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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케니 로저스에게 부ㆍ명예를 준 <레이디>

또다시 겨울, ‘레이디’ 같은 사랑을 하던 청년의 이야기
[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137]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좀 먹어둬라. 너라도 기운 차려야 한다.”

그는 몰라보게 핼쑥해져 있었다.

수염은 한 뼘이나 자라있었고 광대뼈는 쇠무릎 같은 몰골로 고기를 마분지 씹듯 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고기 먹는 양(量)을 알아도 너무나 잘 안다.

그는 한 자리서 돼지갈비 5~6인분 정도는 간식 취급하는 마귀였다.

한 번은 내기당구에서 진 내가 그와 고깃집에 갔다가 평생 지울 수 없는

쓰라린(?) 경험을 하게 된다.

 

그의 입을 상식으로 접근하면 크나큰 오산이다.

그는 주먹 크기도 보통 남성의 두 배나 되는데, 그의 “선방”에 나가떨어지지 않은 이가 없다는 무용담이 그가 사는 도시에 전설처럼 내려온다. 그는 놀랍게도 턱관절을 분리해 그 큰 주먹이 다 들어가는 입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마치 자기 머리통의 몇 곱절이나 되는 알을 꾸역꾸역 입안에 집어넣는 뱀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가 간다.

 

그런 그가 상추 대여섯 장을 그 큰 손바닥에 포개놓고 고기를 수북이 올려

아귀 같은 입 속으로 집어넣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내 돈 나가는 처지에서 어찌 이빨 부딪는 소리가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날 나도 밑지지 않으려고 실성한 듯 먹어 댄 결과, 계산서에는 바를 정(正)이 세 개나 적혀 있었다. 아마 나도 4~5인분은 먹은 것 같다.

 

“왜? 안 넘어가냐?”

“예”

 

곧 솟아오를 것 같은 그의 눈물샘을 보고 나는 더 이상 권하지 못하고,

필요한 거나 사 쓰라며 봉투 하나를 건네고 첫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거리로 나섰다.

 

‘게이 에렉투스’

그는 먹는 거나 겉모습이나 원시에 가까웠기에

나는 그를 원시인류의 한 종인 호모에렉투스를 비틀어 그렇게 불렀다.

그와의 인연이 시작된 건 어느 자그마한 지방도시의 음악 감상실에서였다.

그곳은 극장식으로 된 감상공간과 휴게공간이 분리되어 있는 곳으로,

여섯 명의 디제이가 번갈아 가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나는 쉬는 시간에는 주로 휴게실에서 바둑을 즐겼는데,

“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바둑을 두고 있을 때 그가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해마다 그렇듯 대학입시가 끝나고 나면 예비 신사, 숙녀들로 감상실이 넘쳐나 벽을 고무줄로 만들어도 모자랄 판이었다. 음악실에서 어두컴컴한 객석을 바라보면 동글동글한 머리 형체만 눈에 들어와 흡사 게알 슬어 놓은 듯했다. 신청곡은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산더미로 쌓여갔다. 그럴 때 자기가 신청한 노래를 듣는다는 건 복권 맞는 것만큼이나 운이 좋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아까 아저씨 시간에 신청했는데 못 들었어요. 케니 로저스 레이디요.

다음 시간에 들어가시면 꼭 좀 들려주세요.“

서울에 있는 명문대에 합격하고 입학을 기다리는 예비대학생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힌 그는 자기가 가장 아끼는 노래를 굳이 나의 해설과 함께 듣고 싶다며 간청하는 것이었다. 아래위로 그를 훑어본 나는 알겠노라 대답하고 그를 돌려보낸 뒤 “푸훗”하며 참았던 웃음을 내뱉었다.

 

“내가 신생대 홍적세*에 와 있나?”

 

봄내음이 불어왔다.

저 멀리 대관령 정수리를 대머리로 만들었던 눈도 녹아내렸고 남대천 버드나무는 산발로 연두색 머리칼을 흩날리고 있었다.

“아저씨, 술 한 잔 대접해드리고 싶은데요.”

“아니, 너는...”

그였다. 원시인류 같이 생긴.

입학식 때문에 서울에 가 있어야 할 그가 온 것이다.

그것도 밤이 이슥한 시각에 술 냄새를 잔뜩 풍기며.

 

철다리 밑 포장마차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말없이 소주병만 비워냈다.

콧구멍으로 내 뿜는 그의 한숨에 카바이트 등불이 파르르 몸서리를 쳤다.

아무래도 그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릴 일이 아닌 것 같아 내가 먼저 자루 끈을 풀었다.

“말해 보거라.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나를 찾았을 테니.”

어렵사리 입을 뗀 그의 기구한 사연은 불행한 그의 가족사로 서막이 올랐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에 어느 시골의 밥술깨나 뜨는 부잣집에서부터 얘기는 시작된다.

 

“그 집의 주인은 아들만 둘을 둔 젊은 부부로 금실 좋기로 소문이 날 정도였대요.

그러던 어느 날 바깥주인이 누구에겐가 죽임을 당했는데, 경찰에서 수사했지만, 범인을 잡지 못한 채 몇 년의 세월이 흘렀대요. 그 집엔 머슴이 둘 있었는데 그 가운데 젊은 머슴이 폭풍우와 천둥소리 요란하던 밤에 안방 문빗장을 열었다는데요. 안주인은 자결을 결심했지만, 자식 둘 다 천애의 고아가 될 게 빤히 보이기 때문에 마음을 고쳐먹고 티 나지 않게 가산을 정리해서 그 머슴을 따라나섰대요.

 

그 뒤 그 머슴과의 사이에서 아들 셋을 낳았는데, 그 머슴은 매일 술독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오십도 못 채우고 황천길로 떠났고, 죽기 직전에야 바깥주인을 살해한 범인이 바로 자신이란 고백을 하고 눈을 감았대요.“

 

그 대목에 이르자 그는 통곡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를 진정시키랴 포장마차 주인과 다른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랴 정신이 없었다.

새벽녘까지 이어진 그의 얘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그 부잣집 안주인이 자기 어머니이고 바깥주인을 살해한 머슴이 자기 아버지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바깥주인이 남긴 아들 둘이 지금의 씨 다른 자기 형들이고 그 형들이 이 비극적인 가족사를 어느 순간에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큰형은 다 지나간 일이라며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 머슴의 자식들도 형제로 감쌌지만, 작은형은 그렇질 못하다는 것이었다.

틈만 나면 원수의 자식들이라며 괴롭혔고 이번 대학 문제도 “나는 중학교 밖에 못 나왔는데 원수의 자식인 너는 고등학교 나온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라”라며 입학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새벽 4시에 떠나는 영주행 완행열차가 머리 위로 지나갔다.

이제 일어나야 할 시간이지만 나는 일어나자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를 안아 줄 엄두도 나지 않았고 그 어떤 행위도 할 수 없었다.

“여자를 만나고 싶어요. 케니 로저스 노래처럼요.

그렇게 사랑을 신앙으로 섬기며 살고 싶어요. 그것만이 내가 살 길인 것 같아요.“

그는 그길로 원양어선을 탄다며 부산으로 떠났다.

 

“유골을 뿌리지 말고 산소를 하나 쓰는 게 어떠냐? 아이들 크면 엄마의 흔적이라도 찾아보게. 하다못해 납골당이라도.”

조심스레 그에게 권해 봤으나 그는 먼 하늘만 바라보다가 동해바다가 발밑에 펼쳐지는 괘방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와 그의 아내가 즐겨 찾던 산이고 나도 가끔은 끼어 오르곤 했던 산이었다.

다섯 살, 세 살 아이들도 무얼 아는 양 칭얼대지도 않고 말없이 아빠 뒤를 따랐다.

 

스물한 살에 한 원양어선 선원을 만나 오로지 사랑 하나만 믿고 살림을 차린 여인.

면사포도 써보지 못하고 다섯 평짜리 카페에서 아이 둘을 키우며 복닥거렸어도 짜증 한 번 안 내고 늘 편안한 표정으로 손님을 맞았던 여인.

나를 비롯한 우리 패거리들은 달랑 탁자 네 개뿐인 그 공간을 아지트로 삼아 나잇값도 못 하고 쥐구멍 드나들듯 했다. 다른 손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바둑을 두며 낄낄거려도, 새벽까지 제 술처럼 외상술을 퍼마셔도, 기타를 퉁기며 발악해서 손님들을 다 내쫓아도 싫은 소리 한 번 안 했던 여인.

우리가 술에 취해 널브러지면 연탄난로 숨구멍을 활짝 열어 불 괄게 지펴놓고도 마음이 안 놓여, 신문지나 김장비닐을 덮어주던 나이답지 않게 푸근했던 여인.

 

그가 사시나무 떨 듯하며 유골가루를 뿌리자 장끼와 까투리 한 쌍이 놀라서 하늘로 솟아올랐다. 어린 자식들도 인절미 손으로 한 움큼씩 뿌렸고 나도 한주먹 뿌렸다. 내 눈에서 이렇게 눈물이 흐르는데 저 가슴은 어떻겠는가? 그는 자기 손으로 아내의 인공호흡기를 떼었다 했다. 내가 문병을 다녀온 지 일주일 지나서라 했다. 떠난 자는 떠났다 할지라도 이제 저 어린 자식들과 젊은 홀아비는 어찌해야 하는가? 가슴이 미어져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이젠 그도 떠났다.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의 어머니도 씨 다른 형제들도 친구들도. 내가 방송관계로 그 도시를 떠난 뒤 그는 어린아이들을 앞세우고 종적을 감추고 만 것이다.

 

또다시 겨울이다.

우리는 무슨 이유로 그렇게 겨울에 많은 사연을 쌓았을까?

그의 이름을 신음처럼 내뱉으며 케니 로저스의 음반을 꺼내 든다.

 

 

여인이여

나는 갑옷이 빛나는 당신의 기사라오

사랑하오

당신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요

나는 당신의 사람이라오

 

나의 사랑이여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할 말이야 많겠지만

난 그냥 당신을

포근히 안고 싶다오

 

여인이여

난 오랫동안 생각해 봤다오

아무래도 당신 같은 여자는

다시는 못 만날 것 같다고

 

나는 당신밖엔 볼 수 없어요

우리 같은 사랑이 어디 또 있을까요?

늘 당신 곁에 있고 싶어요.

언제까지나

 

여인이여

당신의 사랑만이 내게 필요하다오

늘 내 곁에 있어주오

 

오직 나의 소망은 그것뿐

당신은 내 삶의 전부

당신은 나의 여인

 

덥수룩한 수염이 매력 요소인 케니 로저스(Kenny Rogers)는 1938년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태어났다.

고등학생 때 밴드를 조직하여 입문하였고 대학시절에는 재즈밴드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전설적인 포크그룹 ‘뉴 크리스티 민스트렐(New Christy Minstrels)’에 몸담기도 했으며,

67년에 결성한 ‘퍼스트 에디션(First Edition)’을 통해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77년부터 독자적인 활동을 시작했고, 80년에 발표된 <레이디(Lady)>의 대성공으로 미국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떠올랐다.

<레이디>는 거장 라이오넬 리치가 작사, 작곡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유럽계 미국인의 전유물인 컨트리를 작곡했다는 것이 이채롭다.

<레이디>는 2012년에 라이오넬 리치와 듀엣으로 부르기도 했으며 케니 로저스에게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가져다준 작품이다.

오랜 세월 수많은 히트곡을 쏟아내며 추앙받다가 재작년인 2020년 밤하늘의 별이 되었다.

 

*홍적세 – 지질시대 가운데 신생대 제4기. 약 158만 년 전부터 약 1만 2 천 년 전까지를 일컫는다.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호모에렉투스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던 시기. 호모에렉투스는 25만 년 전쯤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