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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얼어붙은 압록강, 기약없는 발걸음

경북인의 만주망명 110주년 기획 보도 <4>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과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관장 정진영)은 만주망명 110돌을 맞이하여 모두 12회에 걸친 기획 보도를 진행하고 있다. 제4편은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만주로 향한 이들이 망명 과정에서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되짚어보는 시간이다.

 

백하 김대락 선생과 석주 이상룡 선생 일행은 만주로 망명하기 전에 집안 청년들의 치밀한 사전조사와 가산 처분 등 만반의 준비를 한 뒤 추풍령에서 서울로 가는 경부선 열차와 서울에서 의주로 가는 경의선 열차를 타고 만주로 향했다. 이들이 만주로 가는 길은 전혀 순탄치 않았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일부 구간은 도보로 이동해야했고, 중국 지역에 퍼져있는 조선인들에게 대한 흉흉한 소문에 항상 불안을 느껴야만 했다. 특히 신의주에서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는 일은 목숨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혹독한 상황이었고, 풍토가 다른 지역에서 적응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백하 선생이 저술한 《서정록》에는 의주 백마역에 내려 신의주까지 걸어가는 역경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신의주에서 압록강에 도착하여 근처 객점에서 손자사위 황병일(黃炳日) 일행을 만나는데, 방금령(防禁令)에 걸려 국경을 넘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백하 선생은 음력 1월 8일에 압록강을 건넜다. 아들 김형식이 하루 전날 압록강을 건넌 뒤 상황을 보내왔고, 큰 장애물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조심스럽게 얼음 위를 걸어갔다. 백하 선생은 이날의 감회를 시로 남겼다.

 

압록강(鴨綠江)

 

며느리와 손자 데리고 대양(大洋)에 이르니

누른 모래 비낀 바람, 흰 구름만 아득하네

푸른 안개 너머 동서쪽 포구가 서로 닿아있고

푸른 강물은 중국과 조선을 나누어 흐르네

평탄한 얼음길은 용의 등처럼 광활하고

태평한 마차길엔 말발굽만 어기차다

고향 산천 떠나는 발걸음에 해마저 더디 넘어가니

일흔 살 나그네의 회포에 눈물만 주룩주룩 흐르네

 

 

석주 이상룡 선생은 음력 1월 27일에 압록강을 건넌다. 그가 저술한 《서사록》에는 “식사를 하고 나서 아우 덕초(德初, 이봉희-李鳳羲의 자-字)를 남겨두고 수레를 타고 압록강을 건넜다. 고국땅을 뒤돌아보니 돌아올 기약이 아득하다. 목석이 아닌 이상 어찌 감정이 없겠는가?”라고 기록하여, 당시 석주 선생의 심경을 잘 알려준다.

 

석주 선생은 퇴계 학맥을 계승한 유학자 출신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정 순국의 길을 걸었던 보수유림과 달리 만주망명을 통해 실력양성과 무장투쟁으로 독립운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주춧돌을 다져나갔던 그의 사상 밑바탕에는 ‘혁신유림’으로서 강한 의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동안 누리던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꽁꽁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고난의 길로 들어섰던 경북 독립운동가들의 애환에서 나라 잃은 설움과 고단하게 전개된 독립투쟁의 숭고한 정신을 짐작할 수 있다. 또 이들이 걸어온 나라와 민족을 위한 험난한 길 위에서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하고 옳은 것인지를 일깨워주는 중요한 열쇠말을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