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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부르는 처용가

[연변조선족문학창 / 석화시 감상과 해설 3]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아침에 부르는 처용가




        아침 일어나 보니

       머리카락 서너 오리 베개 위에 떨어져 있다

       이젠 내 두피와 영영 작별한 저 것들을

       지금도 내 것이라고 우길 수 있을까

       지난겨울 둘러보았던 충남 부여의

       고란사와 낙화암과 백마강이 떠오르고

       삼천궁녀 꽃 같은 치맛자락이 베개 위에 얼른거린다

       백제는 이미 망해 간 곳이 없고

       그를 이긴 신라도 사라졌으니

      고구려의 높고 낮은 무덤들조차

      북국의 차디찬 적설에 묻혀있을 뿐이다

      어제까지 내 머리에 붙어 있던 저것들

      지난 밤 어수선하던 꿈의 조각들처럼

      떨어져가고 흩어져가고 지워져가고

      그리고 이제는 모두 잊혀 갈 것인가

      “원래는 내 해인데

      앗아가니 어찌 하리요."

      체조하는 달밤도 아닌데

     「처용가한 가락이 저절로 흥얼거려 진다.





해설

 

석화의 이 시는 처용가를 재치 있게 패러디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처용가(處容歌)”는 일연(一然)이 편찬한 삼국유사(三國遺事)중의 처용낭망해사조(處容郞望海寺條)”에 실려 있다. 처용은 헌강왕(憲康王)의 아들이었는데, 왕은 처용에게 미녀를 아내로 주고 그의 마음을 잡아두려고 급간(級干)이라는 벼슬을 주었다.

 

그런데 역신(疫神)이 처용 처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밤에 처용의 집에 가서 몰래 같이 잤다. 처용이 밖에서 돌아와 잠자리를 보니 두 사람이 있으므로, 이에 처용가를 부르며 춤을 추자, 역신이 모습을 나타내고 처용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의 노하지 않음에 감복하였으므로, 이후로는 처용의 얼굴그림만 보아도 그 문에 들어서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물러섰다.

 

연변연작시의 총적 주제와의 내적 연관성을 염두에 두고 시 전체를 차분히 읽어나가면 시인 자신의 무상한 인생에 대한 달관의 태도와 함께 많은 것을 잃고 있는 조선족공동체의 현실적 위기와 시인의 우환의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큰 잘못은 없다 하겠다.

 

백제, 신라는 더 말할 것 없고 고구려의 높고 낮은 무덤들조차 북국의 차디찬 적설에 묻혀있다고 했다. 또 어디 그뿐인가. “어제까지 내 머리에 붙어 있던 저 것들 / 지난 밤 어수선하던 꿈의 조각들처럼 / 떨어져가고 흩어져가고 지워져가고 / 그리고 이제는 모두 잊혀져 갈 것인가라고 개탄을 했으니 시인의 머리카락 서너 오리는 하나의 보조관념으로서 그것은 우리 겨레의 역사요, 영광이며 우리 겨레의 피붙이요, 가장 소중한 민족적 정체성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소실되었고 우리 기억에서조차도 지워지고 있다고 했다. 시인은 이러한 현실 앞에서 오히려 해학과 익살을 부려 체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분명 우리 모두에게 깊은 사색을 던져주고 있다. (김호웅, “다문화사회담론과 우리의 삶의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