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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같은 KAL기 격추사건 이야기

이뭐꼬의 구도이야기 3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대천덕 신부님의 부인(제인 그레이 토리, 한국이름: 현재인)은 그림을 공부했는데 학창 시절 대학의 메이퀸이었다고 한다. 제인은 1940년 여름 미국 웨스트민스터 장로교회 청소년 모임에서 아쳐를 처음 만났는데, 제인의 기억에 아쳐는 매우 이상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아쳐는 기독교인이면서도 사회주의에 관심이 많았고 그가 종종 보내온 편지에는 ‘제인과 함께 티베트로 건너가 천막촌 생활을 하면서 그곳 사람들과 함께 삶을 나누고 싶다’는 내용이 있었다.

 

제인은 “아쳐가 나의 반려자일까 고민했었는데, 하나님이 어느 날 정말 그를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화가로서의 꿈도 있었지만 아쳐와 함께 하는 삶이 더 소중하고 아름다울 것 같아서 아쳐와 결혼했다”라고 말했다. 그들 부부는 혼인하고 한 번도 싸우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고 하는데, 예수원에서 두 사람이 같은 방을 쓰면서도 서로 바빠서 오후 4시 반 차담 시간에나 대화를 나눌 수가 있다고 한다.

 

 

숙소인 석송관에 도착하여 이층 침실로 올라가 보니 군대 내무반식으로 마루를 깔았고, 한쪽에 베개와 이불이 쌓여 있다. 베갯잇과 이불보에 베개와 이불을 넣어서 이틀 동안 사용할 침구를 만들고 한쪽에 가방을 놓았다. 재래식 수세 화장실이 있었으며 수도꼭지가 있기는 한데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쓰게 되어 있었다.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와 이곳저곳을 거닐었다. 푸성귀(채소)를 자급하는 듯 채소밭이 여기저기에 있었다. 목공소도 보이고, 예수원 앞으로는 맑은 개울물이 흘렀다. 예수원 공동체 식구가 사는 건물 앞에는 빨래가 널려 있었다. 예수원 위쪽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가 보니 거기에도 채소밭이 있었고 그 위에는 기도하는 장소가 있었다. 산속도 도시처럼 시끄럽기는 마찬가지이다. 단지 차량 소음 대신 매미 소리, 온갖 새 소리가 등이 요란하지만 자연의 소리라서 듣기 싫은 소음은 아니다.

 

조용히 혼자서 산책하다가 나사렛관으로 식사 시간에 맞춰 내려갔다. 거의 5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예수원에서 식사는 국 하나에 반찬 두 가지이다. 그날 저녁에는 무국과 김치와 어묵이 나왔다. 밥은 공기에 반쯤 담아 주는데 조와 보리, 그리고 쌀과 콩을 섞은 잡곡밥이었다.

 

예수원에서는 밥을 가득 퍼 주지 않는다고 한다. 조금 부족하게 먹는 것이 포식하는 것보다 낫다는 까닭에서다. 예수원에서 살면 비만이 될 수가 없겠다. 고기가 나올 때가 있느냐고 옆 사람에게 살짝 물어보니 고기 찌개나 두부가 나올 때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반찬이 두 가지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워낙 소찬이어서 식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식사 뒤 저녁 7시 반에 오늘은 은사 예배가 있다고 광고한다.

 

식사를 마치고 혼자서 가벼운 산책을 했다. 산골짜기라서 해가 일찍 떨어진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였다. 나는 전원주택에 살아서 시골 생활을 어느 정도 안다. 시골에 살다 보니, 하루에 두 번 좋은 시간대가 있다. 아침 동틀 무렵과 저녁 해 질 무렵에 마당에 서 있으면 느낌이 좋다. 그 가운데서도 해 질 무렵을 나는 더 좋아한다. 낮이 물러가고 밤이 밀려오는 시간에는 밝음과 어두움이 서서히 교차한다. 밝음이 점점 사라지면서 어두움이 차츰 진해지는 시간에 잔디밭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사라지고 자연 일부임을 느끼게 된다. 짧지만 자연과 내가 하나라는 느낌이 들게 된다.

 

저녁 7시 반에 은사 예배가 시작되었다. 식당과 예배실을 공용으로 쓰고 있었다. 앞쪽에는 커다란 나무 십자가를 걸어 놓았고 마루를 깐 바닥에 앉아서 예배를 시작하였다. 그날 집회에는 대천덕 신부님이 참석하셨다. 키가 크고 마른 몸집에 갸름한 얼굴, 머리카락은 모두 희었고 선하게 보이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신부님은 예배에 모처럼 참석하셨나 보다. 사회자가 설명하는데 신부님은 얼마 전 심장 수술을 받으셨는데, 수술 경과가 좋아서 예배에 참석하셨다고 한다. 현재 82살이라는데 지팡이를 짚고 나오셨다. 사회자는 매우 젊은 청년이었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공동체 식구들이 1주일씩 교대로 사회를 본다고 한다.

 

예배가 시작되어 성공회 찬송가집 가운데서 몇 곡을 불렀다. 내가 아는 찬송가여서 쉽게 따라부를 수가 있었다. 그런 다음 국악 찬송가를 불렀다. 찬송가책 끝에 국악 찬송가 몇 곡이 수록되어 있다. 국악의 흥겨운 가락에 얹어서 찬송가를 부르기는 처음이어서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약간 슬픈 가사의 찬송가를 슬픈 국악 풍으로 불렀다. 나는 그렇지 않아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국악에 빠져들고 있던 터라 국악 찬송가를 부르니 가사와 곡조가 가슴에 절절히 와닿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국악 찬송가를 따라 부르시던 신부님이 앞으로 나오시더니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는 것이 아닌가? 그 춤은 농부들이 풍년가를 부르면서 저절로 흥이 나서 추는 그러한 춤이었다. 춤추는 신부님의 모습이 너무도 좋아 보였다. 사실 대천덕 신부님이 쓰신 책을 읽으면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는 모습이 여기저기 보인다. 한국적인 것을 모두 좋아하는 신부님은 왜 국악을 한국 사람들이 소중히 하지 않는지 매우 안타까워하신다고 한다. 아마도 불교의 윤회설이 맞는다면 신부님은 전생에 한국인이었음이 틀림없을 거로 생각하였다.

 

이어서 ⟪성경⟫ 낭독과 해설이 있고 그날은 마침 특강이 있었다. 연사는 영화감독 출신의 40대 초반의 남자였고, 주제는 KAL기 격추 사건에 관한 것이었다. 1980년대 초에 KAL 007기가 캄차카 반도 근처에서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 공격으로 탑승객 전원이 사망하였다. 나도 그 사건을 뚜렷이 기억한다. 그때 나는 미국의 뉴욕주 시라큐스라는 작은 도시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유학하러 와서 2년 동안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려던 공무원이 마침 그 비행기를 예약했다가 하루 전에 긴급한 일로 예약을 취소하고 그다음 비행기로 귀국해서 목숨을 건진 일도 있었다.

 

그 사건은 유학생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다. 당시에 어떤 기독교인은 그 공무원이 하느님의 보호하심으로 목숨을 건졌다는 신념을 가지고 강력하게 주장하였었다. 그러나 나는 들어내 놓고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지만,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그가 취소한 자리를 뒤늦게 차지했다가 죽은 사람을 하느님은 왜 보호하지 않았을까?" 사실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 쉽게 해답을 낼 수는 없으며, 이 질문은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끝없이 논란이 되어 온 주제이므로 여기서는 더 이상 들어가지 않겠다.

 

어쨌든, 그때 비행기는 완전히 파괴되어 잔해만 발견하였으며 탑승객은 전원 사망하였다고 보도되었다. 그런데 강연자는 비행기 승객 가운데 일부는 살아남았는데 러시아 수용소 캠프에서 아직도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소설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가 신념에 찬 목소리로 소개하는 KAL기 사건의 진상과 다음과 같았다.

 

1983년 7월에 소련 전투기가 KAL 007기를 격추하여 250명 정도가 실종된 사건이 발생하였다. 소련 전투기는 미사일을 두 발 쏘았는데, 첫발은 빗나가고 두 번째가 날개 부분을 손상해 더 이상 날 수가 없었다. 여객기는 12분간 교신하며 날아가다가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실제로, 여객기는 바다에 착륙하였고 승객들은 모두 구해진 뒤 중앙아시아의 수용소 캠프로 이동되었다. 아이들은 강제로 모두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승객 가운데 이브라임이라는 이스라엘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수용소에서 7년을 보내다가 이스라엘로 귀환했고, 그래서 KAL기의 진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강연자가 설명하는 시나리오에 따르면 소련 당국은 작은 비행기를 끌고 가서 사고 현장 근처에서 폭파한 뒤 KAL기가 폭파되었다고 발표하였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서는 현장에서 수거한 시트 조각이 KAL기에 설치된 시트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소련 당국은 이러한 일을 저질렀을까? 그리고 미국의 정보당국에서는 왜 가만히 있었을까? 그의 설명에 따르면 그 비행기에는 맥도날드라는 미국의 국회의원이 타고 있었다.

 

그 사실은 나도 기억한다. 죽은 국회의원의 성이 독특해서 기억이 나며 그의 부인이 한국의 정보당국과 전화로 인터뷰하는 장면이 미국의 텔레비전에 보도되었다. 그때 그 부인은 소련의 정보당국이 자기의 남편을 죽이기 위해서 비행기를 격추했다는 주장을 한 것 같았다. 맥도날드 의원은 당시 미국 의회 군사위원회에서 영향력이 큰 헬름즈 상원의원을 15분 뒤에 앵커리지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두 사람은 미국과 소련 두 나라 모두에 불리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미국과 소련은 공동으로 이 사건을 은폐하고 있으며 누군가 나서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내가 듣기에는 설득력이 없는 소설 같은 이야기였다. 예수원의 저녁 예배만 아니었다면 즉각 질문을 던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모두 열심히 듣고 있는데 괜한 질문을 하여서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탐정소설 같은 이야기는 거의 1시간 반이나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