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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제암리 학살 현장에 들어선 화성시독립기념관

작은돌들을 깔고 이 돌들로 벽을 쌓아 놓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하나의 작은돌은 쓰임이 적지만, 이들이 모이면 거대한 벽이 된다. 한줄기 억새의 흔들림은 연약하지만, 군집의 억새밭은 큰 파도를 만들어 낸다. 한 줌의 물은 작은 바람에도 흩날리지만, 이들이 모이면 넓은 하늘도 담는다"

                                         -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을 설계한 박노욱, 박현정 건축가 글 가운데-

 

지난달 4월 15일,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에 새로 문을 연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아래 기념관)엘 며칠 전(5월9일) 다녀왔다. 기념관은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제암리 주민 23명과 고주리 독립운동가 일가 6명을 제암리교회당 안으로 집결하게 한 뒤 문을 걸어 잠그고 총을 쏴 학살한 뒤 교회당을 불태운 악명 높은 학살사건의 현장 근처에 세워졌다.

 

 

 

독립기념관이라고 하면 흔히 육중한 건물이 먼저 떠오르지만,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은 건물 자체가 지역의 자연과 어우러진 형태로 설계되어 있고 지하에 있어 외관상 위압적이지 않아 좋았다. 그뿐만 아니라 전시장은 지상이 아니라 모두 지하에 설계되어 있었고 입구에서부터 전시장에 이르는 긴 통로는 작은돌들을 모아 벽을 이루게 설계되어 있었다.

 

기념관을 설계한 건축가들이 말한 ‘하나의 작은돌들이 거대한 벽’을 이룬 통로를 따라 전시장으로 향하면서 나는 순간, 전동례 할머니가 생각났다. 전동례 할머니는 일제가 저지른 제암리교회 학살 사건때 남편 안진순(1896.1.4.~1919.4.15, 1991년 애국장 추서) 지사를 잃었는데 할머니 나이 겨우 스물세 살이었다. 1919년 4월 15일, 제암리교회 학살 만행을 목격한 전동례 할머니는 ‘살 타는 냄새가 밤새 바람에 실려 왔던 그날’의 처절하고도 참혹했던 상황을 《두렁바위에 흐르는 눈물》(1991년, 뿌리깊은나무)이라는 책에 남기고 94살 되던 1992년 11월 8일, 영면에 들었다. 여기서 ‘두렁바위’란 한자 지명인 제암리(堤岩里) 의 우리말 ‘두렁바위’를 말한다.

 

 

 

"일본 중위가 4월 15일 오후에 제암리 마을에 들어와 유시와 훈계를 한다고 기독교도들을 모두 교회에 집합시켰다. 교인 32명이 교회당에 모였으며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가슴을 두근거리고 있었다. 이때 그 중위의 명령이 내려지자, 병사들이 예배당을 포위하고 창문과 출입문을 닫고는 일제히 총을 쏘기 시작했다. 예배당에 있던 한 부인은 갓난아이를 창밖으로 밀어내고 병사들에게 ‘나는 죽여도 좋지만, 이 아이만은 살려 주십시오’하고 애원했으나 병사들은 내민 어린아이의 머리를 총검으로 찔러 죽였다. 교회 안에서 모두 죽거나 다쳐 쓰러지자, 병사들은 교회에 불을 질렀다.” 전동례 할머니 남편 안진순 지사도 교회당 안에서 그렇게 처참히 숨져 간 것이다.

 

기념관 전시장은 전동례 할머니가 겪었던 아픔이 뚝뚝 묻어나는 학살 현장 사진과 동영상으로 꾸민 대형화면 등 현대인들의 정서에 맞는 구성으로 상설전시실ㆍ기획전시실ㆍ어린이전시실 등 세 개의 공간으로 이뤄졌으며 이를 통해 화성시 독립운동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

 

 

 

 

기념관의 주요 전시장인 상설전시장에는 국권 침탈과 화성 사람들, 3·1만세운동과 화성 사람들의 저항, 3·1만세운동 이후 화성의 독립운동, 민족말살정책과 강제동원의 현실, 화성의 독립운동가 등을 알리는 공간으로 구성되었으며 기획전시실에서는 ‘어느 독립운동가의 삶과 일상’이란 주제로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이 기증해 준 유물들을 전시 중이다.

 

“상상할 수 없는 잔학한 일을 저지른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린 분이 선교사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1889~1970, 한국명 석호필) 박사입니다. 스코필드 박사님은 당시 역사 속에 묻힐 뻔한 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제암리 학살사건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가 현장에서 유골을 수습하면서 학살 현장의 증거들을 사진으로 찍어 《꺼지지 않는 불꽃(Unquenchable Fire)》이라는 보고서를 써서 전 세계에 타전하여 이 사건을 세상에 알렸던 분이지요.”

 

이는 기념관을 함께 찾은 방한 중인 배국희(미국 LA 대한인국민회 전 이사장) 이사장의 말이다. 배 이사장은 기념관 바로 앞에 있는 제암리 교회 경내에 있는 스코필드 박사 동상을 보고 감격해 마지않았다. 바로 자신이 중학생일 무렵 선교사였던 스코필드 박사에게 영어공부를 했다면서 동상으로 만나니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고 동상 곁을 떠나지 못했다.

 

 

 

제암리 3·1만세운동 순국유적지 시설인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은 제암리 학살사건이 있었던 곳에 들어서 있으며 대지 2만 1,322㎡(6,450평) 규모에 지하 1층, 지상 1층 기념관과 건축 연면적 5,310㎡(1,606평), 경기도 내 가장 큰 규모로 역사문화공원과 함께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아울러 인근에는 제암리교회와 학살로 순국한 선열들의 무덤, 스코필드 동상 등이 있어 가족 단위로 찾아가길 권할 만한 3·1만세운동 순국유적지다.

 

한편, 2018년 6월, 기자는 3·1만세운동 100돌을 앞두고 도쿄 한복판에서 <3·1만세운동 100주년 전시>를 위해 자료 수집차 방한한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단체인 일본고려박물관 회원들을 제암리교회 현장에 안내한 적이 있다. 그때는 아직 화성시독립기념관 설립 소식을 듣지 못하던 때로 교회 안에 작은 전시 공간밖에 없어 매우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이제 제암리 학살 현장에 번듯한 기념관이 들어섰으니, 앞으로 이곳이 화성시뿐만 아니라 전국의, 아니 전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또 하나의 독립운동 성지’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기념관을 나왔다.

 

<화성시독립기념관 안내>

*경기 화성시 향남읍 제암고주로 34 

* 031-5189-1950

* 휴관일: 월요일 (월요일이 공휴일 일 때에는 그다음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