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중국인들은 신라시대 때부터 우리 종이를 ‘계림지(鷄林紙)’, ‘고려지(高麗紙)’,
‘조선지(朝鮮紙)’로 부르며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송나라부터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고려나 조선 사신들이 들고 가는 선물이 ‘종이’와 ‘청심환’이었다는
데서 우리 종이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때의 중국 사람들은 우리
종이의 질이 비단으로 만들었다고 착각하기까지 했는데, 명나라 "일통지(一統志)" 때
와서야 비로소 닥나무로 만든 것이라고 확인한 기록이 보인다고 합니다.
조선 영조 때 서명웅이 지은 ≪보만재총서(保晩齋叢書)≫에는 “송나라 사람들이
여러 나라 종이를 견줄 때 반드시 고려지를 최고로 쳤다. 우리나라의 종이는
방망이로 두드리는 작업을 거치면서 질겨지며 더욱 고르고 매끄러워졌던 것인데
다른 나라 종이는 그렇지 못하다.”라고 적고 있어 한국 종이의 우수성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