관을 잃지 않았다.
백남준 역시 정보통신과 매스미디어, 과학의 엄밀성과 예술의 창조성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보다 살기 좋은 인류의 발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번 전시회는 예술, 곧 문화로 세상을 바꾸고 좀더 나은 삶의 방법을 찾고자 했던 이상주의자들의 만남에 깊은 뜻이 있다. 또한 시대가 겪은 아픔을 문화를 통해 극복해 나가고자 했던 우리 선조들의 염원이 이 시대에도 살아 숨쉬고 있음을 상기하게 된다.
세계의 역사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 우리나라의 기운과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그러나 옛 사람들은 낙천적이었고 이 현대미술의 거장 역시 미래를 밝게 그렸다. 간송미술문화재단과 백남준아트센터는 이 밝은 예술들의 숨결을 음미하면서 세계를 즐겁고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조심스럽게 제시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