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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외국인과 함께 보는 고품격 한국 전통공예 도록

격이 다른 한국전통공예 명작을 만나다
《한국전통공예(Traditional Korean Crafts)》, 수류산방 편집부, 수류산방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오랜만에 외국인에게 선물하기 좋은 격조 높은 한국문화 책을 만났다. 전통공예를 다룬 좋은 책을 여럿 출판한 ‘수류산방’에서 ‘18세기 조선의 일상과 격조’를 부제로 펴낸 《한국전통공예(Traditional Korean Crafts)》 책이다.

 

물론 한국 전통공예를 다룬 외국어책은 많지만, 이처럼 귀빈에게 선물하기 좋은 ‘명품’ 느낌의 책은 흔치 않다. 일단, 책이 아름답다. 격조 높은 도록을 연상케 하는 붉은 표지와 넝쿨무늬를 닮은 특색있는 띠지는 첫눈에도 이 책이 품은 고아한 아름다움을 잘 표현해낸다.

 

 

이렇듯 책인 듯 도록인 듯, 묘한 느낌을 자랑하는 이 책의 정체는 사실 도록이다. 2007년 7월 19일부터 8월 27일까지 한국공예문화진흥원과 주 국제연합 대한민국대표부의 공동 주관 아래 뉴욕 UN본부에서 열린 전시 <Traditional Korean Crafts>에 출품된 공예품을 담았다.

 

출품작들은 각 분야에서 수십 년간 헌신한 한국 최고의 장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들로서, 중요무형문화재, 지방 무형문화재, 명장, 전수자 등 작가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최고의 장인들이 으뜸 기량을 발휘해 만든 최고의 작품들이니, 명작이 으레 그렇듯 출품작 하나하나가 시간을 초월한 ‘초월적’ 미감을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펴낸 지 10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책 또한 전혀 촌스럽지 않고, 서체를 비롯한 디자인도 갓 출판된 듯한 세련된 느낌을 준다. 책장을 펼치면 오른편에는 한눈에도 공예품 고유의 선과 색, 결을 살리기 위해 정성을 쏟았음이 보이는 고화질 작품사진이 실려있고, 왼편에는 이 작품에 대한 한국어ㆍ영어ㆍ일본어ㆍ스페인어 설명과 작가에 대한 설명이 특유의 멋진 디자인과 함께 소개된다.

 

책은 모두 다섯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예품이 쓰였던 맥락을 ‘선비의 고고한 풍류가 숨 쉬는 공간, 사랑방’, ‘일상의 아름다움이 가득한 여인들의 공간, 안방’, ‘생활의 지혜가 담뿍 배어있는 곳, 부엌’, ‘장인 정신을 엿보다, 일과 놀이’, ‘믿음으로 마음을 치유하다, 종교와 의례’의 다섯 가지로 분류해 한국인의 총체적인 생활 양식을 보여준다. 수록된 모든 작품이 주옥같지만, 그중에서도 일반인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공예품 다섯 개를 장별로 추려보았다.

 

<선비의 고고한 풍류가 숨 쉬는 공간, 사랑방>

‧ ‘윤회매’ (p.78~79)

‧ 다음 작 / 중요무형문화재 범패 기능 보유자인 지광 스님으로부터 범패를 전수받는 한편 윤회매 제작도 하고 있다.

‧ 밀랍으로 만든 인조 매화다. 조선 후기에 이덕무(1741~1793)가 초봄에 짧게 피었다가 사라지는 매화를 한해 내내 감상하고자 창안했다고 전해진다. 추위 속에 고고한 향을 품기는 매화를 선비들은 정절의 상징으로 매우 사랑했다. 여기에 ‘윤회매’라는 불교적 이름이 붙은 이유는, 벌이 꽃가루를 채집해 꿀을 만들고 꿀이 밀랍이 되고 밀랍이 다시 꽃이 되는 것이 윤회설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일상의 아름다움이 가득한 여인들의 공간, 안방>

‧ ‘쓰임에 따른 빗들’ (p.106~107)

‧ 이상근 작 / 1957년생. 얼레빗 기능 전승자. 1999년 전국 공예품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6대째 가업을 이어 온 장인으로 현재 7대 계승자인 차남에게 기능을 전승 중이다.

‧ 반월소는 빗살이 굵고 성긴 빗으로, 그 생김새가 반달을 닮았다 하여 이름이 붙었다. 모든 계층의 여성들이 즐겨 쓰던, 대표적인 빗이다. 그 밖에도 남성들이 상투를 틀 때 쓰던 상투빗, 한쪽은 빗살이 성기고 다른 한쪽은 빽빽한 음양소, 옆머리를 곱게 정리하는 면빗, 가르마를 탈 때 쓰는 가르마빗 등 쓰임새와 생김새에 따라 전통 빗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생활의 지혜가 담뿍 배어있는 곳, 부엌>

‧ ‘소금으로 얻은 깊고 푸른 빛’(p.132~133)

‧ 배요섭 작 / 1926년생. 서울 무형문화재 옹기장 기능 보유자. 3대째 가업을 전수받은 장인으로, 특히 푸레독 기법의 재현과 보급에 힘을 기울여 왔다.

‧ 푸레독은 유약을 바르지 않고 대신 천일염을 뿌려 장작 가마에서 구워 만든 옹기다. 그 기원이 가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역사가 깊으며, 푸르스름한 빛깔이 난다고 하여 ‘푸레독’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명맥이 끊어졌다가 최근 재현에 성공한 푸레독은 환기성과 보존성이 특히 좋아 궁중에서 사용하던 옹기로도 전해진다.

 

 

 

<장인 정신을 엿보다, 일과 놀이>

‧ ‘끊어질 듯 애절한 소리’(p.182-183)

‧ 고흥곤 작 / 1951년생. 중요무형문화재 악기장 기능 보유자. 현악기 제작에 특히 뛰어나다. 전통악기의 재현 및 후계자 양성에 힘쓰고 있다.

‧ 해금은 대나무로 만든 울림통에 두 가닥의 줄을 매고 말총으로 만든 활을 비벼서 소리를 내는 현악기다. 어떠한 형태의 합주에서도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가락 악기로, 다양한 음악에 쓰여 왔다. 작가는 5년 이상 된 왕대나무 뿌리와 5년 이상 삭힌 오동나무 등의 자료를 이용해 악기를 제작했으며, 순금 가루로 당초 무늬를 그려 넣어 품위를 더했다.

 

 

 

<믿음으로 마음을 치유하다, 종교와 의례>

‧ ‘화려한 궁중 문화의 극치, 화준’(p.190~191)

‧ 황수로 작 / 1935년생. 50여 년 동안 조선 궁중 채화의 복원과 계승 발전에 헌신해왔다.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예술대학원의 석좌 교수를 지낸 바 있으며,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의 개최기념 기획전을 비롯한 국내외 대형 행사 등에 작품을 선보여 왔다.

‧ 조선 시대에는 궁중에 큰 연회가 있을 때면 꽃을 꽂아 장식하는 것이 관례였다. 연회에 쓰던 꽃장식, 곧 채화는 품격 높은 조선 궁중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유산이다. 쌀 한 섬이 들어갈 만큼 커다란 꽃병인 용준에 각각 백도화와 홍도화를 꽂은 것을 화준이라 하며, 이 화준을 어좌의 좌우에 하나씩 놓는 것이 채화의 기본 법도이다. 또한 여기에 비단으로 만든 수천 송이의 꽃과 각종 나비, 새, 벌 등을 장식해 화려함을 더했다.

 

 

 

책의 뒷부분에는 부록으로 한국 전통공예의 종류와 제작 과정, 참여 작가 약력(일본어), 전시 작품 목록이 수록되어 연구자들에게도 알찬 정보를 제공한다. 이렇게 명작이 알차게 소개된 도록이라니, 그저 책장을 넘기는 것만으로도 전통공예품의 품격과 미감에 새록새록 눈을 뜨게 된다. 2007년 7월, 그해 여름, 한국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이런 고품격 전시가 세계 외교의 심장부인 유엔본부에서 열렸음에 뿌듯한 마음을 감출 길 없다. 게다가, 이런 멋진 도록이 남아 그해 여름의 감동을 계속 전할 수 있다니 참으로 가슴 벅찬 일이다.

 

단순히 전통공예문화를 소개하는 것이 아닌, 최고 수준의 명작을 보여주며 한국의 고유한 미감과 정서까지 전달할 책을 찾고 있다면, 이 책이 제격이다. 사진이 워낙 훌륭하고 설명이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들어가 ‘읽는’ 책보다 ‘보는’ 도록에 가깝다. 영ㆍ일ㆍ스페인어 3개 국어로 번역되어 외국인이 보기에도 좋지만, 한국인이 보아도 우리 문화의 격조 높은 아름다움을 새삼 깨닫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한국전통공예(Traditional Korean Crafts)》, 27,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