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전수희 기자] 성곽의 무너진 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더러는 민가의 담장이 되기도 하고 더러는 텃밭의 경계석이 되기도 한다. 또 더러는 흉물처럼 버려진 빈집 뜰 안에 저 혼자 나뒹굴기도 한다. 강화 교동읍성의 성곽용 돌들은 정말 보기에도 딱할 만큼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다.
순천 낙안읍성이나 서산 해미읍성의 단정한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3호로 지정된 강화 교동도에 축조된 교동읍성은 1629년(인조 7)에 쌓은 것으로 성 쌓은 목적은 예로부터 서해안의 방어를 위한 것이었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이 성 안에 삼도수군통어영(三道水軍統禦營)의 본진이 주둔하여 왔으며 세 곳에 문루를 갖춘 성문이 있었는데 동문에는 통삼루(統三樓), 북문에는 공북루(拱北樓), 남문에는 유량루(庾亮樓)란 문루가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헐린 상태다.
1753년(영조 29)에는 당시의 통어사 백동원이 성곽과 담장(여장,女墻)을 고쳐 쌓았고, 1884년(고종 21)에는 통어사 이교복이 남문을 중건하고 또한 문루와 성벽을 수리하였으며 1890년(고종 27)에도 동문과 북문을 고쳐 세웠지만 지금은 홍예(虹霓,무지개다리) 부분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다.
무너져 내린 성곽을 돌아보면서 더 훼손되기 전에 흩어진 돌들을 추슬러 복원을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강화교동읍성>
인천화역시 강화군 교동면 읍내리 5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