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6.12m의 규모에 모두 35매의 부재로 구성된 미탄사터 삼층석탑은 1980년 이전까지는 기단부와 탑신부(塔身部, 몸돌)의 일부 부재가 없어진 채 방치되어 있다가 1980년에 남은 부재들을 활용해 복원됐다. 없어진 부재는 새 부재를 다듬어 조립하였다.
* 탑신부(塔身部, 몸돌): 몸돌과 옥개석을 차례로 얹어서 각 층을 이루는 부분
깨지고 없어진 부재는 새 재료로 보강ㆍ보충하여 구 재료와의 이질감은 있지만, 최초로 신라석탑 기초부의 형식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조사를 실시한 석탑이라는 점과 그 형태가 정연하고 적절한 비례감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ㆍ학술적 가치가 크다.
특히, 일반적인 석탑의 판축(板築)기법과 달리 잡석(雜石)과 진흙을 다져 불을 지피는 방식으로 한 단이 완성될 때마다 굳히면서 쌓아나가는 기초부의 판축 축조방식을 사용한 점이나 기단부 적심(積心) 내에서 지진구(地鎭具)가 출토된 점 등 특이하고 학술적인 의미가 있어 한국석탑에 관한 연구에 실증적 자료로서 그 가치가 더욱 크다.
* 잡석(雜石): 건축에 쓰이는 크고 작은 돌
* 적심(積心): 초석 아래 돌로 쌓은 기초 부분
* 지진구(地鎭具): 국가의 중요한 건물 등을 지을 때 땅속의 신에게 빌기 위해 묻는 물건이나 제기(祭器)
미탄사(味呑寺)는 황룡사 남쪽에 있다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어 고려 후기까지 유지된 것으로 추정되며, 문이 있던 터도 2차례 이상 중건된 것으로 확인된다. 미탄사터 삼층석탑은 남북국시대(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양식이 변화하는 과도기적 요소를 지닌 석탑이다. 석탑을 쌓은 것으로 짐작되는 9세기 혹은 10세기 초에는 앞 시대보다 석탑의 크기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흐름과 달리 드물게 규모가 큰 편이라 그 가치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