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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민족정신이 담긴 노래, 명맥만 유지 안타깝다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23]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가사 음악의 노랫말과 지은이, 실려있는 악보를 소개하고, 1920년대 이후 하규일과 임기준이 아악부 악생들에게 전해 주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들에게 배운 이병성, 이주환, 김기수, 홍원기 등은 국립국악원이나 국악학교 학생들을 지도해 오면서 전승이 이루어졌다는 이야기, 가사 음악만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기회는 그리 흔치 않은 가운데, 1981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정농악회 회원들이 12가사 가운데 6곡을 공개발표 하였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번 주에는 가사음악의 연창형태를 비롯하여 장단, 반주형태, 확산의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한다.

 

가사는 부르는 사람이 직접 장단을 치면서 혼자 부르거나, 또는 반주자의 장단에 맞추어 부르는 형태이다. 가락이 복잡하고 창법상의 특성으로 인해 여럿이 함께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사의 장단 형태는 6박형 느린 도드리장단이 대부분이다. 예외로 <상사별곡>이나 <양양가>, <처사가> 등은 5박형 장단으로 부르며 <매화타령>은 빠른 6박형, <권주가>는 일정한 장단형 없이 노래에 따라 조절함으로 가사창의 장단형은 노래에 따라 다르다는 점을 알게 한다.

 

 

또한 반주악기들은 시조의 경우처럼 장고, 대금, 피리, 단소, 해금 가운데 하나가 독자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보통이고, 장고와 대금, 장고와 피리, 장고와 단소 등으로 참여한다. 위의 악기들이 모두 참여한다면 이는 매우 호화로운 반주 편성이 된다. 가사창의 반주 악보는 수성(隨聲)가락이다. 수성가락이란 정해진 가락 없이 노래선율을 따라서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형태를 말한다.

 

12가사는 가곡이나 시조와 함께 정가에 속하는 노래고, 현재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는 노래다. 정경태와 이양교가 예능보유자로 활동하다가 세상을 뜬 뒤 지금은 이준아가 이 종목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가곡이나 판소리, 범패, 경서도 민요 등, 다른 분야의 성악에 비한다면 그 전승이 활발하지 못한 비인기 종목으로 남아있다. 그 배경으로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이 분야의 전문가들 수가 적다는 점과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가사창을 특출나게 잘 부르는 어린 학생이나 젊은이가 있다고 해도, 그 전공을 살려 대학을 진학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 분야의 전공자만을 선발하지 않기 때문에 가곡이나 혹은 민요와 같은 분야를 겸해야 진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을 진학하기도 어렵고, 가사창으로 전문 단체나 악단에 입단하기는 더더욱 좁고 좁은 길이다.

 

가사는 가곡의 아류(亞流)이기 때문에 가곡을 제쳐두고 가사만을 잘 불러 전공을 살리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되어 오랜 전통을 지닌 가사음악의 진정한 확산과 문화재적인 값어치가 국민으로부터 인정받기를 기대한다.

 

가사창은 아름다운 선율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그 노랫말의 뜻이나 의미,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한문가사가 많이 들어있기 때문에 호감이나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 관련하여 사설이 길고, 노래의 속도가 너무 느리며 반복이 심하다는 점이나 창법에서 속청(가성-假聲 창법)을 많이 쓰고, 2인 이상이 함께 부르기가 어려운 점 등도 확산의 제한을 받는 문제로 지적된다.

 

이상의 문제들로 인해 가사음악의 발표회를 공식적으로 갖는 단체나 개인은 만나기 어려웠다. 비인기 예능종목으로써 보다 활발한 전승활동이 이루어 질수 있도록 가사음악의 발표기회나 가사창 경연대회, 그리고 대학 국악과의 정가전공 확대 방안 등, 국악관련 기관이나 단체, 그리고 문화재청은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 주기 바라는 마음이다.

 

 

 

지난주 잠시 소개한 바와 같이 1981년 봄,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에서는 정농(正農)악회 회원들의 가사 음악 발표회가 준비되어 국악계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그들은 그 발표의 취지를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지구상의 모든 민족이 저마다 민족 고유의 말과 글을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우리 겨레는 고유의 말과 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자랑 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뜻이 담긴 말과 글은 수많은 시가(詩歌)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어서 더욱 소중하고 값진 자랑이며 조상들은 이들을 노래할 줄 아는 멋과 여유를 가졌습니다. 그들 노래 중의 하나가 바로 가사(歌詞)입니다.

 

그런데 오랜 역사를 통하여 우리 겨레와 함께 불러왔으며 민족정신의 정수가 담긴 이러한 노래가 근대에 이르러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음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러한 현실 타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지난해의 <가곡 연주회>에 이어 이번에 가사 발표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민족의 얼이 담긴 귀중한 예술노래가 주인을 찾아 우리 사회에서 널리 불리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문화민족의 국민적 각성과 긍지가 날로 높아가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보람찬 나날들이 있기를 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