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쉬이, 물렀거라
양반님 나가신다
비질하고 물 뿌려라
쌍것들 밟은 마당
재갈 고삐도
탈탈 털어 뫼시란다
비단길 서역만리(西域萬里)
물 건너온 명주 버선
봄 햇살 얼굴 탈라
합죽선(合竹扇)으로 해 가리고
백로야
인물 비견 마라
옥골선풍(玉骨仙風) 눈부시다

<해설>
“비질하고 물 뿌려라 / 쌍것들 밟은 마당 / 재갈 고삐도 / 탈탈 털어 뫼시란다”
슬슬 갈등의 주인공인 양반 납신다. 나으리님 걷는 길엔 먼지도, 자갈돌도 있으면 안 된다. 비질하고 물뿌리며 깨끗이 신작로 닦아놓아야 한다. ‘고삐도 탈탈 털어’를 요샛말로 바꾸면 번쩍번쩍 광택 낸 고급차가 아니겠는가.
차에서 내리는 품새를 보니 가히 우리 같은 아랫것들과는 다르긴 다르다. 의복은 저 태평양 건너온 것이고, 구두는 이름만으로 날아갈 듯한 상표를 붙었나 보다. 헌헌장부, 옥골선풍에 팔자걸음으로 걷는다. 속에 무엇일 들었는지는 알 바 없으나 일단 꾸밈새만으로도 기가 죽는다. 오방색 옷 입고 춤사위 근사하다만 가난한 이들, 억울한 이들에겐 더 먼 곳, 잡히지 않는 곳에 있는 이들이다. 어쩔거냐? 말뚝이에겐 흙냄새, 땀냄새가 더 좋은걸.
광대놀이 어찌 진행될지 자못 궁금하다. 그 잘난 양반도 때론 징치 당할 때가 있으리니. 말뚝이, 비비 등이 등장하여 양반 요리조리 비틀어도 보고, 어르고 달래기도 해 본다면 마당은 웃음바다로 변할 것이다. 그게 바로 진정한 탈춤 맛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