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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유배지 제주가 준 큰 선물 추사의 "세한도"와 "추사체"

[우리문화신문= 이나미 기자]

연못에 얼음 얼고 뜨락에 눈 쌓일 무렵

모든 화초가 말라도 너는 선화(仙花)처럼

향기를 발산하여 옥반의 정결을 펼치고

금옥(金屋)의 아리따움을 간직한다.

꽃망울 노랗게 터지고

조밀한 잎 파릇이 피어나면

고운 바탕은 황금이 어리네.




이는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읊은 수선화 시로 추사는 유달리 수선화를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추사 기념관 주위에는 수선화를 많이 심어놓았다. 어제(15일) 찾은 추사 기념관에는 겨울바람이 차고 진눈깨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추사의 마음을 아는지 주변에 심어 놓은 수선화꽃이 몇 송인가 활짝 피어 기자를 반긴다.


“대정으로 가는 길의 절반은 순전히 돌길이어서 사람과 말이 발을 붙이기 어려웠고 절반을 지난 뒤부터는 길이 약간 평탄하였네. 간혹 모란꽃처럼 빨간 단풍 숲도 있었네. 이것은 육지의 단풍잎과는 달리 매우 사랑스러웠으나 정해진 일정에 황급한 처지였으니 무슨 아취가 있었겠는가?” 이는 유배지인 제주도 대정까지 가는 쓸쓸한 모습을 추사가 아우에게 쓴 편지의 일부다.


추사 유배지인 제주특별시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로 44번지에 세워놓은 <제주추사관>을 지금은 잘 닦아놓은 도로를 따라 승용차로 편하게 갈 수 있지만 추사가 유배되던 그 때야말로 험한 돌밭 길이었다니 그렇잖아도 무거운 발걸음이 더 무거웠을 것이다.




<세한도(歲寒圖)> 그림으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는 시, 금석학, 고증학, 경학, 불교학, 서예, 회화 등에서 최고봉에 다다른 인물로 조선은 물론이고 중국에까지 알려진 국제적인 석학이다. 추사는 할아버지 김한신(金漢藎, 1720~1758)이 영조임금의 따님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임금의 부마가 되는 등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나 초기에는 남부러울 것이 없이 자랐다. 그러나 19세기 세도정치의 틈바구니에서 그의 가문은 큰 화를 입게 된다.


1830년 아버지 김노경이 고금도에 유배되더니 10년 뒤인 1840년에는 추사 자신이 제주도 유배길에 오르게 된다. 제주에서 8년 3개월을 보내는 동안 아내와의 사별을 당하는 등 괴로운 시간을 보냈으며 제주 유배길이 풀린 뒤, 3년 만에 예송논쟁으로 함경도 북청으로 다시 유배길을 떠나는 등 잇따른 정치적 소용돌이를 겪는 참담함을 겪는다. 그때의 참담함을 추사는 절친한 벗 권돈인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조상에게 욕을 미치게 하는 것이 가장 추한 것이며, 몸에 형구가 채워지고 매를 맞는 것이 다음인데 나는 이 두 가지를 겪었네. 천하고금에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는가?”


하지만 추사의 젊은 날은 비교적 순탄한 벼슬길이 이어졌다. 24살(1809)에 생원시험과 34살(1819)에 문과에 급제한 뒤 규장각 대교, 의정부 검상, 예조참의를 거쳐 54살(1839)에는 벼슬이 형조참판에 이르렀다. 그러나 형조참판에 이르던 54살 되던 해에 제주도로 유배의 길을 떠나게 되니 벼슬도 때로는 화(禍)의 근원이요, 그 화는 당시 세도정치 사회에서 지식인들이 겪어야할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추사는 제주 유배지에서의 8년여 동안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으며 편지와 시문 등을 남겼다. 특히 그의 유명한 ‘추사체’와 <세한도>는 유배지 제주가 준 큰 선물이었다. <세한도>는 서화일치(書畵一致)를 추구한 추사 김정희의 높은 정신세계를 반영하고 있는 우리나라 문인화의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명작이다.




추사는 세한도 발문에 “날이 차가워 다른 나무들이 시든 뒤에야 비로소 소나무가 여전히 푸르다는 사실을 알게된다”며 유배 중에 변함없이 스승을 생각하고 살펴준 속 깊은 제자 이상적(1804~1865)의 소나무 같은 의리와 절개를 높이 기렸다. 그림 속에 ‘장무상망(長毋相忘)’이라고 새긴 인장은 ‘오래도록 서로 잊지말자’는 뜻을 담고 있다.


제주추사관은 조선후기 대학자이자 예술가인 추사 선생의 삶과 학문, 예술세계를 기리기 위해 지난 2010년 5월 세워졌다. 이곳에는 추사기념홀을 비롯하여 3개의 전시실과 교육실, 수장고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추사 현판글씨, 편지글씨 등 많은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기자가 찾은 이날은 진눈깨비가 내리는 등 춥고 궂은 날씨였음에도 가족 단위의 많은 관람객들이 찾아와 추사 선생의 삶을 기리고 있었다. 추사관 옆에는 추사 선생이 유배시에 살았던 초가집도 복원되어 있어 당시 추사 선생의 유배지에서의 삶을 엿보게 한다.


*제주추사관: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로 44

문의:064-710-6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