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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이응노, 유럽을 제압하는 기백을 표현하고 싶었다

제주도립미술관, '한국근현대미술걸작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제주도립미술관을 찾은 22일(일) 낮에는 된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한줄기 소나기가 지나가 다소 더위를 식혀주었다. 더운 날에는 냉방시설이 잘된 미술관 나들이가 시원하기도 하지만 김환기, 장욱진, 천경자, 이상범, 박수근, 이응노, 변관식 같은 쟁쟁한 화백들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어 전시장에는 제법 많은 이들이 그림을 감상하고 있었다.

 

제주도립미술관에서는 지난 7월 18일부터 10월 3일까지 ‘한국근현대미술걸작선- 100년의 여행 가나아트 컬렉션’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들은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이 평생을 모은 소장품 가운데 박수근, 김환기 등 유명 작가 52명의 작품을 선보이는 매우 뜻있는 전시회다.

 

 

“나는 아직 우리 항아리의 결점을 보지 못했다. 둥글다해서 다 같지가 않다. 모두가 흰빛깔이다. 그 흰빛깔이 모두 다르다. 단순한 원형이, 단순한 순백이 그렇게 복잡하고 그렇게 미묘하고 그렇게 불가사의한 미를 발산할 수 없다. 고요하기만 한 우리 항아리엔 움직임이 있고 속력이 있다. 싸늘한 사기지만 그 살결에는 따사로운 온도가 있다”

 

이는 김환기 화백의 말로 그는 작품 ‘산월’ 속에 오롯이 그 마음을 쏟아 부었다. 푸른 바탕에 둥그런 달항아리가 춤추고 있는 듯한 그림 ‘산월’ 앞에서 오랫동안 관람객들이 발걸음을 멈춘 까닭은 작가의 마음을 왜곡 없이 읽어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특히 한국의 민족적인 추상화를 개척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나는 동양화에서 선, 한자나 한글에서의 선, 움직임에서 출발하여 공간 구성과의 조화로써 화폭을 발전시켰지요. 한국의 민족성은 특이합니다. 즉 소박, 깨끗, 고상하면서도 세련된 율동과 기백, 이 같은 나의 민족관에서 특히 유럽을 제압하는 기백을 표현하는 것이 나의 작업입니다.”

 

이 말은 이응노 화백의 고백이다. “유럽을 제압하는 기백의 표현”이라는 말이 가슴에 꽂힌다. 그래서일까? 전시장 가운데에 유달리 이응노 화백의 작품이 많다. 한글을 주제로 한 ‘문자추상’ 작품들이야말로 이 화백이 말하는 ‘유럽을 제압하는 기백’을 잘 나타낸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화가 가운데 가나아트에 의해 선택된 작가들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일반화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한국적인 것 곧 정체성에 대한 추구’가 그것인데 이번에 전시된 52명의 작가 가운데 오윤 씨를 뺀 나머지 작가는 모두 해방 전 세대이다. 이들은 자신이 자신인 채로 사는 것에 대한 권리를 박탈당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빼앗긴 이들의 작품 속에는 그것이 추상이든 구상이든 공통된 화두를 갖고 있다. 이들이 살던 시대에 이들에게 주어진 현실 속에서 우리의 미술은 무엇이어야하며 우리 고유의 정체성은 어떻게 획득할 것이냐는 질문은 매우 중요한 화두였다.

 

한국의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들은 자기 미술의 당위성을 찾으려고 고민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예술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출구도 입구도 없고 정해진 길도 없었던 미로 같은 미술 세계에서 하나 밖에 없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 끝없는 질문을 화폭에 담아낸 것이다.

 

 

 

 

 

“그래 나는 오직 꿈만 파먹고 살아왔다. 지나온 길이 평탄하지 않아 눈이나 비, 꽃과 친할 수밖에 없었고 자연에서 얻어지는 고독한 행복감에 젖어 오직 작업하는 일만이 편한 길이었다”  -천경자-

 

화폭 가득히 총천연색 꽃 그림 “아열대2”가 걸린 벽 한켠에는 천경자 화백의 독백이 그림과 나란히 걸려있다.

 

“시대성에의 어긋남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우리시대에 대한 깊은 책임감이나 고통스러운 증언 없이 예술을 조작하는 행동이다. 좌절의 응어리를 삼켜야하는 진통의 방향에서 탈출하여 전통의 옷을, 외부세계의 옷을 여기저기서 빌어 입고 우리들 내부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고 행진하는 인간집단의 모습을 본다” -김영주-

 

‘외부세계의 옷을 여기저기서 빌어 입고 우리들 내부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고 행진하는 모습’이라는 말에 문득 부끄러움이 일었다.

 

서울 홍제동에서 중학생 아들과 함께 전시장을 찾았다는 조현묵 (45살) 씨는 "휴가차 가족들과 제주에 왔습니다. 평소 박수근 화백의 그림을 좋아하여 발걸음을 했습니다. 권진규 작가의 얼굴 조각과, 오윤 작가의 망나나 칼춤 모습의 작품이 특히 인생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걸레스님 중광의 '괜히 왔다 간다' 라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고 소감을 말했다.

 

 

 

 

일본의 민족말살 통치 아래서 물밀 듯 들어온 서구의 신식문물을 접하면서 조선의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느꼈을 그 무엇을 ‘한국근현대미술걸작선- 100년의 여행 가나아트 컬렉션’ 전에서 찾아낼 수 있다면 결코 미술관을 찾은 발걸음이 무더위를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방문’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일부러 걸음하기는 어렵겠지만 기왕에 제주를 찾았다면 꼭 한번 찾아보길 권한다.

 

<전시작가>곽인식 구본웅 권옥연 권영우 김경 김영주 김환기 김훈 김흥수 나혜석 남관 도상봉 박고석 박상옥 박수근 박영선 변종하 손웅성 오윤 오지호 유영국 윤중식 이대원 이만익 이봉상 이성자 이수억 이인성 임직순 장욱진 정규 전성우 최영림 하인두 한묵 함대정 천경자 이상범 변관식 김은호 김기창 박래현 장우성 박생광 이응노 박노수 황창배 권진규 문신 백남준 중광 송영수

 

<전시안내>

전시이름:  한국근현대미술걸작선 -100년의 여행 가나아트 컬렉션-

전시기간: 2018.7.18.~10.3

제주도립미술관: 제주시 1100로 2894-78

문의: 064-710-4300

관람료:; 일반 5000원

아침9시-밤8시, 매주 월요일 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