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는 비만해결사?
40대 이후의 세대는 “누릉지”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예전이야 군것질거리도 별로 없었을 뿐더러 군것질거리를 살 용돈도 없을 때여서
어머니가 긁어주는 누룽지는 최고의 군것질거리였다.

▲누룽지는 비만 해결사 ©뉴스툰
누룽지를 새까만 가마솥에서 닥닥 긁을 때부터 퍼져 나오는 구수한 냄새는 가히 일품이었다. 그것은 분명 우리만의 냄새요, 우리만의 맛이 아닐까? 또 누룽지에 물을 붓고 끓여 나오는 숭늉은 어쩌면 최고의 음료수이리라.
“간식으로 누룽지가 나왔다. 발상이 신선하다. 아마 40대 이상의 연령층이라면 누구나 누룽지에 대한 추억 하나 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독도 답사길에 민족의 정서가 서려 있는 추억의 누룽지를 맛본다는 건 색다른 경험이다.”
이 글은 ‘독도에 심고 온 나라사랑 국토사랑의 뜻’ 이란 제목의 정윤모님의 글 중 일부이다. 제법 등산길, 여행길에도 누룽지를 즐기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라면과 햄버거, 피자에 푹 빠져 누룽지를 고리타분하게 느끼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잃어버린 버린 누룽지
“우리는 누룽지를 잃었습니다. 대신 라면과 일회용 반짝 문화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초가지붕을 잃었습니다. 그 속에서 도란도란 소근거리던 아빠 엄마의 정다운 말소리를 잃었습니다. 대신 졸부들과 곰의 쓸개와 해구신과 섹스 관광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가정파탄을 덤으로 얻었습니다. 우리는 푸른 들판과 개구리 소년들과 메뚜기떼들을 잃었습니다. 대신 골프장과 산성비와 환경공해라는 세기말의 공용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갑돌이와 갑순이의 바보 같은 사랑을 잃었습니다. 대신 '러브호텔'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이태리 가구와 프랑스제 향수와 미국 영화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인터넷도 얻었습니다. 대신 반만년 백의민족의 얼을 송두리째 내어 주었습니다. 지금 조선팔도에서는 새로운 문화식민 통치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는 냉장고와 세탁기와 전자오븐을 얻었습니다. 대신 앞치마에 밴 엄마 냄새를 잃었습니다.”
위 글은 수필문학가 이관희님의 글이다.
정말 우리는 누룽지를 잃어간다. 우리의 고향을, 우리의 정서를, 우리의 문화를 잃어간다. 어쩌면 지금의 시대가 문화식민주의 사회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우리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라면, 햄버거, 피자 등의 인스턴트식품을 비롯 콜라 등의 탄산음료와 커피의 홍수는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누구나 쉽게 살 수 있고, 쉽게 먹고 마실 수 있는 이런 것들이 우리의 건강을 앗아갈 수 있다고 의사들은 말한다. 누룽지를 잃어버린 것이 결국 건강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누룽지의 식품영양학적 의미
허준의 책 동의보감에는 <취건반(炊乾飯, 누룽지)>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음식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못하거나 넘어가도 위에까지 내려가지 못하고, 이내 토하는 병증으로 오랫동안 음식을 먹지 못하는 병 즉 열격(噎膈)은 누룽지로 치료한다. 여러 해가 된 누룽지를 강물에 달여서 아무 때나 마신다. 그 다음 음식을 먹게 되면 약으로 조리해야 한다[정전].”
누룽지가 약으로까지 쓰였던 것이다. 그런데 누구나 알다시피 누룽지는 쌀로 만든다. 그렇다면 쌀이 현대인이 즐기는 인스턴트음식의 주재료인 밀가루와 어떻게 다를까?
쌀은 밀에 비해 일반성분, 무기질, 비타민 등의 영양성분 함량이 조금 적지만 필수아미노산 함량은 높다. 특히 성장기 어린이에게 좋은 라이신 함량은 밀의 2배 정도나 많다. 또 쌀이 밀보다 아미노산가와 단백가가 높은 것으로 보아 소화흡수율 및 체내 이용율이 좋은 것으로 나타나 식품영양학적인 가치로서는 쌀이 밀보다 우수하다고 알려져 있다.
2001년에 농촌자원개발연구소에서 발표한 “식품성분표 제6개정판” 중 “체내이용율”을 보면 아미노산가는 쌀이 65, 밀가루가 41이며, 단백가는 쌀이 81, 밀가루가 52, 소화흡수율은 쌀이 98인데 밀가루는 86로 나와 있음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특히 쌀은 식이섬유의 공급원으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농촌진흥청의 자료를 살펴보자.
“쌀은 식이섬유의 작용으로 에너지를 거의 내지 않음은 물론 배부른 느낌을 주고, 음식물의 장내 통과시간을 단축시켜 비만과 변비의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있다. 또 장내의 콜레스테롤이 몸에 흡수되는 것을 억제함으로써 혈중 콜레스테롤이 상승됨을 억제하여 동맹경화증과 허혈성 심질환을 예방한다.
뿐만 아니다. 펙틴 등의 수용성 식이섬유는 식사 뒤 혈당량이 상승되는 것을 억제하여 인슐린 분비를 줄여주므로 당뇨병의 예방에도 유효하다. 그런가 하면 식이성 유해물질을 흡착시켜 배설시키거나 유해물질의 체내흡수를 억제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그렇다면 쌀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분명한 근거가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쌀이 아무리 좋아도 누룽지는 쌀을 가공한 형태가 아닌가? 어떤 변화가 있을까? 농산물의 식품기능성 연구를 하고 있는 농촌자원개발연구소의 박홍주 농업연구관의 말을 들어보자.
“누룽지는 열을 가하기 때문에 열에 약한 비타민 등이 파괴된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여러 영양성분을 보강한 인스탄트식품이 영양면에서는 누룽지보다 더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요즘 인스턴트식품보다는 가공하지 않은 자연식품이 사람에게 훨씬 좋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음에 비추어 보면 인스턴트식품보다는 누룽지가 더 좋다고 할 수 있다.
또 보통 인스턴트식품이 밀가루로 만들어지는데 우리의 몸에 잘 맞지 않는 밀가루로 만든 인스턴트식품보다는 쌀이 모든 면에서 좋기 때문에 그 쌀을 눌려 누룽지로 만들면 훨씬 소화흡수가 좋을뿐더러 쉽게 먹을 수 있어 건강에 좋은 식품임이 분명하다.”
나는 한의학적 관점을 알아보기 위해 경희한의원 문찬기 원장의 견해를 들었다.
“밀가루는 전통적으로 구황식품(救荒食品:흉년 따위로 기근이 심할 때 빈민들을 굶주림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식품)입니다. 우리의 주식이 아니었다는 얘기지요. 분명 주식은 쌀입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 몸엔 쌀이 잘 맞는다는 말도 될 수 있겠지요.
밀가루는 서늘한 음식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흡수가 잘 안 되고, 장에 오래 머물러 있기 때문에 장을 차게 해 좋지 않습니다. 또 밀가루가 기름과 만나면 장에 지방을 많이 끼게 합니다. 그래서 기름과 만난 밀가루는 더욱 피해야 합니다. 하지만 쌀은 성질이 따뜻하고, 흡수가 잘 되는 음식입니다.
따라서 누룽지도 기름과 만난 밀가루음식들보다 훨씬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룽지를 씹어 먹으면, 침샘에서 아미노산이 많이 들어있는 침이 많이 나오고, 이빨을 자극하게 되면 신장을 튼튼하게 합니다. 또 누룽지를 먹으면 턱관절운동을 하게 되는데 뇌에 자극을 주어 뇌혈관질환을 예방해줍니다.”
그는 밀가루음식이 아닌 쌀로 된 음식을 주식으로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바빠서 먹을 시간도 부족하고, 반찬에 신경이 쓰이면 누룽지를 활용하는 것도 참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바쁜 현대인들의 건강을 지켜줄 누룽지
현대인들은 정말 바쁘다. 아침밥을 챙겨 먹지 못할 정도로 시간이 없어서 쉽게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식품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다가 건강을 잃는다면 그것은 분명 비극적인 일에 틀림없다.
그러나 여기 우리의 전통식품 “누룽지 ”가 있다. 물론 가마솥을 압력밥솥으로 대체한 현대에는 누룽지를 먹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많은 식품업체들이 누룽지를 쉽게 먹을 수 있도록 상품화했다. 더더구나 즉석라면처럼 끓는 물을 붓고 2~3분 뒤면 구수하게 먹을 수 있는 즉석누룽지까지 출시되고 있다.
아침에 시간이 없어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직장인과 학생들에게 누룽지를 권해보자. 또 몸이 아파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환자들과 살이 쪄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도 누룽지는 참 좋은 음식이 아닐까? 이런 좋은 전통음식을 두고도 우리는 몸을 헤치는 인스턴트식품에 빠져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누룽지”
말만 들어도 구수한 향이 풍겨오는 “누룽지”이다. 사람은 누구나 내면의 향도 품어 나온다. 그 사람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느냐 따라 악취도 나고, 아름다운 향기도 배어나올 것이다. 우리는 누룽지를 즐기면서 건강을 지키는 것은 물론 누구나 가까이 하고 싶은 구수한 누룽지 향을 풍기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보면 어떨까?
2004년 05월03일 [03:18] ⓒ 뉴스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