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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다귀를 놓고 뭇 개들이 싸우는구나

권필, <투구행(鬪狗行)>
[겨레문화와 시마을 12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투구행(鬪狗行)

                                                                                - 권필

 

   誰投與狗骨(수투여구골) 누가 개에게 뼈다귀 던져 주었나?

   群狗鬪方狠(군구투방한) 뭇 개들 사납게 싸우는구나

   小者必死大者傷(소자필사대자상) 작은 놈은 반드시 죽고 큰 놈은 다치니

   有盜窺窬欲乘釁(유도규유욕승흔) 도둑놈이 엿보다 그 틈을 타려 하네

   主人抱膝中夜泣(주인포슬중야읍) 주인은 무릎 껴안고 한밤에 우는데

   天雨墻壞百憂集(천우장괴백우집) 비 내려 담장 무너져 온갖 근심 모인다

 

위 시는 석주 권필의 ‘투구행(鬪狗行)’이란 시다. 우의적(寓意的) 방법을 써서 당쟁(黨爭)을 일삼는 당시 정치에 대해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뼈다귀를 던져 주자 뭇 개들이 서로 차지하려고 무섭게 싸운다. 이때 작은놈은 죽고 큰놈은 다친다. 도둑놈은 그 틈을 엿본다. 그 틈에 나라의 방비는 무너진다. 여기서 큰개는 당시 당파싸움을 하던 대북(大北), 작은개는 소북(小北), 틈을 엿보는 도둑놈은 왜구를 가리킨다.

 

석주(石洲) 권필(權韠, 1569~1612)은 성격이 자유분방하고 구속받기 싫어하여 벼슬하지 않은 채 야인으로 일생을 마쳤다. 임진왜란 때에는 강경한 주전론을 주장했다. 광해군초에 권세를 가진 이이첨(李爾瞻)이 가까이 지내자고 청했으나 거절했다. 오히려 나라를 어지럽힌 위정자들을 비판하는 내용의 ‘궁류시(宮柳詩)’를 지어서 풍자, 비방하였다. 이에 광해군이 대로하여 귀양 가게 되었는데 동대문 밖에서 행인들이 동정으로 주는 술을 폭음하고는 이튿날 44살로 죽었다.

 

 

이런 석주 권필은 인조반정 이후 사헌부지평에 추증되었고, 광주(光州) 운암사(雲巖祠)에 배향되었다. 그의 시재가 뛰어나 자기성찰을 통한 울분과 갈등을 토로하고, 잘못된 사회상을 비판 풍자하는 데 주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저항시인이라고 할만하다. 《석주집(石洲集)》과 한문소설 《주생전(周生傳)》이 현전한다. 당시로서 진정한 충신은 이이첨이 아니라 권필이었음이라.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