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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한국어연구에 몰두한 재일동포 김예곤 선생

《정본 한국어강좌》 출간, 효고현 선생의 자택 대담
<맛있는 일본이야기 714>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먼 곳에서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마침 오늘(4월 12일) 아사히신문(朝日新聞) 1면에 《정본 한국어강좌(定本 韓玉語講座)》 책이 소개되었습니다. 바로 이 책입니다. 표지도 더 산뜻해졌고 특히 노마 히데키(野間秀樹) 교수의 해설 부분이 들어 있어 더욱 뜻깊습니다.”

 

이는 지난 4월 12일(금) 낮 2시, 효고현 다카라츠카시(兵庫縣 宝塚市)에 살고 있는 김예곤(金禮坤, 91) 선생을 찾아갔을 때 선생께서 기자에게 건넨 첫 인사말이다. 아파트 거실 너머는 탁 트인 시가지와 타카라즈카 가극단이 한눈에 들어오고 시가지 너머에는 롯코산(六甲山)과 가부토야마(甲山)가 병풍처럼 아늑하게 펼쳐진 봄날 정경이 물씬 느껴지는 곳에서 김예곤 선생 부부는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실 탁자 위에 앉자, 김예곤 선생은 아침 신문이라며 아사히신문 1면 하단에 소개된 《정본 한국어강좌》 책 부분을 보여주었다. 아사히신문은 신문 1면에 책을 소개하는 신문으로 유명한데 그 소개 한가운데 《정본 한국어강좌》가 자리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1960년대 한국어 교육이 지금, 새롭게 되살아나고 있다. 문법 입문, 불멸의 금자탑,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 가르치는 사람, 일본어 교육에도 필수”라고 쓰여 있었다. 이 책이 일본 내에서 한국어 문법책으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바로 말해 주고 있는 것 같아 반가웠다.

 

 

책을 펼치니 전 동경외국어대학 대학원 노마 히데키(野間秀樹) 교수는 《정본 한국어강좌》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결코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책이다. 시대적인 선진성, 문법론의 지적인 즐거움, 모어와 학습 주체를 잃지 않는 대조 언어학적인 배움, 그리고 한국어에 대한 애정 등 여러 가지 점에 있어서, 이를 능가하는 책을 보지 못했다. 조선어학 역사상 중요한 저작(著作)인 김예곤 선생의 《조선어문법》(1960)은 일본어학의 거성(巨星) 오쿠다 야스오(奥田靖雄, 1919-2002) 교수의 언어학과 여명기 일본의 대조언어학을 압도적인 수준으로 통합한 책이다. 젊은 언어학자 김예곤이 혼신의 힘으로 쓴 한국어 문법 입문서인 이 책은 한국어 학습자ㆍ교육자뿐만 아니라, 일본어 연구자들에게도 필독본이다.”

 

어떠한가? 이쯤 되면 《정본 한국어강좌》야말로 한국어 학습자들이 갈망하는 ‘불멸의 금자탑 한국어 문법 입문 책’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사실 이번에 김예곤 선생을 방문하기 위해 오사카에 숙소를 정했는데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켠 티브이에서 한국어강좌가 진행되고 있어서 일본의 한국어 붐을 실감했다. 물론 이날 방송은 아주 기초적인 한국어였지만 결국 이 학습자들이 읽어야 할 마지막 종착역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을 쓴 김예곤 선생을 취재한다는 설렘에 찾아뵙기로 한 이튿날이 밝기만을 기다렸다.

 

 

 

김예곤 선생의 한글 문법책 이름은 처음에는 《조선어문법》이었다. 이 책이 출간된 것은 1960년대였으니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이다. 그동안 한국어 학습자들은 이 책을 바이블처럼 곁에 두고 한국어공부를 해왔다고 했다. 그러던 것을 2021년 아사히출판사(朝日出版社)에서 《한국어강좌(韓國語講座), 아래, 한국어강좌》라는 이름으로 이 책을 복원 출판했고 이를 기려 김예곤 선생의 미수(米壽, 88세)겸 책 출간을 축하하는 조촐한 모임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제자 신준우(申俊雨) 씨는 이렇게 말했다.

 

“인자하신 김예곤 선생님의 미수와 아울러 《한국어강좌》 책 출판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선생님과의 첫 만남을 돌이켜보니 제 아내는 50년, 저는 30년이란 기나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동포 조직을 개선하려는 일념으로 모여든 분들과 밤을 새우면서 열띤 토론을 거듭한 일들과 친선모임, 강연회 등에서 동포를 위해 열과 성을 다하신 선생님의 노고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에 출간하신 《한국어강좌》 책을 읽어보니 그 당시 우리말과 글을 한 자 한 자 배워가며 통일을 갈망하던 추억이 생생하게 떠올라 그리움과 감격이 가슴에 벅차올라 참기 힘들었습니다. 이 책은 동포들이 흘린 땀과 눈물 어린 역사에 새로운 빛을 비추어 현재에 재생시킨 기념비적인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존경하는 김예곤 선생님께서 백수(白壽, 100세)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천수를 누리시길 빌며 책에 펴냄에 축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이어 노마 히데키 교수는 “김예곤 선생님은 조선대학교에서 수학하시고 모교에서 언어연구와 교육에 매진하셨을 뿐 아니라 일본 전역에 조선학교를 설립하셨습니다. 또한 다카라츠카(효고현 소재) 지역에서 다문화 공생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 오셨습니다. 이번에 출간하신 《한국어강좌》 책은 1961년부터 1962년에 걸쳐 모국어를 희구하는 재일 청년들을 위해 잡지 <새로운 세대>에 연재했던 것을 새롭게 엮어내어 세상에 선보이신 것입니다. 이 책은 당시 <국어강좌>라는 이름으로 연재할 때부터로 ‘한국어 바이블(성경)’으로 평가받을 만큼 독보적인 내용이 담겨있으며 색인만 보더라도 그 방대함에 놀라울 정도로 이른바 ‘언어학 소사전’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내용으로 가득한 책이라는 평판을 받있는 책입니다.” 라고 했다.

 

참고로 이번에 나온 《정본 한국어강좌》 책은 2021년 《한국어강좌》 책에 노마 히데키 교수해설을 추가하여 새로 펴낸 책이다. 책은 발음부터 모두 18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노마 히데키 교수의 해설 가운데 ‘21세기 지금, 왜 김예곤 선생의 《정본 한국어강좌》인가?’라는 대목은 시대를 뛰어넘는 이 책의 위대성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재일동포 김예곤 선생은 자신의 호(號)를 파란만장(가타카나로 ‘パランマンジャン’)이라고 할 정도로 그 삶 자체가 ‘파란만장(波瀾萬丈)’하다. 선생의 아버지 김말수 씨는 1920년대 초기 열아홉살의 나이로 일본에 건너가 효고현 타카라츠카시 무코가와(兵庫縣 宝塚市 武庫川)에 정착했다. 부산이 고향인 아버지는 고국에서 조선총독부의 농지개혁으로 토지를 몰수당해 살길이 막막하여 일본행을 택했고 거기서 악착같이 일하면서 부를 일궜다.

 

그러나 아버지의 운명으로 당시 조선대학교에서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던 김예곤 선생이 가업을 이어 채석장과 레미콘회사를 비롯하여 대표적인 기업 '우미야마광업(海山鑛業)'을 맡아 일본 내에서 경제적인 기반을 확고히 다지게 된다.

 

 

조선대학 시절 젊은 학자 김예곤 선생은 잡지 《새로운 세대》에 ‘국어강좌’를 연재하여 호평받았다. 이후 제대로 된 한국어를 알리기 위해 《조선어문법》(1960), 《조선어회화》(1965), 《포켓트 한일사전》(2002) 등을 펴내면서 지금까지 한국어 사랑에 빠져있다.

 

한편, 김예곤 선생은 1986년에는 조선대학교 총동창회 초대회장을 역임했고, 1996년 '타카라츠카시 외국인시민문화교류회' 초대회장, 1998년 동 교류회와 다카라츠카시 및 국제교류협회 3자 공동사업으로 이문화(異文化) 상호 이해추진, 2002년 동 교류회와 타카라츠카시 외국인시민 간화회(懇話會) 좌장 등을 맡았고 그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에는 타카라츠카시 제50주년 기념식전에서 '국제교류공로상'을 받기도 하였다.

 

인연이란 어디서부터 이어지는 것일까? 사실 재일동포 국어학자인 김예곤 선생을 알게 된 것은 《한국어강좌》 출판기념회 대신 제자들이 만든 《蓬萊峽山莊に集う》(봉래협산장 모임)이라는 책자를 통해서다. 이 책은 김예곤 선생의 미수(88) 겸 《한국어강좌》 책 출간 기념을 위해 만든 책자인데 한사코 자신만을 위한 출판기념회를 사양하셔서 대신 제자 4명의 작가들의 책 출판회 겸 모임을 허락하여 《蓬萊峽山莊に集う》(봉래협산장 모임)을 가진 내용을 실은 소책다.

 

이 소책자와 《한국어강좌)》 책을 윤동주 시를 일본어로 완역한 우에노 미야코 씨가 기자에게 보내와 김예곤 선생이 재일동포 사회에서 역량 있는 국어학자임을 알게 되었다.

 

사실 일본어를 전공한 기자로서 《한국어강좌》 책은 매우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은 한국어 교육 책이지만, 일본어로 설명하고 있어서 실은 일본어 학습자들에게도 아주 유용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자는 책에 대한 감사의 편지와 함께 기자가 쓴 여성독립운동가 책인 《서간도에 들꽃 피다》(전10권)를 보내드렸다. 우리말글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는 분이라면 수많은 한국의 여성독립운동가에 관한 관심도 클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이 선생님(기자)은 아주 훌륭한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유관순 열사밖에 모르는 데 수많은 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을 기록하고 있는 분이지요. 오늘날 한 집안에도 보면 여성들은 어머니이자, 아내요, 주부의 역할을 해가면서 사회활동을 하는 등 그 역할이 남자에 못지않은데 독립운동 당시에 여성들은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살았을까요? 나라 잃고 독립운동 전선에 뛰어들었던 여성들을 발굴하여 글로써 세상에 알리는 분이 이 선생님이십니다.”라며 이날 댁을 함께 찾아갔던 일행에게 기자를 소개했다. 건강이 안 좋은 상황에서도 기자의 책을 꼼꼼하게 읽은 김예곤 선생의 학구열에 다시 한번 놀랐다.

 

기자와 함께 김예곤 선생 댁을 함께 방문한 이들은 김길호(金吉浩, 재일작가) 선생과 가와세 슌지(川瀬俊次, 시민활동가) 선생이었다. 실은 김예곤 선생을 만나기로 한 시각은 낮 2시였는데 오사카에서 일찍 길을 나서는 바람에 1시간 전에 사카세가와역(逆瀬川駅)에 도착했다.

 

그래서 1시간 동안 역전의 까페에서 약속 시각까지 기다리는 동안 커피를 시키고 자리에 앉자마자 김길호 선생은 “실은 이제 말씀드립니다만.... 김예곤 선생께서 건강이 안 좋으셔서 이 선생이 한국에서 출발하기 3일 전에 약속을 취소해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정하여 단 10분 만이라도 뵙게 해달라고 간청하여 이번 만남이 이뤄진 것입니다.”라는 말을 꺼냈다.

 

아뿔싸! 하마터면 10분간의 면회도 불가능할 뻔했구나 싶었다. 그러나 정각 2시에 찾아뵈었을 때 김예곤 선생은 간이 산소호흡기(콧줄로 연결)를 끼고 있었지만, 혈색은 다소 좋아 보였다. 숨쉬기가 곤란할 뿐 식사는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다소 안도의 숨을 쉬었다. 마음속으로 10분간이라는 시간이 자꾸 되새겨져 일행은 불안했지만 김예곤 선생과의 대담은 40분동안이나 이어졌다.

 

이쪽의 방문자와는 달리 선생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번에 발간된 《정본 한국어강좌》는 물론, 한국의 여성독립운동가에 관한 이야기, 일본인들의 역사 인식 이야기 등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가 이야기를 중지하지 않으면 대담은 몇 시간이라도 이어질 것 같았지만 선생의 건강을 염려하여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서야 했다.

 

 

따스한 봄볕이 아파트 거실 안쪽까지 깊숙이 들어오던 날, 한국에서 오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맛깔나는 과일을 정성껏 준비해 준 사모님과 간이 산소호흡기를 낀 채 기자를 맞이해 준 김예곤 선생 부부의 인자한 모습이 대담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자꾸 떠올랐다.

 

거실 넘어 우뚝 솟은 명산 롯코산이 마치 병풍처럼 도시를 감싼 듯, 선생이 평생 일군 한국어 연구와 사랑이 일본에서 한국어 학습자들에게 등대처럼 영원히 든든한 길잡이가 되길 기원해 본다. 아울러 동포사회에 끊임없는 애정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선생의 고귀한 삶의 철학을 좀 더 펼칠 수 있도록 건강이 오래도록 허락되길 간절히 빌면서 대담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