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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뭐꼬의 장편소설 <꿈속에서 미녀와>

미스 K는 “내일 또 오세요!”라고 말했다

이뭐꼬의 장편소설 <꿈속에서 미녀와> 33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내가 시라큐스에서 배거로 일할 때 재미있는 일을 겪었습니다. 계산대에서 일하던 아가씨 중에 슈(Sue)라는 이름의 대학생이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미국 여자들은 슈라는 이름이 많던데요. 정식 이름은 수산나인데 그냥 슈라고 줄여서 부르는 모양입니다. 어느 날, 아마도 그날이 추수감사절이었을 거에요. 미국에서는 부활절과 추수감사절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큰 명절이잖아요. 추수감사절이 되면 학교 기숙사도 문을 닫고, 모두 고향으로 갑니다.

 

 

그날 밤은 손님이 없어 한가했습니다. 그래서 슈에게 물었지요. 너는 고향에 가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안 간다는 것이에요. 은경 씨도 잘 알겠지만, 미국이란 나라가 굉장히 크잖아요. 그래서 “아마 멀어서 그러나 보다”라고 생각하면서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뜻밖에도 시러큐스라는 거에요. 그래서 부모님은 어디 계시느냐고 물었더니 가까이에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집에 가지 않느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슈의 대답이 이랬습니다.

 

나는 근처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러큐스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에 진학하게 되자 친구도 만나게 되고 애인도 생기게 되고,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게 되었다. 그런데 부모님은 자꾸 간섭하는 것이었다. 나는 부모님의 잔소리가 듣기 싫었다.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이 “밤 10시 이전에는 반드시 집에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몇 번 부모님과 다투다가 결국 부모님의 최후통첩을 받게 되었다. “만일 네가 부모 말을 그렇게도 듣기 싫으면 집을 나가거라. 네가 집을 나가면 등록금을 대 주지 않겠다. 모든 것을 네가 책임져라.” 말하자면 복종이냐 독립이냐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는 최후통첩이었다. 나는 며칠 생각하다가 결국 독립을 선택하였다. 집을 나와 기숙사보다 더 싼 허름한 원룸을 얻어서 생활하고 있다. 등록금을 벌기 위하여 한 학기 학교 다니고, 한 학기는 일을 하고. 그런 식으로 지금까지 6년 동안 학교에 다녀서 지금 3학년 2학기를 다니고 있다. 방학이 되면 알바를 2개 하면서 생활비와 학비를 벌어야 한다.

 

밤은 점점 깊어지는데, K 교수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미스 K는 이야기를 열심히 들었다.

 

슈의 독립심이 대단하지 않아요?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독립심이지요.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자녀를 쫓아낼 부모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그 부모에 그 딸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미국인들이 그러한 독립심을 가지고 있고 그처럼 자유를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강대국이 되었는지도 모르지요. 자유라는 말이 나오니 생각나네요.

 

유학 시절 어느 날 나는 인문대학 건물에서 어느 교수를 만날 일이 있었답니다. 교수 연구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 연구실마다 기웃기웃 방을 찾고 있는데, 어느 여교수의 방문에서 다음과 같은 글귀를 발견하였지요.

 

조국보다도 더 소중한 것

어머니보다도 더 소중한 것

사랑보다도 더 소중한 것

그것은 자유라는 단어다.

 

아무튼 끝내주는 자유 사랑 아닙니까? 미국인에게 있어서 자유란 가장 지고의 가치인가 봅니다. 동양적인 사고방식, 특히 우리나라 부모들의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낱말이 미국인의 ‘자유’일 것입니다.

 

K 교수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미녀와의 오붓한 대화를 즐기고 있는데, 식당 문이 열리면서 불청객이 나타났다. 지난번에 한 번 만난 일이 있던 미스 K의 수기리 친구가 심야에 방문한 것이다. K 교수는 즐거운 분위기를 깨버린 그녀의 방문이 달갑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가지 말라고 붙잡는 미스 K에게 간단히 인사를 하고 식당을 나왔다. 미스 K는 아쉬운 듯 “내일 또 오세요!”라고 말하면서 문밖에까지 배웅하였다. K 교수는 분명히 들었다. 미스 K는 ‘다음’이라고 말하지 않고 ‘내일’이라고 말했다.

 

미녀식당 문을 나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밤하늘에서 별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저렇게도 많은 별을 누가 만들었을까? 별을 바라보면서 우주를 생각하면 그저 신비할 뿐이다. 신비스러운 우주의 구조를 연구하는 천문학은 K 교수가 시간이 나면 꼭 한번 공부하고 싶은 학문이다. 우주를 만든 신이 존재하는가? 알 수 없다. 사방은 고요하고 시간은 자정을 훨씬 넘었다.

 

식당에서 집까지는 차로 5분도 걸리지 않는다. 대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조용했다. 방문을 살짝 열고 들어갔다. 초저녁잠이 많은 아내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한번 잠들면 아내는 중간에 깨지 않는다. 다행이다. 아내는 아직 남편의 근황에 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알면 병이 될 것이다. 모르는 게 약이다.

 

(계속)