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대사 찬유는 고려 초에 국사(國師)의 예우를 받으며 활약한 승려로 고려 광종대의 불교 교단의 정비와 사상의 통일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했던 법안종의 성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달사와 고려 왕실의 관계는 원종대사 사후에도 이어져 광종이 특별히 명을 내려 도봉원ㆍ희양원과 함께 고달사를 삼부동선원(三不動禪院)으로 삼고 977년(고려 경종 2)에 원종대사탑을 세우는 등 고달사는 고려 왕실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았고 이 시기에 크게 사세를 떨쳤다.
조선후기 이후 고달사는 폐사됐지만 원종대사탑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우람한 형상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1915년 봄에 몸돌이 뒤로 넘어가 여덟 조각으로 깨져 그동안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왔으며 1963년 1월 21일에 몸돌을 뺀 귀부와 이수만이 국가지정문화재(보물6호)로 지정됐다.
여주시는 2010년부터 원종대사탑비 복원사업을 추진해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고달사터 현장에는 몸돌을 복제해 탑비를 복원하고 원 몸돌은 여주박물관 실내에 전시하는 조건의 승인을 받았다.
이에 2014년 8월 몸돌 복제 및 탑비 복원공사 준공으로, 높이 508cm의 웅장하고 화려한 고려 불교미술의 원형을 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지난 7월 14일 여주박물관 신관의 문을 열고 원 몸돌을 전시하게 됐다.
높이 291㎝, 너비 162㎝, 두께 31㎝의 거대한 비문에는 원종대사의 탄생과 출가, 당나라 유학과정, 귀국 뒤 국사로 책봉되어 입적한 생애 같은 고려 초 불교계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 새겨져 있다.
여주박물관은 100년 만에 여주품으로 돌아온 원종대사탑비 몸돌에 대한 보물 지정을 문화재청에 건의했고 문화재청은 2016년 10월 원종대사탑비의 몸돌에 대한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6호 추가 지정 변경을 예고, 12월 15일 자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됐다.
여주박물관 관계자는 "원종대사탑비 몸돌은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주요 금석문 자료로써,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화재"라고 말했다. 이어 "100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 빛을 보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추가 지정되기까지 적극 협조해 준 문화재청,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