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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아니라 ‘임자누림’이다!

서양말 ‘데모크라시’는 일본말 뒤침이 아닌 우리말로 바꾸자
김두루한 배움이야기 4

[우리문화신문=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장]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누리(세상)를 세로로 나누면 이렇습니다. 백제사람, 고구려사람, 신라사람. 또 신라 안에서는 공주님을 따르는 이, 이 미실을 따르는 이들. 하지만 누리를 가로로 나누면 딱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두 손을 가로지어 양쪽을 벌리면서) 부리는 이와 부림 받는 이. 누리를 가로로 나누면 공주와 저는 같은 편입니다. 우린 부리는 이입니다. 미실에게서 신권을 뺏으셨으면 공주님께서 가지세요.(드라마 <선덕여왕> 30회, 2009)

 

마소나 다른 사람을 시켜 일하게 할 때 ‘부리다’란 말을 썼다. 누리를 가로로 나누면 부리는(지배하는) 이와 부림 받는(지배당하는) 이, 두 가지밖에 없다는 말이 와닿는다. 씨알(국민)에게 천기운행의 지식을 돌려주려고 첨성대를 세우자고 월천 대사가 제안한다. 이를 받아들이기 힘든 미실과 변화를 이룩하려는 덕만 사이에 나눈 마주이야기(대화)다. 이 장면을 떠올리면서 ‘민주주의’를 묻게 된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두산백과사전》, 고등학교 《정치와 법》 교과서에서는 ‘민주주의’를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한 정치가 이루어지는 정치제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 또는 그러한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 《두산백과사전》

“주권자인 국민의 뜻에 따라 정치가 이루어진다는 의미” 《천재교과서》 정치와 법, 16쪽,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만나는 ‘민주주의’는 어떠한가? ‘민주주의 위협’, ‘민주주의 정상회의’, ‘의회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 ‘정당민주주의’, ‘한국적 민주주의’ 등처럼 쓴다. 무엇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양대 진영으로 갈라져 대의제(간접민주제)는 동물국회, 식물국회를 넘어 일 안 하는 국회로 치닫지 않았던가?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나 ‘국민을 위한 정치’나 ‘국민의 뜻에 따른 정치’가 말하는 ‘국민’과 ‘정치’, ‘주권’ 사이에서 씨알은 곧 임자이며 임자는 임자답게 권리를 누리는가?

 

한국적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민족적 민주주의’를 말했다. 또 1972년 ‘10월 유신’이라는 쿠데타를 하면서 ‘한국적 민주주의’를 말했다. 1967년 삼선 개헌 때 국민에게 한 번만 더 대통령을 하게 해 달라고 호소했던 그는 다시는 국민에게 자신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일이 없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박정희는 이상한 방식으로 약속을 지켰다.

 

민주공화당이 1971년 12월 17일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비상사태 때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비상대권을 주었다.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라는 명분을 내걸었으나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원칙들을 지운 것이다.《정치학대사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 모여 뽑은 대통령은 ‘박정히’라 쓴 무효표 한 표를 빼고 다 지지를 받아 99.9 퍼센트 지지율이었다. 씨알(국민)이 대통령을 뽑는 권리를 빼앗은 ‘10월 유신’(1972)에서 말한 ‘한국적 민주주의’는 1987년 뒤로도 대통령 임기를 5년으로 한 번만 한다는 것과 ‘정치의 사법화’로 주목받는 헌법재판소에 이르기까지 권력 유지에만 쏠렸다.

 

현행 헌법은 유신헌법을 벗어났나?

 

박정희는 헌정중단과 유신헌법으로 장기집권 유신체제를 띄웠다. 국가의 안보위기를 내세워 사회와 국민통제의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국제적 긴장 완화 상황에서 역설적이었다. 유신헌법은 권력자를 법과 제도 아래 두는 공화국 원리를 부정했으니 마땅히 무효라고 평가받는다.

 

“전후 독일이 나치 헌법을 무효로 했듯, 우리 국회는 지금이라도 유신헌법 무효선언이 필요하다.”(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임지봉 교수)거나 “유신체제는 세계사적으로도 극히 드문 헌정 파괴행위다”(연세대 박명림 교수)란 지적에서 보듯이 유신은 헌정사에서 빼야 할 헌법의 진공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1987년에 마련한 현행 헌법은 유신헌법을 벗어났나? 법치를 부인하고, 입법부와 씨알임자권(국민주권)을 아니라고 했으며 권력자(박정희)를 법과 제도 아래 두는 공화국 원리를 부정한 유신헌법에 견주어 훨씬 더 ‘민주주의’에 충실한 것인가?

 

씨알(민)이 임자라 하면 씨알부림보다 ‘임자누림’이 좋겠다

 

민주주의란 ‘데모크라티아’에 뿌리를 둔 서양말 ‘democracy’를 뒤쳐(번역) 쓴 일본말이다. 데모크라티아는 데모스(씨알, 인민)와 크라토스(부림, 지배)를 합친 말이다. ‘aristocracy’인 귀족(엘리트) 부림(지배)과는 가려서 본다. 세 가지 정치 형태인 군주정, 전제정, 공화정에서 공화정과 같다. 실제 현실 상황에서는 어떤가? 뽑는 기회는 공정하나 뽑히는 사람은 특별한 능력이나 지위가 필요하다. 나라를 관리하는 권력의 기회가 특정 범위(엘리트 집단)에 치우치면 그 사회는 귀족 권력의 사회일 것이다. 민주주의로는 씨알부림(인민지배)이나 임자누림이란 뜻이 잘 와닿지 않는다.

 

민주란? 민이 임자란 말이다. 민주화란 임자되기다. 임자되기의 여러 모습으로 배움임자되기(말글, 새김, 밝힘)와 나라임자되기(집안, 마을, 고을, 나라, 누리), 씨알임자되기(뽑는 것은 씨알! 뽑힌 이도 씨알)!를 들 수 있다. ‘씨알(인민)이 이룬 ’공적인격이 나라고 임자권(주권)이다.

 

씨알(민)이 임자라 하면 씨알과 부림를 합친 말로 씨알부림이나 임자누림이 좋을 듯하다. 왕정, 귀족정(지증왕이나 진흥왕), 전제정(두려움을 통치 기반으로 백성을 부린 미실), 공화정(덕만)에 견줄 때 공익을 사익에 앞세우며 공공선에 대한 사랑이 담기는 것은 ‘임자누림’일 것이다.

 

왜 임자혁명일까? 왜 바로임자(직접민주)일까?

 

왜 임자혁명일까? 우리가 오늘날 말하는 나라(state)는 군주의 힘, 영토를 뜻하는 왕조(dynasty)와 구별된다. 주어진 영토나 범위 안에서 다른 주체나 집단의 압력이나 조종에서 벗어난다. 나라는 여러 사람이 함께 일으켜 홀로 서는 영역과 결정권을 지니고 세워진다(stare). 민주주의, 주권, 기본권, 참정권, 신성불가침의 권리, 저항권, 언론ㆍ출판ㆍ결사의 자유, 행복추구권 같은 아름다운(?) 말들로 우리는 민주주의를 꽃피웠던가?

 

민은 사람이며 씨알이며 임자인데도 임자(주인)들이 제 노릇 잘하며 대의제 입법ㆍ행정ㆍ사법 머슴(공무원)들을 잘 부렸던(통제했던)가? 이제까지는 나라 임자권(주권)을 정치인들이 지녔다. 정치는 정치인들이 씨알에게서 뽑기(선거)로 권한을 넘겨받아 그 나라와 씨알(국민)을 다스리는 일을 뜻한다고 했다. 이것은 임자이긴 하나 건너 임자(간접민주주의 아래서 노예)일 뿐으로 참임자가 아니다.

 

민주주의란 삶을 임자답게 누리며 살아가는 ‘임자누림’이다

 

예수 이전 5세기에 옛 그리스 아테네(기원전 461~322)에서 민주주의는 ‘바로임자(직접민주주의)’ 제도였다. 모든 사람이 오늘날처럼 뽑는 권리를 누렸다. 4만이 살았던 도시 나라에서 다스리는 이와 다스림을 받는 이가 바뀔 수 있었다. 민회(의회), 평의회(행정부), 시민법정(사법부)이 있었기 때문이다. 민회 곧 씨알모임은 20살 넘은 시민(다만 다른 나라 사람, 여성, 노인은 못함)이 참여했다. 연설하고 정치 의제를 풀었다. 평의회는 행정기능을 하고 제비뽑기로 순환제였다. 시민법정은 시민배심원이 있었고 자원한 이들 가운데 제비뽑기를 했다.

 

지금 우리는 건너임자(간접민주주의 아래에서 국민) 체제인데 이를 바로임자(직접민주주의 아래에서 임자)로 대전환하는 임자혁명이 필요하다. 나세우기 배움혁명으로 온전한 임자가 되면 그때부터는 우리가 주권 곧 임자힘을 행사하며 임자됨을 누리고 안전과 행복을 만끽하며 임자로서 삶을 누리는 일만 남는다.

 

알 권리에 그치면 안 되고 임자누림으로 21세기를 살아야

 

미실: 백성은, 왜 비가 오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백성은 해가림(일식)이 왜 일어나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비를 내려주고, 누군가 해가림이란 흉사를 막아주면 그만인 무지하고 어리석은 존재들입니다.

덕만: 그건 모르기 때문입니다.

미실: 예, 모릅니다. 알고 싶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뭘 원하는지도 모릅니다.

덕만: 백성이 책력을 알면, 스스로 절기를 알게 되고, 스스로 파종할 때를 알게 됩니다. 그리 되면 비가 왜 오는지를 몰라도 비를 자신들의 농사에 어찌 이용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렇게 한 발짝씩이라도 더 나가고 싶은 게 백성입니다.

                                                                (MBC 드라마 <선덕여왕> 30회, 2009)

 

 

위에 나오는 백성은 오늘날도 ‘국민’으로 부르고 있지만, 곧 씨알이라 할 수 있다. 각종 법령이나 행정정보, 공문서, 공공정보 등을 씨알이 자유롭게 만나고 찾아볼 수 있는가? 나랏일 의사결정 과정과 내용을 모두 쉽게 확인할 수 있는가? 그렇게 ‘알 권리’를 누려야 실제로 임자누림(민주주의)이 되는 것이다. 씨알임자권(국민주권) 원리가 살아날 수 있으니까.

 

인문을 왜 배울까? 씨알로서 임자배움을 누렸던가?

 

사람다움을 가꾸는 인문이야말로 임자배움이 필요하다. 씨알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묻고 함께 답을 찾아보는 곧 임자로 배워야 할 것이다. 주어진 물음의 답을 외어 길들이는 가르침은 배움일 수 없다. 임자배움은 씨알로서 스스로 깨침이 밑바탕이다. 대한민국 인문은 그동안 나라를 빼앗긴 가운데 가르침이나 익힘에 그쳤다. 대학에서도 ‘주어진 답’을 전달하고 전달받았다. 얼이 없는 헛소리를 듣고도 시험 대비로 외우고 찍어 왔다.

 

인문은 지식 정보를 받아들이고 아무 생각 없이 소비하려고 배우는 것이 아니다. 맞닥뜨린 상황이 어떠하든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덧보태 내 느낌과 생각을 새롭게 내세우는 것이어야 한다. 지식 정보를 바탕으로 내 뜻이 담긴 말글로 남들과 뜻을 새기고 밝힌 것을 나누어야만 한다.

 

21세기 대한민국을 새롭고 희망찬 나라로 만들려면 무엇을 어찌해야 할까? ‘국민교육헌장’ 아래 정해진 답을 찾는 ‘씨 없는 달걀’ 교육이나 ‘하늘성채(스카이캐슬)’ 줄세우기 ‘수능[순응]’ 시험을 대비하는 학습은 버려야 한다. 일방 강의나 수험용 인문 교육/학습에 뿌리를 둔 교육/학습사회부터 바로잡자! 도이칠란트가 미리 겪은 배움사회(빌둥게젤샤프트)를 본보기로 나아가자!

 

‘인문배움(학)’ 이야말로 때마다 배우는 사람이 임자로 거듭나야 한다. 서로 말글을 부려쓰며 ‘나’를 드러내고 알게 되는 배움(문학), 오늘 마주한 일마다 옛적(과거)과 올적(미래)에 견준 뜻을 새기는 배움(역사), 느낌과 생각이 지닌 바탕을 찾아 뜻을 밝히는 배움(철학)은 저마다 느끼고 생각한 것을 서로 배우며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일이다.


당신들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누구나 살맛 나는 ‘임자누림’이다!

 

‘민주주의’란 말로 온갖 잘못을 저질러온 ‘독재자’가 미화되어 영문 모를 존경을 받는 거짓을 걷어내자. 학창 시절 줄을 세웠듯 씨알들을 교육/학습 대상으로 더 이상 만들게 두어서는 안 된다. 자동차를 잘만 모는 농어민, 노동자, 시골 어른들에게 캬브레타, 쓰로틀 밸브, 스타터처럼 ‘빌린 말글’을 ‘전문용어’라며 익힐 것을 강요하지 말라! 말과 글을 다루는 누구든 서로 재미있게 살맛 나는 삶을 누리도록 쉬운 말 바른 말글 쓰기에 나서야 한다. 당신들만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누구나 살맛 나는 ‘임자누림’이어야 한다. 함께 뜻을 모아내는 판갈이로 이어지길 바라며 ‘나’부터 임자로서 참삶을 누리자!

 

글쓴이 김두루한 소장:

<참배움연구소>에서 참배움과 온배움, 늘배움의 배움학을 함께 갈닦는다. 《배움혁명》(2020), 《누리자!배움!》(2022)에 이어 《배움사회》(2023)를 펴냈으며 헌법 제31조 ‘교육받을 권리’를 ‘배움 누릴 권리’로 바꾸는 배움판갈이(배움혁명)로 대한민국을 혁신하고자 한다. 교육/학습사회 체제를 벗어나 ‘배움사회’ 체제를 이루어 참삶누림을 돕는 배움길 찾기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