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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오래간만에 발견한 보석 《가문비나무의 노래》

고지대에서 천천히 자라는 가문비나무서 명품 바이올린 나와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72]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사람이 살아가면서 뜻하지 않게 보석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를테면 어떤 모임에서 사람을 알게 되었는데, 일생의 지기(知己)를 발견한 듯한 기쁨을 느낀다던가, 여행하다가 가슴이 벅차오르는 장소를 만나게 되든가 할 때 말입니다. 저는 책을 읽다가 이런 보석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이런 뜻하지 않는 보석 같은 책을 만났는데, 오래간만에 ALP 6기 동기인 정우철 회장님 사무실을 방문한 때였지요. 정 회장님은 회장실 옆에 따로 서재를 만들어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책은 많이 사서 비치해둡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모임을 못 하지만, 예전에 동기 모임 때면 정 회장님은 가끔 이런 책을 갖고 오셔서 동기들에게 나눠주기도 하였습니다. 이번에 방문하였을 때 정 회장님이 《가문비나무의 노래》라는 책을 주셨습니다. 바로 이 책이 오래간만에 발견한 보석이었습니다.

 

 

《가문비나무의 노래》는 마틴 슐레스케라고 독일의 바이올린 제작 장인이 쓴 책입니다. 가문비나무는 바이올린의 재료가 되는 나무인데, 슐레스케는 가문비나무로 바이올린을 만들면서 느낀 점을 《가문비나무의 노래》라는 책으로 낸 것입니다. 단순히 바이올린 제작에 관한 책이 아닙니다. 이를 통해서 슐레스케가 깨달은 인생의 진리나 삶의 지혜에 대해 쓴 영성(靈性)이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오래전에 본 《연필로 명상하기》란 책도 생각납니다. 프레데릭 프랑크가 쓴 책(류시화 뒤침)인데, 삽화가인 주인공은 아무런 편견 없이 사물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다 보니 진정한 대상 그 자체를 만나고, 그를 통해 자기 자신도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했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진정한 장인이란 단지 그 분야에 대해 기술적으로 으뜸 지위에 오른 것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인생의 나아갈 길도 깨닫는 사람이라는 것을 슐레스케를 통하여 다시 한번 느끼게 되네요.​

 

이 책은 슐레스케가 바이올린을 제작하면서 느낀 것을 모두 52개의 주제로 하여 먼저 글을 쓰고, 이에 대해 각각의 주제글마다 6개의 짧은 묵상을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묵상마다 Day 1에서 Day 6까지 번호를 붙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모두 364개의 글이 되니까, ‘Day’라고 번호를 붙인 것은 하루에 하나씩 묵상해보라는 것이겠네요.

 

이를테면 책의 첫 시작인 ‘가문비나무의 지혜’에서 슐레스케는 저지대에서 서둘러 자란 가문비나무로 만든 바이올린은 매력적인 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고지대에서 천천히 자라는 가문비나무는 어두운 산중에서 살아남기 위해 위쪽 가지들은 빛을 향해 위로 뻗어 오르고, 빛이 닿지 않는 아래쪽 가지들은 떨어져 나간답니다. 이런 나무가 바이올린의 공명판으로 사용하기에 최적이라는 거지요. 그러면서 슐레스케는 이렇게 말합니다.​

 

“수목 한계선 바로 아래의 척박한 환경은 가문비나무가 생존하는 데는 고난이지만, 울림에는 축복입니다. 메마른 땅이라는 위기를 통해 나무들이 아주 단단해지니까요. 바로 이런 목재가 울림의 소명을 받습니다.”​

 

와인도 척박한 땅에서 자란 포도나무에서 딴 포도로 만든 와인을 고급으로 친다는데, 바이올린도 그런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가문비나무로 만든 것이 으뜸이군요. 뒤이어 슐레스케가 ‘Day’라고 번호 붙인 묵상글을 짤막하게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Day 1 : 인생은 선택의 정글을 헤쳐 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포기할지 끊임없이 결정해야 합니다. 고지대의 가문비나무에서 우리는 귀한 지혜를 봅니다.

Day 2 : 가문비나무는 우리에게 죽은 것을 버리라고 가르칩니다. 옳지 않은 것과 헤어지라고 말합니다. 빛을 가리는 모든 행동과 결별하라고 이릅니다.

Day 3 : 노래하는 나무는 자기 생명에 해로운 것을 버립니다. 희생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Day 4 : 자기를 희생하는 삶은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지는 삶보다 제한적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가 더디겠지만, 그만큼 더 진실하고 아름다워집니다.

Day 5 : 하느님의 뜻을 좇는 사람은 언뜻 보기에 늘 손해 보고 더 가난해지는 쪽을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Day 6 : 어렵다고 모두 해가 되는 것이 아니고, 쉬운 것이 모두 축복은 아닙니다.​

 

하나만 더 볼까요? 바이올린 제작자이니 슐레스케는 연주자와의 만남도 많을 것입니다. 슐레스케는 어느 첼리스트와의 만남에서도 – 슐레스케가 첼로도 만들겠지요. - 깨달음을 얻는데, 이를 이렇게 말합니다.​

 

“첼리스트가 나의 작업실에 앉아 괴로운 표정으로 첼로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충격적인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계시의 순간이었다고 할까요? 나는 그 첼리스트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첼리스트의 모습에서, 인간이 막힌 음을 낼 때 고통스러워하는 하느님의 모습을 본 듯했습니다. 열린 음을 되찾고 싶어 하는 첼리스트의 심정에서, 나는 인간이 제 음을 찾지 못하고 막혀 버렸을 때 못내 안타까워하는 하느님의 심정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악기입니다.”

 

‘사랑과 수난’이란 주제글인데, 이 글에 대한 Day 6의 묵상은 이렇습니다. “자기 비중만 중요하게 여기고, 인정받기만 바라는 사람은 결국 그것을 잃고 맙니다. 가는 길이 어두워집니다. 우리는 언제나 ‘타인 안의 예수’를 의식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타인 안의 예수를 존중하는 만큼 우리는 예수를 알게 될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바이올린 제작자가 이런 깨달음의 글을 쓴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도 생각나더군요. 《예언자》는 현대의 성서라고도 불리는데, 슐레스케의 글에서 성서의 잠언이 연상되더군요. 《가문비나무의 노래》에는 사진작가 도나타 벤더스가 슐레스케의 작업 현장을 지켜보면서 찍은 사진들이 같이 실려 있습니다. 그녀는 ‘내면의 태도’나 ‘내적인 울림’을 담아내는 인물사진의 대가로 이름 높다고 하는데, 슐레스케로부터도 그런 내면을 잘 담아냈네요. 그래서 벤더스의 사진을 통해 본 슐레스케에게서는 어떤 현자(賢者)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슐레스케가 만든 악기를 한번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얼마 전에 현악기 판매ㆍ중개업을 하는 이원필 대표의 사무실 스트라드에 들렀을 때, 슐레스케가 만든 첼로를 직접 보았습니다. 까막눈인 제가 봐야 알 수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슐레스케가 만든 첼로를 보는 순간, 뭔가 슐레스케의 내적인 울림이 눈앞의 첼로에서도 울려나오는 듯했습니다.

 

 

 

정우철 회장님! 《가문비나무의 노래》라는 보석을 선물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영성의 글에 이끌려 두 번 읽었지만, 앞으로도 보석을 옆에 두고 슐레스케가 전하는 보석의 진미를 조금씩 음미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