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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해녀의 지혜 '욕심부리지 말고, 딱 자신의 숨만큼만'

엄마는 해녀입니다, 글 고희영, 그림 에바 알머슨, 번역 안현모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제주 앞바다에는 해녀가 많다. 바닷가를 거닐다 보면 심심치 않게 테왁이 보인다. 테왁은 해녀들이 잡은 해산물을 보관하거나 몸을 기대어 쉬는, 그물을 매달아 놓은 동그란 튜브다. 주황색 테왁이 동동 떠 있으면, 그 밑에서 해녀가 열심히 물질하고 있다는 뜻이다.

 

위험하지는 않을까? 물속에 잠수장비도 없이 들어가 전복이며 소라를 잡는다는 것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바닷속에서, 온전히 자신의 숨에 기대어 머문다는 것은 어찌 보면 무모한 일이다. 실제로 가끔 해녀들이 작업 중에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위험천만한 바닷속에서, 자신의 숨이 허락하는 만큼만 머물다 가는 해녀의 모습은 전 세계를 매혹시켰다. 글쓴이 고희영과 그린이 에바 알머슨도 그중 한 사람이다. 두 사람이 글과 그림을 그리고, 통역사로 유명한 안현모가 이를 영문으로 번역해 함께 실은 동화책 《엄마는 해녀입니다》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가 읽어도 마음이 뭉클해지는 삶의 지혜를 선사한다.

 

 

제주가 고향인 지은이 고희영은 어릴 때부터 해녀들을 보며 자랐다. 그녀는 항상 궁금했다. 해녀들은 해가 뜨고 해가 지듯이 바다로 나가고 바다에서 돌아오는데, 그들은 바다가 두렵지 않을까? 어떻게 숨을 멈추고 그렇게 오래도록 바다에 머물 수 있는걸까?

 

그런 궁금증은 다큐멘터리 영화 《물숨》을 만드는 씨앗이 됐다. 해녀가 물속에서 쉬는 숨을 뜻하는 ‘물숨’, 이 《물숨》을 제작하던 즈음에 고희영 감독은 한라일보 이현숙 기자의 소개로 스페인에서 온 화가 에바 알머슨을 만났다.

 

특유의 귀여운 그림체로 유명한 스페인의 화가 에바 알머슨은 우연히 상하이의 한 호텔에서 해녀 사진을 보고 강렬한 끌림을 느껴 하루빨리 제주도에 가서 이 여인들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2016년 5월, 드디어 제주도의 한 바닷가에서 해녀들의 물질 장면을 보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렸고, 그 그림들이 제주 지역 신문에 실리면서 고희영 감독과 인연이 닿았다.

 

해녀에 반해 있던 두 사람은 김형선 사진작가와 함께 우도로 가서 해녀들의 작업 모습을 지켜보고, 그들의 집에 초대되어 가족들을 만나보기도 했다. 놀랍게도 김형선 사진작가는 에바 알머슨이 상하이에서 보았던 사진을 찍은 사람이었다.

 

이런 신기한 인연이 뿜어내는 행복한 기운이 책 전반에 흘러넘친다. 글쓴이 스스로 ‘이 책에는 해녀들의 힘찬 숨과 에바 알머슨의 고운 숨, 저희 행복한 숨이 담겨있다’고 소개할 만큼.

 

책의 내용은 쉬우면서도 심오하다. 이 책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한 아이의 엄마와 할머니는 모두 해녀다. 처음에 엄마는 할머니처럼 살기 싫었다고 했다. 그래서 도시로 나가서 미용사로 일하며 돈을 벌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미용실에서 나는 모든 소리를 견딜 수 없게 된 엄마는 바다로 돌아왔다.

 

엄마는 파도 소리를 듣자 씻은 듯이 귓병이 나았다. 그리고 할머니를 따라 매일같이 바다에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는 겁니다.

엄마가 바다 깊은 데서 주먹 두 개를 합한 것만큼

커다란 전복을 발견했다는 겁니다.

숨이 탁 막히고 가슴이 컥 조였는데도

바다 밖으로 나갈 생각은 안 들고,

바위틈 사이에 손을 더 깊이 넣게만 되더라는 겁니다.

엄마의 몸은 납덩이처럼 무거워져갔고,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바다가

엄마를 더 세게 바닥으로 잡아당기더라는 겁니다.

 

이제 나는 죽었구나, 하는 찰나

정신 잃은 엄마를 끌어올린 건

근방에서 물질을 하던 할머니였다고 했습니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잖냐.

내가 물숨 조심하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잖냐.”

…(줄임)

 

“바다는 절대로 인간의 욕심을 허락하지 않는단다.

바닷속에서 욕심을 부렸다간 숨을 먹게 되어 있단다.

물속에서 숨을 먹으면 어떻게 되겠냐.

물숨은 우리를 죽음으로 데려간단다.”

 

욕심을 부리는 순간 바다가 자신을 집어삼킬 것을 아는 해녀들은, 딱 자신의 숨만큼만 머물며 바다가 주는 만큼만 가져온다. 이것이 바로 누대에 걸쳐 내려오는 물숨의 지혜다. 어쩌면 해녀들이 물 밖으로 나와 쉬는 ‘호오이~호오이~’ 하는 숨비소리는, 오늘도 욕심을 떨쳐냈다는 안도의 한숨인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욕심을 부리다 끝내 그 욕심이 자신을 집어삼키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막상 눈앞에 거대한 이득이 있으면 욕심이 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자신의 숨만큼만 머물다 단호히 돌아서는 것이 결국 스스로를 살리는 길이다.

 

언제나 욕심을 내고, 그 욕심 때문에 좌절하고 아파하는 현대인들에게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묘한 위안을 준다.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거라.”

 

엄마는 해녀입니다 / 글 고희영, 그림 에바 알머슨, 번역 안현모 / 13,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